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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입문서’는 어떤 책이어야 할까
‘좋은 입문서’는 어떤 책이어야 할까
  • 교수신문
  • 승인 2010.10.1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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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책갈피]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우치다 타츠루 지음 | 이경덕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

좋은 입문서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전문가가 말해주지 않는 것을 다루며 앞으로 나아갑니다(이를 거꾸로 하면 변변치 못한 입문서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겠지요. 초보자가 모두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해 전문가라면 누구나 말하는 것을 알기 쉽게 고쳐 써서 끝내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입문서와는 다르지요). 좋은 입문서는 먼저 첫머리에 ‘우리는 무엇을 모르는가?’를 묻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왜 우리는 그것에 대해 모르는 것일까요. 왜 이제까지 그것을 모른 채 지내왔을까요. 게을러서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모르고 있는 이유는 대개 한 가지뿐입니다. 알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자기가 무엇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지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결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가짐을 한결같이 노력해온 결과가 바로 무지입니다. 무지는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입니다. (중략) 어떤 것을 모른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른 채로 살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을 모르는가?’라는 물음을 정확하게 인지하면 우리가 ‘거기에 필사적으로 눈을 돌리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입문서는 전문서보다 근원적인 물음과 만날 기회를 많이 제공합니다. 이것은 내가 경험을 통해 터득한 사실입니다. 입문서가 흥미로운 것은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함으로써 그 물음 아래에 밑줄을 그어주기 때문입니다. 지성이 스스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해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물음 아래 밑줄을 긋는 일’입니다.

지적 탐구는 늘 ‘나는 무엇을 아는가?’가 아닌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를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할 수 없는 물음, 그러니까 시간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성이란 무엇인가, 공동체란 무엇인가, 화폐란 무엇인가, 기호란 무엇인가, 교환이란 무엇인가, 욕망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은 일련의 물음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근원적이고 인간적인 물음입니다.

입문서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지적 서비스는 ‘대답할 수 없는 물음’과 ‘일반적인 해답이 없는 물음’을 제시하고, 그것을 독자들 개개인에게 스스로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천천히 곱씹어보고 음미하게 하는 것입니다.

■ 저자 우치다 타츠루는 일본 고베여학원대학에서 문학부 종합문화학과 교수로 있다. 『죽음과 신체』등의 책을 냈고, 레비나스의 『곤란한 자유』등을 일본어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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