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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지리산에서 영원한 이상향을 찾다
[學而思] 지리산에서 영원한 이상향을 찾다
  • 홍영기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 원장
  • 승인 2010.09.24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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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지리산 실상사에 주석하던 도법 스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지리산’ 그는 누구인가? (중략) 반드시 우리 모두 돌아가야 할 생명의 고향, 역사의 고향, 삶의 고향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남북의 분단으로 백두산이나 금강산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처지의 우리로서는 한번쯤 꼭 가고픈 산이 바로 지리산일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밤새 달려와 새벽과 함께 걷기 시작한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하룻길로 달리다시피 걷고서는 의무를 다한 듯 편한 마음으로 제각각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최근에는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처럼 느긋하게 지리산 둘레길의 구간구간을 걸으며 지나간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기도 한다.

하긴 최근 일만도 아니다. 고려 말의 이인로는 청학동을 찾았고, 조선 중기의 남명 조식은 아예 천왕봉 자락에서 평생을 보내는 등 수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을 찾은 감회를 글로 남겼다. 나 역시 대학시절의 지리산 종주를 잊지 못한다. 한국화의 화폭에 담긴 仙境이 그저 그림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리산 종주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세파에 시달리며 문득문득 지리산을 떠올렸지만 그저 마음 속 고향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지리산이 가까운 대학에 부임하게 되면서 연구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왜 지리산을 찾는 것일까. 어쩌면 그 해답은 평생을 지리산에서 보낸 남명 조식의 간명한 말에 정리돼 있을지 모른다. 그는‘산을 보고 물을 보며,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看山 看水 看人 看世)’고 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직시하는 화두다. 하지만 나 홀로 관조는 가능할망정 연구를 하기에는 힘겨운 주제였다. 마침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사업에 선정됨으로써 학문적 도반이 많아졌고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명산문화에 주목하게 됐다.

사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로 구성돼 있지만 아직까지 산지에 대한 인문적 고찰은커녕 학제적인 연구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 중에 지리산은 신라의 五嶽制 성립 이래 현재까지 南嶽의 위상을 가진 명산문화를 대표하는 산이다. 지리산은 박혁거세와 왕건의 어머니를 노고단과 천왕봉에 각각 모시면서 성모신앙의 성지가 됐고, 산신이 다스리는 땅으로 숭배의 대상이 됐다. 그러한 역사적 배경이 작용해 지리산은 현재까지 어머니의 산으로 인식돼 왔다. 

또한 지리산권 문화는 지리적으로 영호남을 아우른다. 상호 이질적인 문화의 융합을 통해 형성되고 전개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그 결과 고대에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지리산권에서 발아하거나 성장한 문화는 그 폭이 매우 넓고 다양했다. 토속적인 고유 신앙에서 佛家,·儒家,·仙家 및 신흥종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상과 이념이 지리산 품속에서 배태되고 성장했으며, 근대 격변기에는 혁신적인 사상의 주 무대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지리산권 문화는 고유 신앙과 함께 유불선 등의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어우러지고 융합한 문화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리산권 문화가 가진 또 다른 특징은 혁신과 저항을 통해 나타나는 실천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말의 왜구침입과 임진왜란에 대한 대응과정, 조선 말기의 농민항쟁과 동학농민혁명, 한말 의병항쟁 등에서 단순히 이론적인 탐구에 몰두하기보다 실천정신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지리산은 한국의 한 지방이지만 수많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사상과 문화가 온축돼 있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지방인문학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지리산은 동학농민운동과 항일의병의 근거지, 빨치산의 활동무대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리산은 고전문학 분야에서는 수많은 遊山記와 遊山詩, 동편제 판소리를 낳은 배경이 됐고, 현대문학 분야에서는 『토지』, 『태백산맥』, 『지리산』, 『빨치산의 딸』 등 걸출한 작품들의 주요 무대로 등장했다. 이렇듯 지리산은 다양한 인문학적 연구의 소재가 산재해 있는 인문학의 보고이고, 인문학적 상상력의 원천이다.

우리는 지혜의 등불을 지피기 위한 도반들의 깊은 사색을 하나로 회통하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멀고도 지난한 작업을 추진해왔다. 지리산의 동쪽과 남쪽에 자리한 두 개의 국립대인 순천대와 경상대의 통합연구단이 지리산을 지붕삼아 함께‘천일기도’를 끝냈다. 이로써‘지리산인문학’의 둘레길 한 구간을 마친 셈이다.

오늘도 歸去來를 꿈꾸는 사람들이나 천왕봉을 찾는 등산객들은 지리산을 ‘무심한 구름이 산허리를 감싸고, 한가로운 새는 제 갈 길을 찾는’ 雲鳥樓로 인식한다. 때문에 우리는 머리로는 조식의 화두를 되뇌고 마음에는 매천 黃玹의‘글 아는 사람의 사회적 책무’(難作人間識字人)를 떠올린다. 지리산인문학의 방향이 응축돼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홍영기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 원장

필자는 서강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한말 경기북부지방의 의병활동과 김규식」, 저서로는 『한말 후기의병』 등이 있다. 사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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