UPDATED. 2024-04-25 05:00 (목)
[문화비평] 지역 문화의 거점 서점이 죽어간다
[문화비평] 지역 문화의 거점 서점이 죽어간다
  • 이승우 출판인
  • 승인 2010.10.18 16: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역 문화의 사랑방 역할을 해온 ‘서점’들이 잇따라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제 왠만한 대형 서점과 그 지점들을 빼놓고는 지역 사회 문화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해왔던 ‘명문’ 서점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편리성과 경제성에서 이미 인터넷 서점에 참패를 당했다고는 하지만 그 폐업의 기세가 전광석화와 같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문화의 핵심적 요소인 ‘다양성’이라는 측면을 놓고 볼 때, 지역 서점 문화는 이제 거의 붕괴됐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08년, 76년 역사를 자랑하던 광주 삼복서점과 최근 들려온 부산 동보서적의 폐업 소식은 특히나 이들 서점들이 지방 거점 서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아니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막상 닥치고보니 허탈해진다. 삼복서점 폐점 당시의 신문 기사를 보면, 지역 서점에서는 처음으로 인문사회과학 연구비를 지원해 광주의 ‘문화지킴이’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역시 부산의 동보서적 폐점 소식을 다룬 기사를 보면, 부산 청소년 연극제와 소설가 요산 김정한 선생 문학제 독후감 공모 등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서점의 역할을 넘어서 지역 문화 후원 활동까지 펼쳤던 부산 문화의 대명사였음을 알 수 있다.

앞서 말했지만 지역 서점들의 가장 직접적인 폐업 원인은 인터넷 서점들과 이미 출발선상에서부터 다른 가격 정책 때문이다. 도서정가제 정착 문제는 아직도 출판업계와 서점업계에서 논란거리이며, 몇 해를 걸쳐 보다 진전된 결과를 도출해내려 힘써 왔지만 이렇다 할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그 사이 앞서와 같은 지방 명문 서점들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서점 하나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 차원의 현상이 아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서울 중심의 문화, 중앙 문화로의 강력한 집중화 현상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문화의 획일화, 중앙화 경향이다. 이웃 일본이나 미국, 유럽 등 다른 나라들에서도 오프라인 서점 숫자가 지속적으로 줄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우리처럼 그렇게 급속하면서도 단시간 안에 ‘폐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특히 일본이나 유럽의 경우, 강력한 도서정가제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 간의 경쟁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소한도의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면, 서점이 얼마나 중요한 문화공간이었던지를 절감하게 된다. 물론 지금과 같은 인터넷이나 다양한 볼거리 문화가 압도적으로 적었던 때여서인지도 모르겠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책’의 문화는 곧 ‘서점’에서 그 출발점이 형성됐다. 바로 독자와의 첫 만남이 이뤄지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전철로 통학하던 당시 역앞에 있던 제법 큰 규모의 서점 점원들도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상행위’를 떠나 좋은 신간이나 묻혀 있던 보석 같은 책들을 찾아 추천도 해주는 ‘문화의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문화라는 것이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닐진대, 바로 그와 같은 서점의 존재가 문화의 다양성을 최후에서 지키는 보루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필자가 드나들던 그 서점 역시 지금은 쇠락해 땅값이 높은 그곳을 떠나 중고생들의 문제집과 여성지 판매에 중점을 두는 주변 지역으로 밀려나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다.

어떤 한 종류의 문화 형태를 선도해가는 주류 문화가 있다면, 그와 더불어 주류 문화를 떠받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문화들 역시 존재해야 문화의 다양성이 존립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명문 서점들이 속절없이 문을 닫는 현상을 단순히 경제 논리로 따지기보다는 문화의 다양성 차원에서 다시금 되씹어보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인터넷 서점의 유용성을 가져가면서도 지역 명문 서점들이 그동안 해왔던 문화지킴이 역할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방어기제를 동시에 마련하는 혜안, 그것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 서울 서대문역 인근에 문을 연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 ‘레드북스’의 개점 소식은 그래서 반갑다. 모두들 ‘망할 게 뻔하다’, ‘사업성이 없다’라고 말렸음에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소신을 갖고 문을 연다”는 두 서점 주인의 담대한 뜻이 꼭 결실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고 작으나마 책문화를 만들어가는 대학 서점들이 거의 없는 작금의 세태가 안타까워 더욱 짠하다. 문화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랴. 책을 사지 않더라도 몇 시간이고 눌러 앉아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독자와 숨어있는 책의 숨바꼭질이 펼쳐질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서점 문화가 대학 앞이든, 지역 명문 서점으로든 마땅히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승우 출판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