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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자의와 친일 비평가란 모순된 평가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마르크스주자의와 친일 비평가란 모순된 평가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 손정수 계명대·문예창작과
  • 승인 2010.10.0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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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철 연구의 전개와 쟁점

한 인간의 삶이 단일한 면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 삶이 결코 순탄치 않은 역사적 과정을 통과해야 했다면 불가피하게 세월의 풍파와 시련에 깎이고 마모돼 더욱 미세하게 분할된 단편적인 면들을 지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망국의 전야에 태어나 식민지 지식인으로 청춘을 보내고 해방 이후 새로운 세상에서 중년을 맞았다가 곧이어 찾아온 분단의 소용돌이 속에서 월북해 언제인지도 모르게 사라져간 신남철(1907∼?) 역시 그와 같은 다면체의 삶을 자신의 운명으로 떠안아야 했다.

그럼에도 역사적 시선에 의해 탐지된 그의 삶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제한된 면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신남철은 주로 서양철학의 수용과 한국에서의 근대철학의 성립을 탐구하는 철학 분야의 연구자들과 일제말기의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전개된 문예비평의 양상을 해명하는 한국문학 분야의 연구자들에 의해 역사적 해석의 조명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철학 분야에서 그는 박치우와 함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로 인식되고 있는 반면, 문학 분야에서는 서인식, 김오성, 박치우와 함께 당시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동양주의에 공명한 친일적 성향의 역사철학자로 설명돼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모순되는 결과들이 생겨난 원인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작용하고 있었던 듯하다. 우선 신남철이 활동했던 식민지 시기의 한국 문학은 학문이나 예술보다 운동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이념이 그 운동을 떠받치고 있었고, 그 시기 문학자들은 서로 다른 노선의 운동에서 주동적인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주로 아카데미즘의 영역에서 이뤄진 신남철의 마르크스주의 연구는 그다지 큰 관심의 대상이 되기 어려웠고, 그리하여 1930년대 후반의 동양문화의 특수성에 대한 논의만이 부각되는 경향이 있었다.

경성제국대란 장 통해 삶과 사상 재조명 시작

반면 철학 분야에서는 서양 철학의 수용이라는 학문적인 프레임으로만 신남철을 포착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서양철학의 조류들이 철학자들에 배당되는 방식의 구도가 이뤄졌다. 가령 실존주의-박종홍, 마르크스주의-신남철, 박치우, 생철학-이재훈, 이종우, 신칸트철학-안호상 등의 등식이 성립됐고 그와 같은 선입견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됐다. 그러면서 그가 문학 저널리즘에서 활동했던 이력들은 항상 그 프레임 바깥에 놓여 있었고, 결과적으로 근대 철학 초기의 연구진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그의 활동의 성격을 전면적으로 규정하는 결과가 초래됐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학문 분과의 제한된 틀로부터 벗어나 있던 영역을 탐색하는 시도들이 등장해서 신남철의 삶과 사상의 새로운 측면을 드러내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작업은 경성제국대란 장을 통해 신남철의 사상과 그 변화 과정을 재해석하면서 비롯됐다. 즉 한편으로 신칸트주의, 생철학, 실존철학 등 당대의 비합리주의적 사조로 경시되던 제도적 차원과 조선인 학생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던 강한 현실 지향성이라는 의식적 차원이 서로 배치되면서도 공존하고 있는 경성제국대란 장의 성격을 통해 신남철 사상의 두 측면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매개를 발견했던 것이다. 신남철의 사상적 실천에는 그 두 방향이 결합돼 있었다. 실제로 신남철의 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은 그 자체로서 적극적으로 주장된 것이라기보다, 신칸트학파로부터 동양문화론에 이르는 당대의 비합리주의적 철학 조류에 대한 비판의 형식으로 제시된 것이었다. 물론 그 두 항 사이의 균형은 당대의 미키 기요시(三木淸) 등의 일본 사상계의 좌파적 성향을 참고하면서 추구됐던 것이고 또 시대적 환경의 변화 속에서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 형식은 대체로 유지됐고, 그 잠복된 형식은 해방된 실천의 공간에서 다시 실현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관계항 가운데 하나만 보고자 할 때 신남철의 사상은  변질된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 이후 문학과 철학 양 분야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진행돼 온 연구를 연결시키는 방향이 더 확장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철학 분야에서는 개별적인 사상 조류로 분류해 그 대립과 차이를 강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근대 초기의 철학자들 사이의 연관과 상호 작용에 주목하는 일련의 연구들이 이뤄졌다. 

이병수의 「1930년대 서양철학 수용에 나타난 철학1세대의 철학함의 특징과 이론적 영향」(<시대와 철학> 제17권 2호, 2006)에서는 초기 철학자들 사이에 공유됐던 현실 지향성이라는 특성과 그 변모 과정에 대한 고찰이 이뤄지는 한편 당대의 일본 사상계뿐만 아니라 유학적 전통까지 그 이론적 영향이 다각적으로 검토됐고, 김재현의 「한국에서 근대적 학문으로서 철학의 형성과 그 특징-경성제국대학 철학과를 중심으로」(2007)에서는 제도적 차원과 운동의 차원이 모순적으로 공존하고 있던 근대 초기 철학 연구진의 성격에 대한 해명이 실증적 차원에서 보완되고 보다 구체화됐다.

유학적 전통까지 이론적 영향 다각도 검토

한편 문학 분야에서는 신남철이 주로 저널리즘 활동을 통해 아카데미즘과 마르크시즘의 실천적 결합의 형태로 추구했던 ‘비판적 조선학-과학적 조선 연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한편 그 방향성이 해방 공간에서 ‘국립서울대안’ 반대 투쟁과 ‘조선학술원’ 설립 운동의 주도로 이어지고 월북 이후 북한의 아카데미즘 속으로 흡수되는 과정까지 확인하면서 신남철 사상 전체의 연속성과 비연속성까지 논의의 시야를 확장시킨 바 있다(정종현, 「신남철과 ‘대학’ 제도의 안과 밖-식민지 ‘학지(學知)’의 연속과 비연속」, 2010).

이와 같은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 견고하게만 보였던 선입견들은 조금씩 극복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친일 비평가라는 모서리 주위에 접혀 있던 주름들은 펼쳐지기 시작했고, 신남철 사상의 성격에 대한 보다 유연하고 풍부한 해석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신남철이 철학 분야에서 문제성을 띤 인물로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는 현상 또한 최근 활발하게 이뤄진 연구에 힘입은 바 적지 않은 것 같다. 신남철의 경우를 통해 보건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상의 운명은 때때로 이처럼 우리가 짐작할 수 없었던 표정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 같다.

손정수 계명대·문예창작과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전복적 상상력’을 전복하는 상상력」, 저서로는 『한국 근대문학사의 틈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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