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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여성들, 독자적인 경제적 기반 갖고 있었다”
“조선중기 여성들, 독자적인 경제적 기반 갖고 있었다”
  • 박미해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사회학
  • 승인 2010.10.1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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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박미해 지음, 『유교가부장제와 가족, 가산』(아카넷, 2010.8)

우리는 생활에서 가부장제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다. 통상적으로 가부장제는 억압적 상황, 특히 남녀관계나 연하관계에서의 부정적이면서 완고한, 그래서 타파돼야 할 한국사회의 그 무엇을 얘기할 때 쓰인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가부장제는 조선조를 거치면서 매우 강고한 형태로 자리잡았다고 믿고 있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통상적으로 쓰는 가부장제라는 단어의 유래는 서구에서 시작됐다. 로마의 ‘patriarchy’는 매우 엄격한 가장의 통솔권한으로 가족구성원의 생사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patriarchy’의 사전적 용어가 가부장제로 해석되고, 여성학에서 중점적으로 이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이 용어는 더욱 널리 사용됐다.

가부장제는 당연히 존재하는 그 무엇이었기 때문에, 그것의 구체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특히, 우리의 역사에서 조선조 가부장제의 성격에 관한 문제제기는 있어 왔으나, 이를 자료로 실증적으로 제시한 연구는 없다. 어쩌면 우리의 역사에서 가부장제는 없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있어도 다른 유형으로 자리매김해야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것이 필자의 의문이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아우르는 접근

필자는 이 책에서 조선 중기를 전후한 한국 가부장제의 성격을 보고자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아우르는 실증적이며 역사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과연 우리가 설정한 통념적인 가부장제에 비추어서 조선중기의 사례들에서 나타나는 가부장제의 모습은 무엇이었는가. 조선조에서 가부장제가 정착하는 토대가 마련되는가. 이러한 조선조 가부장제의 물음에 대한 이해는 곧 현대 한국사회의 가부장제의 연원을 밝히는 작업이기도 하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남성과 여성, 강자와 약자, 연상과 연하의 관계는 여전히 가부장제의 속성으로 문제시되고 있다. 필자는 가부장제를 보기위해 막스 베버의 가산제의 방법론을 원용했다. 가산제의 개념에서 경제체제에 관해서는 가산제적 경제체제를, 또한 가부장적 지배구조를 중심으로 16세기 전후의 일기와 고문서 자료를 실증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부장제 분석은 크게 두 가지의 방법으로 시도할 수 있다. 첫째는 가부장제의 경제적 물적 토대를 이해하는 작업, 둘째는 가부장제의 이념적 의미체계를 살펴보는 것이다. 경제체제를 이해하는 것은 가부장제를 성립시키는 가산의 소유와 운용, 그리고 여러 가지의 가산동원 기제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양반가의 혼례와 천장례, 집안부양 등을 분석했다. 각종 유교적 의례에서의 가산 동원은 결국 가부장제를 형성하는 인간적 관계와 지배구조의 분석을 가능케 한다. 즉 혼수와 천장례, 부모봉양을 준비하는 가장의 네트워크관계를 기본으로 한 가장가산의 동원은 남녀관계와 부부관계에서의 가장권을 보여 준다. 부부관계에서의 남편의 권한과 부인의 권한, 그리고 사회적인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의 젠더 정체성 등을 살펴보면서, 조선중기의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보고 있다.

“조선 가부장제, 강고한 형태 아니었다”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이나 여성상으로 보면 조선중기의 양반여성들은 다소 우리의 통념을 벗어난다. 『미암일기』, 『묵재일기』, 『쇄미록』 등에서 보면, 조선중기까지도 여성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의 성적표현을 하고자 했으며,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결코 예속적인 관계로 볼 수 없는 면이 있다. 가령, 『쇄미록』에 등장하는 오희문 집안의 여성들은 친정에 선물을 보낼 때도 자신몫의 선물을 따로 보냈는데, 이것은 여성들의 독자적인 경제적 기반이 어떠한 형태로든 있지 않았나 짐작케 한다. 수령인 사위가 처가를 부양하는 것이 ‘例送’이라는 관습법의 형태로 존재했던 것을 이 책에서는 처음으로 사료로 확인하고 있다. 

필자는 17세기 중반에 행해진 양자상속의 법제화가 조선조 가부장제를 확립시키는 계기가 됐고 이후에 조선사회에서는 가부장권 강화와 여성권의 약화를 동반했을 것이라고 추론한 바 있다. 즉 이러한 논의는 이 책이 분석하고 있는 조선중기 이전에는 비교적 여성권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 책에서 확인한 16세기 전후 양반가의 실제 생활에서 본 조선의 가부장제는 실제로는 그리 강고한 형태의 가부장제가 아니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것은 가족구성원의 생사여탈권을 거머쥔 로마식의 가부장제나 중국의 가부장제와는 또 다른 형태의 가부장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가족구성원들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주로 부부관계에서 보여지는 가부장은 온화하고 존중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남성들은 때론 매우 감성적인 면도 보여주고 있으며 젠더 정체성이 상황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라는 시각도 제기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 책에서 역사적인 사료들은 매우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시,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가부장권하에서 통제되고 조달되는 양반가의 혼수준비와 인척관계를 분석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표의 제시에서, 조선중기의 혼례가 절충적인 반친영의 혼례로 행해지며 처가살이를 잠시하다가 본가로 돌아가는 거주율을 최초로 밝혀낸 필자의 구체적 일기 분석에서, 그리고 조선중기 아들과 딸의 일가부양과 부모봉양을 통해 장자권과 가장권을 범위를 보여주는 사례들에서 독자들이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조선중기를 전후해 이러한 가부장제가 나타나는 이유는 역사 속에서 증명됐던 한국여성들의 상속권, 개별권이라는 경제적 토대의 상이함과 함께, 이념적으로도 온화함, 중용을 중시했던 유교의 영향이 컸던 데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조선의 가부장제는 유교적 성격을 띤 유교가부장제라고 명명하고자 했다.

필자의 이 같은 연구에는 두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이론적으로 한국가부장제의 전개를 서구사회와의 비교를 통해 비교사회적 입장에서 밝혀내는 일이다. 둘째, 다른 사료들을 활용해 한국의 가부장제의 실증적 사례들을 좀 더 확장함으로써 조선조 가부장제의 성격을 보다 폭 넓게 규명하는 작업이다.

박미해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사회학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국역연수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초서과정을 졸업했으며, 저서로는 『사회학자들이 본 남성과 여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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