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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인문학의 부흥기, 대학 인문학은 무엇을 하고 있나
대중 인문학의 부흥기, 대학 인문학은 무엇을 하고 있나
  • 신승환 가톨릭대·철학과
  • 승인 2010.10.0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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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위기 선언’, 그 이후

이른바 강단을 벗어난 ‘길 위의 인문학’이 성황일 때, 역설적으로 대학을 중심으로 한 제도권에서의 인문학은 여전히 고사 직전에 놓여 있다. 2006년 인문학 위기 선언의 직접적인 계기는 대학의 인문학이 처한 객관적인 상황에 따른 것이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학문에 비해 인문학은 너무도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상황 인식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인문학 위기 선언이 아니었던가.

제도권에서의 인문학은 학생은 말할 것도 없이, 학문후속세대와 문화 일반에서 소외되고 외면됐다. 대학에 학부제가 도입되면서 인문학의 핵심과목이라 말할 수 있는 철학과 역사, 심지어 문학까지도 외면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인문학 위기 선언과 이후 이루어진 여러 가지의 지원책과 사회적 관심에 미루어 인문학은 과연 위기를 벗어난 것일까. 결코 그렇지 못하기에 문제인 것이다. 오히려 이런 외적인 인문학의 부흥에 가려 인문학 본연의 특성과 역할은 더욱 죽어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함이 자리한다. 일반 인문학 강의의 범람과 수많은 인문학 서적이 출판돼 팔리고 있으며, 사람들의 관심이 인문학으로 쏠리고 있음에도 인문학의 위기는 극복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사실 이런 외적인 분위기만 보면 인문학 위기 운운하는 말은 과장된 엄살 정도로 느껴진다. 학문으로서의 인문학과 제도권의 인문학이 처한 상황과 대중 인문학의 모습은 동떨어져 있다. 고사 직전에 놓여 있는 학문적 인문학과 범람하는 대중 인문학, 무엇이 문제인가.

대학의 인문학은 제도로서, 과거의 유물로서, 그들만의 인문학으로 자리하고 있다. 현재를 성찰하지 못하고 현재의 존재에 의미를 보여주지 못하며, 서양의 것, 과거의 지식체계에만 안주하는 학문이 주목받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물론 대학의 인문학이 냉대 받는 이유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오늘날 대학은 자본주의의 틈새를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취업과 기업의 논리에 충실한 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진단은 새로운 것일까 아니면 진부한 것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현실을 모르는 백면서생의 안일한 생각일까? 이 질문에 대한 생각에 현재의 인문학이 처한 위기 상황의 본질이 자리한다.

과연 인문학의 위기는 극복된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인문학은 위기를 말함으로써 위기를 배제하고 위기가 위험으로 치닫지 않게 하는 학문이다. 지금의 인문학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가. 현재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이며, 자본과 물질로만 세상을 바라보기에 생겨나는 문제이다. 그런데 인문학이 그런 현재에 종사하고, 자본의 논리를 충족시키고, 자본의 문화가 저지른 틈새를 매우는 역할을 할 때 인문학의 위기는 깊어만 갈 것이다. 비록 한때의 각광과 현재의 축제에 젖어 자족할지 모르지만 그럴수록 인문학의 위기는 깊어 갈 뿐이다.

인문학이 자기비판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비판이란 비난이나 소수자의 항변이 아니다. 비판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하기 위한 출발일 뿐이다. 시대의 바람을 읽고 그 흐름을 말하는 것이 인문학이지 않은가. 바람의 흐름을 미리 말하는 인문학은 현재의 여백에 자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최근 서울대를 졸업해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 17명의 칼럼을 모은 책이 주목받는다고 한다. 인문학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 책이다. 인문학은 결코 그런 이유로 존재하는 학문이 아니다. 그런 성공이 오히려 인문학을 위기로 몰아간다.

인문학이 현실의 한계를 보완하거나 자본의 논리에 종사할 때, 그것은 인문학에 대한 배신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인문학은 그런 현실을 비판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말하는 학문이지, 그러한 현실이 필요로 하는 논리와 자원을 공급하는 학문이 아니다. 인문학이 현실을 떠나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역할과 기능을 인문학으로 이해하고 거기에 자신을 묶어둘 때, 인문학의 위기는 심화된다는 말이다. 인문학적 존재는 물론, 그가 속한 공동체도 위험에 빠져드는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극복되지 않았다. 위기 선언으로 사회적 위안을 받고 각광받지만 그 갈채가 깊어갈수록 인문학은 더 죽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와 우리 삶의 진정한 위기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정확한 해명과 그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 인문학은 또 다시 위기를 불러 올 것이다. 10여년 뒤 어느 날 몇몇 학자들이 모여 다시금 인문학 위기 선언을 할 것이다. 지금의 인문학이 우리의 현재를 성찰하지 못하는 한, 역사는 되풀이 될 뿐이다.

□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펴내는 <인문정책 포럼> 2010년 가을호에 실린 ‘인문학의 위기는 극복되지 않았다’를 발췌·요약한 글입니다.

신승환 가톨릭대·철학과

독일 레겐스부르크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국하이데거학회장을 맡았다. 저서로 『문화예술교육의 철학적 지평』 『근대의 끝에서 다시 읽는 문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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