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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을 실용적 슬로건으로 만든 사회에 ‘대안적 사유’를 묻다
‘녹색’을 실용적 슬로건으로 만든 사회에 ‘대안적 사유’를 묻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0.10.1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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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 ‘생태학’ 조명한 세 권의 책

구조주의자들의 문법을 따르면, 언어를 장악하는 것은 곧 의미 체계를 독점하는 일이 된다. ‘실용정부’를 표방한 현 정부가 ‘녹색’을 전유해가는 과정을 보면, 구조주의자들의 주장이 그리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고전경제학에서 힌트를 얻은 스위스 언어학자 페르디낭 소쉬르(1857~1913)의 사유를 따라가면, 어떤 사물의 의미나 기능, 성질 같은 것은 이 사물을 포함한 관계망 속의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는 卓見을 만나게 된다. ‘녹색’이 실용적 슬로건으로 전치되긴 했지만, 그것은 ‘생태학’에 크게 빚지고 있는 용어임에 틀림없다.

최근 잇따라 ‘생태학’을 주제로 내건 책들이 출간됐다. 『유학사상과 생태학』(메리 에블린 터커 외 역음, 오정선 옮김, 예문서원, 2010.9.10), 『괴짜 생태학』(브라이언 클레그 지음, 김승욱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0.9.17), 그리고 『마르크스의 생태학』(본 벨라미 포스터 지음, 이범웅 옮김, 인간사랑, 2010.9.20)이 그렇다.  물론 이 세 권의 책은 함께 묶기가 쉽지 않은 책들이다. 예컨대 『유학사상과 생태학』은 1996년 하버드대에서 열렸던 ‘유교와 생태계 학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엮은 책이니, 오히려 다양한 논의 가능성에 무게를 실은 것으로 봐야 한다. 『마르크스의 생태학』은 2000년에 원서가 출간됐다. 그러니 근 10년 여의 지적 변동을 전제하고 읽어야 한다. 『괴짜 생태학』은 지난해에 원서가 출간돼, 시의적 적실성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권의 책이 지향하는 ‘생태학적 방향성’은 서로 다르다.

『유학사상과 생태학』은 생태계가 당면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새로운 종교 즉 비서구 종교들, 특히 동양의 종교에서 찾고 있다. 이 책은 동양의 종교, 그중에서도 유교에서 그 답을 찾으려는 노력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학술대회 발표 논문이라는 태생적 문제의식에서 구성된 탓에, 이 책은 과거와 현재의 유교 그리고 미래의 유교가 지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생태계 논의에서 무엇을 공헌할 수 있는가를 논증하기 위해 다양한 주제를 다섯 개의 장에서 다뤘다. 생태계의 위기를 계몽주의의 가치와 연결해 분석하고(제1부), 이 위기에 대한 유교의 대답을 정교와 환경을 연결해 폭넓은 범위에서 살폈으며(제2부), 이어 한·중·일 삼국의 다양한 유교 자료를 통해 생태계 논의에 접근했다(제3부). 또한, 오늘날 활발하게 진행되는 지구촌의 생태계 논의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제시하며(제4부), 유교가 어떻게 특정한 현대 생태계의 논쟁과 비판을 다룰 수가 있는가를 논의했다(제5부).

옮긴이인 오정선 박사(보스턴대 신학대학원 펠로우)가 밝힌 것처럼, 이 책에 내재한 문제의식은 린 화이트(Lynn White)에게로 올라간다. 그는 1967년 「생태 위기의 역사적 뿌리들」이란 짧은 논문에서 지금까지 서구문명의 발전을 지탱해 온 기독교로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생태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해결책으로 새로운 종교를 발견하든지 아니면 기독교에 새로운 안목으로 접근할 것을 제시한 바 있다. 서구 학자들이 ‘생태학’을 동양의 종교, 특히 유교에서 모색하려는 것은 이러한 자신들의 지적 전통에서 분출됐다. 그러나 1990년대 서구 학계가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동력을 ‘유교’에서 찾았던 지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1996년의 발표시점을 전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유교와 생태학을 연결하는 이후의 지적 작업을 조망한 번역자 해제가 보완됐더라면 하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마르크스의 세계관은 생태학적이다”

오리건대 사회학과 교수이자 <Monthly Review>의 단독 편집자인 존 벨라미 포스터의 책 『마르크스의 생태학』은 부제가 ‘유물론과 자연’이다. 사실 마르크스의 생태학적 사고는 오랫동안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책을 번역한 이범웅 공주교대 교수(윤리교육과)는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변증법적 자연주의로서 특정지을 수 있는 생태학적 사유방식이 가장 위대한 러시아 생태학자들 일부의 숙청, 특히 부하린(Nikolai Bukharin)의 낙마와 함께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스탈린의 전체주의적 동원체제하에서의 부하린이 겪은 운명이야말로 “마르크스 이후 마르크스의 생태학적 사유에 불어닥친 가장 커다란 비극의 상징”이랄 수 있다. 그 결과 1930년대 말 소련의 자연보호운동은 완전히 사라졌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세계관이 “체계적으로 생태학적이며, 이 생태학적 입장이 마르크스의 유물론으로부터 도출됐다는 결론”을 내리지만, 스스로 밝힌 것처럼 그런 결론을 어떻게 내렸는지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 부분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이 책은 자연과 사회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을 재건함으로써 현대 녹색운동에 널리 퍼져 있는 관념론에 도전하면서 생태학적 위기에 대한 더욱 영속적이고 지속가능한 해법을 제안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전일적으로 확장된 오늘날, 자본주의를 고찰했던 마르크스를 생태계 위기를 사유한 마르크스로 전유해내는 지적 작업은 매우 흥미롭다.

영국왕립예술원 특별회원인 브라이언 클레그의 『괴짜생태학』의 원저명은 ‘ECOLOGIC’이다. 국내 번역서의 제목에 ‘괴짜’가 붙은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환경 지식이 모두 가짜’라는 도발적이고 발칙한 접근 때문이다. 예컨대 저자는 “북극곰 사진은 치우고, 맥도널드 방식으로 환경운동을 해라!”라고 말한다. 물론 그렇다고 정말 맥도널드에게 환경운동을 맡기려는 것은 아니다. ‘생각을 바꾸자!’ 이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어떻게? ‘생태’(eco)와 ‘논리’(logic)를 결합하면 된다. 그러니 이 책은 ‘생태학’보다는 ‘환경문제’에 무게를 실은, 생각의 조리를 바꿔주는 책인 셈이다.

환경위기 풀려면 ‘생태논리’ 사고전환 필요

인간의 행동을 수학적으로 설계하는 것, 이것이 클레그가 수행해 온 작전연구(operational research)의 핵심이다. 그는 환경문제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사안임을 강조한다. 책의 구성도 여기에 맞췄다. 환경문제 또는 환경운동을 새로운 사고방식 속에서 용해할 때, 구체적 문제들이 하나둘 해결될 수 있다는 게 그의 논리다. “생태논리라는 메스를 이용하면, 혼란과 기만 속에 묻혀 있는 현실을 열어볼 수 있다.” “매년 차를 바꾸는 영국의 운전자는 차를 바꾸는 주기를 3년으로 늘리면 탄소 배출량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 새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3~5톤의 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탄소 배출량이 낮은 차를 사는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가 있지만, 새 차로 바꾸는 주기를 늘리는 사람에게 세금 혜택을 주는 방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흔히들 하는 말처럼, 세상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것은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식량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녹색’이 신화의 깃발처럼 나부끼는 곳에서라면 이 세 권의 책은 다른 언어, 다른 세계의 의미를 열어줄 수 있다. ‘생태학’ 또는 생태학적 사유의 심층이 없는 구호로서의 ‘녹색’이 위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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