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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막다른 골목의 증후일까, 새로운 길을 향한 이정표일까
그것은 막다른 골목의 증후일까, 새로운 길을 향한 이정표일까
  •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 승인 2010.10.18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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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예술과 만난 사진의 변화

최근 시각예술분야에서 두드러진 변화 가운데 하나는 사진의 질적, 양적 위상의 확대다. 주목받는 사진예술가의 수는 여전히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지만 사진을 직간접으로 활용하는 젊은 시각예술가의 수는 나날이 급증하고 있고 이들의 기량 역시 만만치 않다. 이러한 실험들이 장래 우리 시각예술의 변화나 질적 도약을 이끌 수 있을까.

정희승, Persona, 디지털프린트, 84×120cm, 2007.

먼저 미니어처나 세트장과 같은 가상의 공간을 촬영한 사진들이 있다. 예컨대 권경용은 서울의 높은 건물 위에서 바라본 동대문 운동장 주변의 공사장, 한강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한강 시민공원 안의 사람들, 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축구 경기, 횡단보도를 바쁘게 건너가는 사람들과 주변 풍경을 미니어처로 제작한 후 이를 촬영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그 사진이 재현하는 풍경은 극히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이렇게 사진의 힘을 빌려 가상의 공간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부상한다.

이진영, Retrace(Amalia), C 프린트, 129×95cm, 2009(위).
진정성과 가상성의 경계, 흐릿해지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에서 촬영한 일종의 연출사진을 모아 ‘오래된 사진첩’이라는 전시를 개최한 김동욱의 작품도 사진 매체 특유의 진정성과 가상성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작업에 해당한다. 평론가 이관훈의 묘사를 빌면 그렇게 드러난 판타지는 예견치 못한 세트장 구경꾼들을 몽환적 풍경 속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여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로 거듭난다. 이렇게 가장 리얼리티에 근접해 있다고 간주되는 사진 매체를 가상의 연출 공간과 혼합하는 방식은 꽤 오래 전부터 여러 작가들이 시도했으나 최근 젊은 작가들의 작업에서는 좀 더 정교하고 예민하게 활용되고 있다. 다만 현재의 관객들은 이런 종류의 뒤섞임을 더 이상 놀랍게, 또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낯설게 하기’ 기법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예술계의 승인과 인정을 끌어내기 위해 젊은 작가들의 사진 작업은 좀 더 낯설어질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희승의 작업은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이 작가는 배우들이 자신이 맡은 캐릭터가 심리적 고통을 받는 장면을 연기하면서 그 페르소나의 심리상태에 몰입된 순간을 포착한다. 배우들의 연기를 포착한다는 점에서 정희승 역시 앞의 두 작가와 마찬가지로 가상(판타지)과 사진 매체를 뒤섞는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배우들의 연기 자체가 갖는 속성이다. 연기란 궁극적으로 거짓으로 꾸며진 상황을 사실인양 관객을 속이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리얼한 연기'라는 말은 이미 역설이라는 것이 이 작가의 생각이다. 그러나 배우들이 자신의 감정에 몰입할 때 우리는 그 몰입의 결과로서 우리 눈앞에 펼쳐진 바를 쉽게 거짓된 것으로 물리치기 힘들다. 정희승의 말을 들어보자. “더욱이 배우들이 감정연기 시에, 캐릭터의 내면화 과정을 거치면서, 종종 자신이 실제로 겪은 아픈 과거나 슬픈 감정의 기억들을 인물에 투사하는 테크닉을 사용하기에, 더더욱, 감정연기 안에서 픽션과 리얼리티, 마스크와 페이스, 이미지 메이킹과 자기몰입 사이의 경계는 허물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일련의 사진들은 이러한 경계지점을 포착합니다.” 

‘사진 조각’ 또는 사라진 사진술의 탐구

한편 권오상이나 장승효의 경우처럼 조각가들이 사진을 이용해 제작한 일종의 사진 조각도 이제 시각예술계에서 자리를 잡았다. 이들이 작은 사진 조각들을 이어 붙여 만든 입체적인 조상은 점점 정교해지고 단단해져서 지금 최상의 밀도를 자랑한다. 특히 작은 꽃-사진 이미지들이 모여 보다 상위의 물고기나 자동차 사진-이미지로 이행하는 장승효의 작업은 구두(문자)언어의 의미작용을 지시하고 교란하면서 사진적 이미지의 의미를 증폭시키는 과정이 흥미롭다. 장승효 자신은 이 작품이 “하나로부터 시작해 모두 하나로 돌아간다”는 원리를 구현한다고 자평한다. 그 하나의 원리를 이 작가는 ‘사랑’이라고 지칭한다.


그런가하면 사진의 초기 작업형태로 돌아가 사진작업 고유의 감성을 반추하는 작업도 있다. 예컨대 이진영은 유리판이 젖어있을 때 노출, 현상이 가능한 암브로타입(Ambrotype)이라는 이미 오래 전 사라진 사진술을 탐구한다. 평론가 김윤철에 따르면 젖은 점액질이 마르면서 비로소 투명해지는 콜로디온(collodion)이라는 화학물이 이 작업의 모티프다. 이렇게 촬영과 현상 내내 젖은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암브로타입에서 이진영은 체온과 습기를 유지해야 하는 생명체의 속성을 발견한다. 건조된 사진작업은 축축한 것과 마른 것의 상호작용, 또는 액체, 기체, 고체라는 물의 세 가지 양태들의 순환을 증언하는 독특한 이미지를 구현한다.

지금 젊은 작가들의 작업은 기존의 사진 예술 작업에 비해 다소간 가볍고 화사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작업들은 기존의 사진예술작업에 비해 좀 더 모호하며 위태로워 보인다. 그 다채롭고 모호하며 위태로워 보이는 것들은 막다른 골목의 증후일까 아니면 새로운 길을 향한 이정표일까.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kunst75@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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