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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대회] 이화여대 교수학술제 ‘새로운 인문학을 향하여’
[학술 대회] 이화여대 교수학술제 ‘새로운 인문학을 향하여’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5.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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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18 11:13:32
 ◇ 김혜숙 교수
지난 달 25일 이화여대 인문대 연구관에서는 교수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작은 ‘인문학대회’를 펼쳤다. 말이 같은 단과대에 속한 ‘인문학’이지 교수들의 전공은 마치 지식백화점을 방불케 할 정도로 철학, 종교학, 어학, 문학 등 저마다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나 이 행사가 그다지 낯선 풍경은 아니다. 지난 93년에 시작된 이래 인문대 교수학술제는 벌써 10회째를 맞이했고 이 날의 주제인 ‘새로운 인문학을 향하여’도 세 번째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이러한 인문학의 학제적 연구를 위해 인문학연구원(원장 김혜숙 철학과 교수)이 본격적으로 출범했기에 의미가 남달랐다.

靈知主義에서 국가 이미지 까지

이날 문을 연 것은 ‘사로잡힌 영혼과 신의 좌오: 영지주의 우주론에 대한 인간학적 고찰’을 주제로 발표한 박경미 교수(기독교학)였다. 박 교수는 종교의 전통을 인도종교와 근동종교로 나누면서 오늘날 靈知주의의 요소를 살펴 흥미를 끌었다. 박 교수에 의하면 전통적으로 힌두교나 불교 같은 인도종교들이 인간과 세계, 신을 일원적 원리를 추구하는 우주적 종교로서 내면 탐구에 치중한다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근동 종교들은 이원론적으로 나눠져 외화된 성실성과 복종을 요구한다. 기독교 내에서 소수자로 명맥을 유지했었던 영지주의는 앎의 방식에 있어 이 둘 사이의 혼합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헤르만 헤세의 성장소설, 현대 실존주의 사상, 융의 이론 등 오늘날의 문화에서 이러한 영지주의의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브리토마트의 해부학 수업: ‘선녀여왕’ Ⅲ권 연구’을 주제로 발표한 정덕애 교수(영문)는 시인 스펜서의 ‘선녀여왕’에 나오는 여성의 몸을 관찰하는 시선을 분석한다.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린 병든 내장을 스스로 어루만지는 자화상을 연상시키는, 이 ‘달갑잖은 해부’를 대하는 여성의 자아는 어떤가. “그(브리토마트)가 낭송하는 동안 그녀(아모렛)는 만약의 공격에 대비해서 그녀의 칼을 높이 들어 그를 겨누고 있었다”는 유장한 詩句를 읽다보면 스펜서가 여성의 욕망을 기율하는 도덕담론의 알레고리의 틀 안에 여성을 가둘 수 없었던 고민이 엿보인다.

‘매스미디어와 한국현대문학’을 주제로 발표한 김상태 교수(국문학)는 750년경의 목판 無垢淨光陀羅尼經 이후 금속활자, 신문에 이르기까지 인쇄미디어를 열거하고 1925년 라디오 이후 방송매체를 통해서 문학이 대중과 가까워져 오는 길을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뉴미디어 시대에 디지털문학의 위상을 다음과 같은 말로 압축해서 설명한다. “지금짜지 리얼리즘의 사고가 지배하고 있어서 현실성이 없거나, 개연성이 없는 기술은 기피됐으나 사아버 문학에서는 환상과 현실이 뒤섞이는 내용이 흔하게 나타난다.”

 ◇ 최준식 교수

최근 들어 유난히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의 목소리를 높여온 최준식 교수(한국학)는 예의 ‘국가 이미지 창출과 인문학’을 주제로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최 교수는 한국인이 외국인 앞에서 자긍심을 갖고 대접을 받지 못하는데는 국가 이미지가 부재한 탓이 크다고 말한다. 그는 예술과 인문학이 나서서 이미지를 찾아야 하며 이를 한국인이 갖고 있는 기록문화정신을 文이라고 요약한다. 한류문화, 가무문화, 게임문화, 기민하고 전투적인 성향 등을 자유분방한 역동성인 神으로 부각시킨다. 따라서 서로 대립되는 文과 神의 조화야말로 국가이미지 제고의 관건인 셈이다. 이런 주장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라는 언사는 차치하더라도 서양철학이 그토록 극복하려 했던 동질성과 을 우리가 좇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에 직면하게 된다.

김치수 교수(불문학)는 ‘욕망, 확산 혹은 거부: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인문학이 처한 현실과 나아갈 길에 대해 고민했다. 인상주의 비평이나 실증주의 비평에 그쳤던 19세기에 비한다면, 신화비평에서 해체주의 비평에 이르기까지 과연 20세기는 비평의 시대였다. 김 교수는 주변 과학의 영향으로 인문학이 부쩍 커버린 이후 비평은 전문화됐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독서가 직접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으로 문학작품을 느끼기보다는 특수한 형식을 취해 받아들이는 人文科學이 돼버렸다. 김 교수는 자신이 소개한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에 나오는 ‘3각형의 욕망’ 이론을 통해 후기 산업사회를 사는 우리도 구원받기를 원하는 중개자를 모방하듯 현실을 사물화된 채로 받아들이고 간접적으로 욕구를 발산하는데 익숙해져 있다고 진단한다. 김 교수의 진단은 맑시즘, 정신분석학, 구조주의나 해체이론 등 ‘20세기의 과학’을 통해 풍성해진 인문학의 논의들도, 결국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체와 대상이 교호하던 인문학 연구의 始原을 복구해야한다는 제안이기도 하다.

 ◇ 김치수 교수

科學 이전에 始原 찾아야

박경미, 정덕애 교수가 맡았던 작업이 해당분야의 논의를 통해 인문학의 방법을 보인 것이었다면, 김상태, 최준식, 그리고 김치수 교수가 했던 발표는 인문학 자체에 관한 진단이었으니 다양한 층위의 논의가 오고간 셈이다 이화여대 인문학연구원의 김윤애 연구원은 “지난 1, 2회의 ‘새로운 인문학을 향하여’ 교수학술제보다는 상대적으로 인문학을 직접 주제로 삼는 비중은 줄었다”고 소개하면서 “상시적인 발표가 아니다보니 인문학 자체에 대한 계속적인 문제의식으로 이어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미 최근 4-5년 사이 ‘인문학의 위기’나 ‘표현인문학’, ‘동아시아문학’, ‘디지털문학’ 등의 논의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까지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 걸맞게 인문학이 자신의 자리을 찾으려는 시도는 많았던 셈이다. 그렇지만 결국 인문학이 어떠해야 하는가는 특정한 방향으로 수렴되기보다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항상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길을 떠나는 인문학의 연구 자세에서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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