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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산 들어있어 힘내는 데 ‘직방’ … 왜 즐겨야 할까
유기산 들어있어 힘내는 데 ‘직방’ … 왜 즐겨야 할까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0.10.0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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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9> 식초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예전부터 전해오는 ‘健康 十訓’이라는 것이 있다. 육고기를 적게 먹고 푸성귀를 많이 먹는다, 소금을 줄이고 식초를 늘인다, 설탕을 삼가고 과일을 듬뿍 먹는다, 음식을 적게 먹고 오래오래 씹는다는 등의 식습관에다, 근심을 줄이고 잠을 넉넉히 잔다, 화를 내지 말고 마냥 웃는다, 옷을 가볍게 입고 목욕을 자주한다, 쓸데없는 말을 줄이고 행동으로 실천한다, 욕심을 적게 내고 많이 베푼다, 차를 타지 않고 늘 걸어야 한다 는 등의 마음가짐을 다짐하고 있다. 하나도 틀린 말이 없다.

짜게 먹지 말고 몸에 좋은 식초를 즐기어라! 예전엔 막걸리를 통째로 술병이나 단지에 붓고 뜨뜻한 부뚜막에 진득하게 몇 달을 놓아뒀다. 그러면 찌꺼기가 밑에 갈아 앉고 위에 말간물이 뜨니 시큼한 식초다. 헌데 우리 엄마는 병/단지뚜껑을 닫지 않고 그대로 열어 놨었다. 저게 먼지 들어가겠는데…. 소갈머리 좁은 난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거기에 심오한 과학이 도사리고 있을 거란 애초에 몰랐다.

술독의 누룩곰팡이들이 녹말덩어리인 지에밥(고두밥)을 엿당→포도당으로 분해하고, 효모 등 여러 미생물들이 포도당(C6H12O6)을 술(C2H5OH)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알코올발효라 한다. 그리고 醋酸細菌(Acetobacter)들이 알코올(술)을 아세트알데히드→식초(CH3COOH)로 만드는 것이 산소가 있어야 하는 초산발효이다. 초산균은 호기성세균이기에 초를 담아놓은 단지에 마개를 하지 않았던 것. 그랬구나! 匹婦의 허튼짓이라 얕보고 탓하지 말 것이다.

여기까지를 다시 정리해보면, 분자구조가 복잡한 녹말이 여러 과정을 거쳐 구조가 간단한 술이 되고, 술은 다시 산화돼 더 간단한 초산이 됐다. 그래서 밥보다는 포도당이, 포도당보다는 술이, 술 보다는 식초가 더 빨리 힘(ATP:아데노신3인산)을 낸다. 특히 초산에는 枸酸을 비롯해 여러 종의 유기산이 들어있어 힘내는 데는 직방이다.

그런데 식초단지 근방이나 깎아버린 과일껍질에 눈곱만한 꼬마파리가 뒤끓는다. 그 파리는 서양 사람들은 과일(특히 바나나)에 잘 끼기에 ‘fruit fly’라 하니, 이를 직역해 가끔 ‘과일파리’라고 잘 못 틀리게 쓰는 것을 본다.
우린 초와 같이 신 것에 잘 꾄다하여 ‘초파리’라 부른다.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는 발효 중인 과일즙을 먹고 살기에 알코올분해효소(ADH)와 아세트알데히드 분해효소(ALDH)를 가지고 있어 술 잘 먹는 파리무리에 속하는 곤충이다. 선천적으로 ADH나 ALDH 효소가 없어 술을 전혀 못 마시는 친구를 놓고 “초파리만도 못하다”고 놀린다. 그 사람의 소원이 뭔지도 모르고 말이지.   

식초는 그 나라의 기후풍토나 널려있는 자료에 따라 나라마다 다르니, 한국의 현미식초/감식초, 일본의 우메주/율무식초, 중국의 黑醋/枸杞醋, 백포도로 만드는 이태리의 발삼식초(balsamic vinegar), 동남아의 야자/코코넛식초, 필리핀의 사탕수수식초, 중동지방의 대추(date)식초, 독일의 맥주식초, 스페인이나 프랑스의 꿀 식초, 뉴질랜드의 키위식초, 미국의 사과식초들이 이름 나있다.

식초라는 뜻의 영어단어 ‘비니거(vinegar)’는 프랑스어로 포도주(vin)와 신맛(aigre)를 합친 vinaigre에서 온 말로 ‘시큼한 술(sour wine)’이란 뜻이라 한다.
새콤한 식초는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다. 그것은 침과 위액 등 소화액분비를 왕성케 하며, 떫음/씀/비림/냄을 없애주고, 짠맛을 덜어주며, 활성산소를 잡아주고, 오이나 양파절임에 쓰며, …… 연탄가스중독에도 특효인 식초가 아니던가!? 방부제, 살균도 하기에 식초에 버무린 초밥/생선초밥/유부초밥들이 쉽게 상하지 않는다.
냉면/막국수에 혓바닥을 짜르르하게 하는 식초를 치지 않았다면? 아이고나, 생각만 해도 한가득 군침이 도는 도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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