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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국립대 편파지원의 위헌성
[특별기고] 국립대 편파지원의 위헌성
  • 교수신문
  • 승인 2002.05.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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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14 18:05:50
정영섭
건국대·경제학과

학벌철폐를 위해 결성된 시민단체 ‘학벌없는사회만들기’(대표 정영섭 건국대 경제학과)가 “국가가 국립대학에 대해서만 재정지원을 함으로써 국립대생과 사립대생의 등록금 납부액에 현저한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은 위헌이다”라며 지난 7일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위헌소송의 배경과 서울대 독점의 문제점에 대해 정영섭 교수가 기고해왔다.

3년 전에 이 문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적이 있다. 지난 7일에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국립대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렇게 당연해 보이는 錯視현상이 사건을 은폐하기 일쑤다. 국가가 설립했으니 국가에 운영책임이 있다는 동어반복의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편파지원은 내용은 ‘국고에 의한 등록금(가격)의 덤핑’, ‘시설 및 운영비의 자동적인 지원’이다. 국립대는 등록금이 사립대의 절반 이하이고, 자동적으로 유입되는 국고지원이 수입의 60%를 차지한다.

이것이 문제되는 것은 국립대가 사립대와 경합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국립대가 특수한 목적과 기능도 없이 사립대와 동일한 교과과정을 제공하기 때문에 양자는 학생모집에서 서로 경합하는 것이다. 이때 국립대가 월등한 위치에서 사립대를 압박하며 불공정거래를 자행하는 것이다. 그것도 ‘국가기관’이라는 공적인 제도 속에서 ‘합법적’으로 너무도 당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일제시대에 일제의 통치가 당연했던 것처럼.

국립대를 설립할 때는 첫째,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립대가 담당할 수 없는 특수목적이거나, 또는 사회복지목적이 그것이다. 둘째, 설립된 후에는 그의 현실적 기능이 당초 목적에 부합돼야 한다. 셋째, 국가는 수시로 국립대학들을 심층 평가해 ‘설립 당시의 목적이 아직도 타당한가’, ‘그 목적이 현재에도 실현되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확인해야 한다.

만일 사립대와 경합하는 국립대의 존속이 불가피하다면 등록금책정, 재정지원 등 외부적 조건을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조성해야 한다. 단지 국립이기 때문에 국고지원을 받아 경쟁우위를 누리고, 더구나 설립취지가 사라지고 대학운영이 부실해도 ‘국립’이기 때문에 국고로 존속시키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이렇게 합법성으로 은폐된 공권력의 시장지배가 국립대 자체와 사립대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막대한 위헌적 폐해를 야기하고 있다.

우선 기존 국립대학들의 운영이 부실하다. 국립대는 일차적으로 싼 등록금 때문에 학생들이 몰려와, 여타의 조건이 동일하다면, 교육의 질은 정확히 등록금할인율만큼 낮아지게 된다. 또한 운영비는 자동적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땀 흘려 경쟁력을 높일 내부적인 유인이 없고, 외부적으로는 사립대보다 경쟁우위가 상승하는 효과도 없다. 그리고 부실상태와 교육의 낮은 질은 외부로 표출되지 않고, 그에 따른 제재나 손실도 없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퇴출의 위험이 없다. 그러므로 운영부실과 재정낭비가 절대 필연적이다. 이번에 발표된 국립서울대학교총장의 행위와 국고유용도 통상적인 관행이고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반면에 사립대들은 국립대 우위의 서열체계 속에 매몰돼 공정한 경쟁과 이로 인한 발전, 또 어떠한 특성화정책의 효과도 처음부터 제한적이다. 그리고 국가의 과도한 간섭으로 대학의 자율성이 제약된 상태에서 항상 퇴출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 상황에서 사립대 학생들은 동일한 납세국민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사립대학에 다니기 때문에 대학교육에 대한 국고지원에서 소외되고, 더구나 국립대 보다 2배 이상 비싼 등록금을 지불해야 한다. 한편, 교육예산은 간접세로 징수되기 때문에 저소득층 사립대학생의 조세부담은 역진적으로 더 크다. 이러한 삼중적 재정손실 외에 대학서열과 학벌의 등급에 따른 사회적 불이익을 평생동안 받아야 한다. 학벌 중에는 ‘국립 서울대’의 학벌이 공산당원 같은 특수계급으로서 압도적인 독점지위에 있고, 낮은 서열의 학벌들은 의식, 무의식적으로 억압, 소외되고 있다.

이상과 같은 국립대학 편파지원은 우선 공정거래법 제3조 2항의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금지’, “상품이나 용역의 대가(가격)를 부당하게 결정, 유지하는 행위”임을 비롯하여, 헌법 제11조 ‘평등권의 침해’, ‘사회적 특수계급제도의 인정’, 제31조 ‘교육기회균등’ 및 ‘대학 자율성의 침해’ 등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문제의 핵심은 사건의 객관성보다 이를 최종적으로 판정, 개선할 위치에 있는 국정운영자들의 주관적인 견해라는 것이다. 의도적인 ‘기득권수호’ 차원이 아니더라도, 반세기 동안 그 제도의 혜택 속에서 성장한 세대가 제도 자체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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