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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입맛 따라 논리 전개 … ‘통일문제’ 심도있는 분석 필요
이념·입맛 따라 논리 전개 … ‘통일문제’ 심도있는 분석 필요
  • 안두순 서울시립대·경제학부
  • 승인 2010.10.11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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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통일 바라보는 한국언론, 무엇이 문제인가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동서독 간의 화폐ㆍ경제ㆍ사회통합, 그리고 통일은 한국민들에게 하나의 충격이었고 부러움이었으며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호재를 만난 한국의 언론들은 독일 통일의 진행 과정과 관련된 사건들을  생중계하듯 보도하면서 나름대로의 분석과 평가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감성적인 표현들은 사라지고 우리의 냉엄한 현실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한국의 언론사들은 차츰 각자의 이념과 노선과 맞는 논리를 전개하고 방향성을 찾는데 바빠진 것이다.

2009년은 베를린 장벽 20주년, 그리고 올해는 독일 통일 20주년이다. 한국의 집권정당이 바뀐 이후의 독일통일 관련 보도경향(한국의 다섯 개 일간신문의 사설·칼럼 분석)을 보면, 최근 들어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에 대해서는 논의 자체가 뜸해졌다. 그 대신 대북 강경한 자세 또는 단호한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북 유화정책에 대한 비판이 강화됨과 동시에 우방과의 협조체제,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과의 돈독한 관계 강화를 주문하는 논조가 강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통일은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서, 민족 자주성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논조도 변함없이 꾸준히 대두된다.

독일의 통일후유증에 대한 보도가 자주 등장하면서 얼마 전까지는 북한이 붕괴되면 한반도 전체에 하나의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견해가 공감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 매우 조심스럽게 언급되던 ‘북한 붕괴론’이 최근 들어 자주 논의되는데 이러한 논조는 한나라당의 MB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더욱 강세를 타고 있다. 

한국의 통독 관련 보도에서 몇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통독 과정과 초기의 관심사와 논조는 독일의 통일에 대한 부러움, 한반도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우리도 해낼 수 있고 해 내야 된다는 각오와 다짐 등 주로 감성적인 면이 주를 이루었다. 통독이 공식적으로 완료되고 통합과정이 진행되면서 통일 후유증, 통일비용, 동서독 간의 갈등 등을 주로 다루면서 한국은 과연 통일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남북 간 교류협력의 중요성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던 초기와 달리 최근으로 올수록 보수 측 언론은 한미동맹과 우방과의 공조, 대북강경자세를 요구하는 논지가 강해진 반면 진보 측 언론은 민족 동질성과 한반도 자체적인 통일비전 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진보측은 북한 붕괴는 국내외적으로 위험부담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붕괴를 막기 위해서도 북한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보수 측은 북한의 붕괴가능성에 대비책을 촉구, 거기에 따른 비용은 분담가능 범위에 있다는 논리가 지배적이다.

독일통일 초기에는 비교적 평가와 시각에 그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었고 한반도 통일에 대한 기대와 포부가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동서독과 한반도 간에 존재하는 지정학적·군사정치적·문화적·경제적 차이가 큰 점을 부각시키는 추세로 변했다. 그렇다고 이러한 ‘시각의 접근’이 북한에 대한 시각, 남한 정책당국의 대북 정책, 한반도 문제의 해결 및 통일 접근방식에 대해서 서로의 견해가 간극을 좁힌 것은 아니다. 견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욱 벌어지는 것을 여러 차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해마다 독일통일의 평가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시사점 내지 교훈을 얻기 위한 세미나, 심포지엄, 워크숍 등의 학술회의와 정책토론회 등 각종 행사가 많이 열린다. 앞으로도 최소한 한반도의 통일이 완성되는 그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 깊이의 정도 수준은 말할 것도 없고 주제나 내용은 물론 결론도 20년 전이나 현재나 달라진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점 또한 앞으로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비단 한국의 언론이나 학계뿐만 아니고 정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해마다 많은 학술회의가 열리고 특히 독일에서 많은 전문가들도 초청돼 한국에 와서 발표를 했다. 하지만 언론들은 학술회의 내용이나 전문가들의 토론 내용을 취급하는 데에는 매우 인색했다. 이는 비단 한국 학자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독일의 학계 출신 전문가들에게도 해당된다. 한국 언론들은 독일의 중량급 정치가들의 발언에 대해서는 가끔 인용 내지 보도를 하지만 학술토론의 내용이나 학자들의 견해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한국의 언론도 이제는 저널리즘에만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통일문제에 만이라도 심도 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논평을 해주면 좋겠다.

□ 이 글은 지난 8일 열린 한독경상학회 2010 추계국제학술대회에 발표한 ‘한국 언론에 비친 독일 통일 : 20년간의 추세적 변화를 중심으로’를 요약한 글입니다.

안두순 서울시립대·경제학부

독일 보훔대에서 박사를 했다. 저서로 『혁신의 경제학』『안두순의 거시경제학』등이 있다. 서울시립대 기획실장·교무처장, 한독경상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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