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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강좌 大衆 앞으로! … “인문학, 그런데 누가 가르치지?”
다양한 강좌 大衆 앞으로! … “인문학, 그런데 누가 가르치지?”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0.09.24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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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위기 속, ‘인문주간’은 달린다

 

“엄마, 나 사진 찍었어” 

지난 15일 건국대 병원 1층에서 열린 ‘어린이 환우와 함께 하는 디지로그 문화체험’행사장에서 한 아이가 엄마에게 사진을 건네고 있다. 건국대 인문학연구원은 이날 문화행사를 통해 ‘치유의 인문학’을 선보였다.

지난 15일 오후 4시, 건국대 병원 1층 앞마당이 아이들로 북적였다. 다섯 살쯤 될까. 붕대로 한쪽 눈을 칭칭 감은 사내아이가 기어이 엄마를 돌려세웠다.

“엄마, 나 이거 해볼래.” 브라운관 앞에선 아이는 마이크를 덥석 쥐었다. “안녕, 난 ○○야. 넌 누구니?” 인공지능 로봇 날토가 대답했다. “난 날토라고 해. 넌 어쩌다가 눈을 다쳤어?” 엄마는 그제서야 관심을 보였다. 아이는 금세 브라운관 속 날토와 수다에 빠져들었다. 한 쪽 눈에 비친 다섯 살 아이의 동심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상을 넘나들며 반짝였다.

인문주간 행사로 건국대가 마련한 ‘디지로그 문화체험 마당’에서 기자가 목격한 건 단순한 세대차이 같은 벽이 아니었다.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 엄마가 살아온 세상 간의 괴리, 그리고 그것의 간극은 세대 간 異質 이상의 인문적 성찰을 담지하고 있는 듯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틈에서 인문학이 디지털혁명을 이끌어야 한다면, ‘인문주간’은 일종의 인문학 박람회장이었다.

인문주간이 5년째로 접어들었다. 한국연구재단(이사장 박찬모)은 인문학의 위기에 정책대안을 모색해 본다는 취지로 2006년부터 매년, 일주일씩 ‘인문주간’ 행사를 주관해왔다. 대중과 소통하는 인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올해는 지난 13일~19일, 전국 15개 기관에서 총 170여 개 행사가 치러졌다. 건국대(인문학연구원), 고려대(응용문화연구소), 숙명여대(의사소통센터) 등 9개 대학에서 참가했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기억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주제로 강연·토론·답사·전시·공연이 전국 각지에서 펼쳐졌다.

대중소통이냐, 대증요법이냐

인문주간은 인문학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규모에 관계없이 기관당 약 3천500만원을 동일하게 지급한다. 일주일 사업에 총5억4천여만원이 쓰였다. 정부지원사업 치고는 사업비가 크진 않지만 참가기관들은 ‘위기의 인문학’이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지자체나 지역의 문화운동단체 등과 연계성을 중시하는 인문주간의 방법론이 일궈낸 성과 못지않게 ‘인문학 위기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인문주간을 맞아 인문학자들은 한켠으로 고민이 깊다.

‘대중소통이냐, 대증요법이냐.’ 인문주간은 인문학자들 사이에서 방법론을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여기에는 인문학을 둘러싼 대학 내부와 외부의 상반된 현상이 있다. 올해에만 중앙대, 숙명여대, 성균관대, 동국대 등 학과 구조조정을 단행한 대학에서 통폐합 내지 폐과에서 인문학은 1순위에 오르내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주로 교양과정에서 개설되는 ‘인문학 특강’은 연중 상한가다.

학술출판 분야에서도 인문서적은 꾸준히 발행되고 있다. 최근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자신의 법철학 강의내용을 정리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출간 석달 만에 40만부를 넘겼다. 대졸자의 인성을 문제 삼던 기업체는 사원들을 위한 인문학 특강을 꾸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대학에서 인문학과의 인기는 시들한데 대중적 수요는 어느 때보다 활황이다. “인문학 특강은 창의적 사고의 확장을 돕고 삶에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김혜숙 이화여대 교수(철학과)는 “상담 등 심리학적 인문학의 요구가 큰데, 이것은 인문학 자체의 수요라기보다 현대인의 정신적인 공백을 채우기 위한 측면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새 지평 던져줄 학문후속세대 ‘절실’

교수들은 인문학이 대중에게 각광을 받는 현실은 반갑지만 심리치료 성격이 강한 특강류 위주로 흐르는 건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한다. ‘인문학 위기’가 ‘인문학 소비’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정부 주도의 ‘인문주간’이 어떤 지향을 던질 수 있을지 기대가 크다.

인문주간을 3년째 담당해온 김성민 건국대 인문학연구원장(철학과)은 “인문주간에 과도한 책임을 요구하기보다 일단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의의를 두자”고 선을 그었다. HK사업을 비롯해 각각의 사업적 특성을 살려나가자는 말이다.

인문학의 비판적 성찰을 되살릴 것을 강조하는 최갑수 서울대 교수(서양사학과)는 “외국인 이주자, 탈북자,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가능성에 무게를 실은 진단도 있다. 임상우 서강대 교수(사학과)는 “요즘은 전문지식의 효용성이 몇 년 단위로 無用해진다.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자각과 요구가 있는데 후속세대가 공급해 주지 못할까 걱정”이라며 “인문학은 이제 홍보단계에서 벗어나 학문후속세대 배출을 고민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이 소비되지 않고 소통하려면 현실을 직시하는 데 무게를 실어야 한다고 중지를 모은다. 김혜숙 교수의 말처럼 “디지털 정보혁명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단순히 읽는 것보다 어떻게 정보를 활용해서 자신의 것을 구축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안 읽는 게으름이라기보다 읽히지 않는 괴로움 즉 재미도 없고, 읽히지도 않는데 기를 쓰고 읽어봐야 큰 의미도 없다”는 게 현실이다.

인문학의 앞날은 디지로그 세상에 던져진 젊은이들에게 어떤 인문학적 상상력을 심어주느냐에 달렸다고 봐도 될까. 돌아오는 인문주간에는 ‘인문학 위기’라는 표현이 무색해지기를 점쳐본다.

글·사진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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