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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비용 면밀한 검토없이 장밋빛 포장만 했다”
“부작용·비용 면밀한 검토없이 장밋빛 포장만 했다”
  • 김형래 경북대·불어교육학과
  • 승인 2010.10.04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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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민영화’ 그림 그린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달 28일 이른바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대체로 이미 발표됐거나 추진 중인 정책들이 대부분이며, 국립대학을 진정으로 선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 고등교육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온 국립대학을 ‘후진화’시키지나 않을지 우려를 자아내는 부분도 없지 않다. 


첫째, 국립대학 법인화는 거론되기 시작한지 벌써 20년이 넘었으며, 2007년 6월 정부를 거쳐 법률안까지 국회에 제출됐지만 자동 폐기된 바 있다. 이후 개별 대학 차원의 법인화 추진으로 방향이 선회됐고, 매번 관련 당사자들 사이에 소모적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일본에서 전면적으로 법인화를 추진한 결과가 과히 성공적이지 않다는 것이 중론임에도 불구하고 교육 당국은 국립대학에 자율성을 부여해 경쟁력을 제고시킨다는 명분 아래 줄기차게 밀어붙이고 있다.

책임은 대학에 떠넘기고, 통제는 유지?

그러나 국회에 제출돼 있는 서울대와 인천대 법인화 법률안 내용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하는 법인화가 실현될 경우 정부의 책임은 상당 부분 대학에 떠넘기되 대학에 대한 통제는 여전히 유지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때문에 대부분 대학 구성원들이 반대하고 있다.

정부가 대학 지배구조의 선진화 방안으로 법인화와 함께 제시하고 있는 학장 임명제, 교육대학 총장 간선제는 법인화된 국립대학의 핵심 사항인 총장 간선제와 정확히 그 맥을 함께 하는 것으로, 대학 자치와 대학 민주주의의 상징인 직선제를 일부 폐단이 있다는 핑계를 내세워 간선제 또는 임명제로 바꾸겠다는 의도다. 이러한 지배구조는 결과적으로 대학을 정부가 마음대로 통제하는 상황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번 ‘선진화 방안’ 자료에도 여러 군데 등장하고 있듯이 교육 당국이 그동안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온 통제 수단인 ‘행·재정적 지원 또는 제재’가 곁들여지면 국립대학의 자율성은 껍데기만 남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성과급적 연봉제’는 당사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당장 내년 신규 임용 교원부터 시작해 3년 만에 모든 국립대학 교원을 대상으로 전면 실시하는 것으로 돼 있다. 전국 국·공립대학 교수회 연합회(이하 국교련)는 이미 지난 봄부터 모든 경로를 통해 이 제도의 실시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전국 국·공립대 교수의 60% 정도가 반대 서명에 동참한 바 있다. 이 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보면 기존의 호봉 승급 예산과 성과급 예산만을 가지고 1년 단위의 평가에 따라 연봉에 차등을 둬 지급하며, 차등의 일부가 다음 해 연봉에 자동으로 반영되는 방식으로 돼 있다. 실질적으로 현재 지급되고 있는 성과급과 비교해 크게 나아지는 점도 없는 제도를 무리하게 도입하면서 이를 통해 국립대 교원들의 성과를 ‘일부 상위 사립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단견이요 하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교수마다 학문 분야가 다르고 전공이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업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도 절대평가가 아니고 상대평가에 의해 무조건 하위 10%의 교수 연봉을 동결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더군다나 법률로 보장돼 있는 국립대 교원 신분에 중요한 변화를 초래할 제도의 도입을 시행령의 개정만으로 추진하겠다고 하니 당장 위헌 소송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교원 특별채용 활성화 역시 성급히 추진할 일이 아니다. 최근 모 장관 자녀 특채 파동이나 각계각층에서 확인되는 유사한 사례들을 감안하면 자칫 논란거리가 양산될 우려가 있다. 공정한 절차를 마련한다고는 하지만 각종 탈법이나 비리가 절차가 없어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실패한 교육정책’ 책임지는 모습 보였나

결국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이 담고 있는 큰 맥락은 국립대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 아래 사립대와 근접시켜 나가는 일종의 ‘민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교련은 이러한 흐름에 일관되게 반대해 왔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국립대학에 대폭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향의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준비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립대학들은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우리 고등교육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다. 세계적인 대학과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질책하지만 그러한 세계적인 대학들과 대등한 예산과 인력을 전제로 비교하는 것이 마땅하다.

지금 의학전문대학원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일이나 과거에 강압적으로 학부제를 도입했다가 유야무야됐던 사례에서 경험했던 바와 같이 교육 당국의 일방적 정책 추진은 결국 사회적 비용만 낭비하고 정책의 기대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한다. 하지만 실패한 교육정책에 대해 지금까지 교육 당국이 책임지는 모습은 본 기억이 없다. 모든 정책과 제도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한다. 정부에서 국립대 운영과 교원 신분에 커다란 변화를 수반하게 될 중요한 정책을 수립할 때에는 그 명분과 기대효과를 무조건 장밋빛으로 포장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수반될 부작용과 각종 비용 등에 대해서도 면밀히 분석, 검토해 신중히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김형래 경북대·불어교육학과 /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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