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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저술 근소한 점수론 책 못써 … ‘著書’ 안 통하는 대학
논문-저술 근소한 점수론 책 못써 … ‘著書’ 안 통하는 대학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0.10.18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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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연구중심대학 6곳, 인문학 교수업적평가 살펴보니

“논문은 옥석이 구분되지 않고, 저술은 저술대로 안한다.” 등재(후보)지가 많아지면서 권위있는 논문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논문 좇아쓰기에도 바쁜데 저술은 엄두도 못내는 교수들이 많다. 인문학 교수들은 교수업적평가부터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서강대 저서1권, 논문 2~3편 인정


지난 2월 승진과 업적평가에서 저술의 반영비율을 대폭 늘린 서강대 사례는 시사적이다. 개정된 서강대 교수업적평가에 따르면, 국제 저명학술지 논문은 1편당 200점, 국내 등재지가 130점으로 책정돼 있다. 전공학술저서는 논문에 비해 두세 배 가량 높다. 국제저서 400점, 국내저서 300점, 번역서 150점이다. 저서 1권이 등재지 2~3편에 해당한다. 저서의 성격이 다른 점을 감안해 평균치로 임의계상한 것이다.

출처: 대학별 규정집 '교수업적평가 시행세칙

임상우 서강대 문학부 학장(사학과)은 “외부기관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 승진, 재임용 평가가 논문에 집중돼왔다. 이 때문에 저술이 권장되지 못하거나 위축돼 가고 있다. 대학이 외부평가에 연연하다간 학문의 본질을 외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술의 범위를 시나브로 넓혀가려는 노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연세대는 내년 9월 심사대상자부터 저서 인정비율을 상향조정했다. 북미, 서유럽의 저명한 출판사에서 출간할 경우 1.5배, 최고 권위의 해외대학출판사에서 출간할 경우 해당 부문의 연구평점을 2배로 인정해준다.

인문대학의 일부 어문학계열은 80점을 부여한 사전편찬을 최대 200점, 200점을 인정하는 전문번역도 400점까지 인정된다.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한 경우 가산점 50점이 주어진다.

고려대는 단편번역 서평이나 해제에도 10점을 부가하고 연구번역(60점)과 일반번역(40점)을 나눠서 평가하고 있다. 번역서는 등재지 논문 1편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서울대는 출판되지 않은 단독보고서와 학술회의 발표에 수록된 논문에도 각각 50점을 부여해 저서나 논문 0.5편으로 인정하고 있다. 교과서 등 학술논문집으로 볼 수 없는 출판도서의 ‘chapter’ 저자에게도 30점을 부여한다.

조사 대상대학들은 최근 2~3년 사이 저술부문 업적평가를 수정·보완했지만 교수들은 “저술에 매달리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이다.

일단 국내 등재지 1편과 국내 학술서적 1권의 업적평가 점수 차이는 50~100점에 불과하다. 번역서는 국제저서의 3분의 1, 국내저서의 절반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경희대, 고려대, 연세대는 소설, 수필 등 창작물과 문예지에 출품한 작품도 일정정도 인정하고 있으나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는 별도의 조항이 없었다.

공신력 없다 외면? … 번역도 줄어

논문과 달리 저술은 교수 개인의 의향에 따라 출간이 좌우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공신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논문이나 칼럼을 모아 엮은 모음집이나 기존의 원고를 짜깁기해 분량만 늘려놓은 이른바 ‘컬렉션 저서’ 등을 단독저서(단행본)와 어떻게 구분해서 누가 평가할 것인지 마땅찮다는 이유로 저술 활성화에 관한 논의는 더디다.

저술이 줄다보니 번역도 준다는 우려가 나온다. 출판담당자들은 “인문분야의 최신 번역서에서 교수들의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 민간학술재단의 출판담당자는 “교수들이 한국연구재단 프로젝트에 몰리게 되면서부터”라고 분석했다. 송승철 한림대 교무처장(영어영문학과)은 “자연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논문 1편은 대단한 업적으로 평가한다. 인문학 분야는 저서의 가치를 재고해야 한다. 거칠게 말해 훌륭한 저서 1권으로 정년보장을 받는 수준까지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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