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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학자들, 본격적으로 ‘과학 공동체’ 탐구 시작했다
과학학자들, 본격적으로 ‘과학 공동체’ 탐구 시작했다
  • 교수신문
  • 승인 2010.09.2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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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김환석 외 지음,『한국의 과학자 사회-역사, 구조, 사회화』(궁리, 2010.8)

현대사회에서 과학이 갖는 핵심적 위치와 그 역설적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오늘날 과학을 생산하는 전문가 집단 즉 ‘과학자사회(the scientific community)’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과학은 다른 지식이나 문화와는 달리 고도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특수한 전문가의 영역으로 간주돼왔으며, 과학활동은 개인 혼자서 수행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동료 전문가 집단의 검토와 인정을 받아야 비로소 ‘과학’이라는 지위에 오르게 되기 때문이다.

과학자사회의 기원은 서구의 경우 17세기 영국 왕립학회와 프랑스의 과학아카데미 등 과학자들의 독립적 학술단체가 처음 출현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과학자사회가 본격적인 학문적 분석의 대상이 된 것은 1950년대 말 서구에서였다. 화학을 학문적 분석대상으로 삼은 과학철학과 과학사 분야가 20세기 초반에 이미 출범했지만, 과학철학은 과학적 방법의 인식론적 연구에 몰두했고 과학사는 주로 과학 위인들의 이론과 발견의 변천사를 규명하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과학자사회에 대한 연구는 로버트 머턴을 비롯한 미국의 사회학자들이 과학자사회에 고유한 규범구조, 보상체계, 계층화 등을 전체 과학시스템을 유지·통합시키는 기능의 관점에서 분석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한국은 서구보다 과학 자체의 역사는 물론 과학활동을 학문적 분석대상으로 삼는 과학학(과학철학, 과학사, 과학사회학 등)의 역사가 매우 짧다. 따라서 국내 학계에서는 그동안 과학자사회에 대한 서구의 모델을 암묵적으로 수용한 논의만이 피상적으로 있었을 뿐, 정작 국내의 특수한 역사적·문화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떤 성격의 과학자사회가 형성돼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경험적으로 분석한 연구가 없었다. 한국의 과학자사회에 대한 이러한 연구 공백은 우리나라의 과학활동이 지닌 사회적 특수성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없이 서구의 과학학 논의를 막연히 답습하는 우를 범하게 만들곤 했다. 따라서 체계적인 경험적 연구를 통해 한국의 과학자사회가 지닌 특성을 제대로 밝히고 이해하게 된다면 과학사회학을 비롯한 과학학이 국내에 뿌리를 내리고 도약하는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구 과학학 논의를 답습했던 까닭

또한 과학자사회 연구는 한국의 과학계가 현재 당면한 현실적 문제들을 보다 깊게 이해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예컨대 생명공학을 둘러싼 윤리적 논란에서 볼 수 있는 과학자사회의 가치와 일반사회의 가치 사이의 충돌, 현재의 국가연구비 배분 및 연구개발 평가시스템의 투명성과 형평성에 대한 과학자들의 불만, ‘이공계 위기’ 논의에서 드러나는 과학자들의 정체성 혼란과 상대적 박탈감, 과학계와 인문사회계 사이의 ‘두 문화’ 장벽 등등은 모두 과학자사회의 규범구조, 보상체계, 계층화, 사회화과정 등을 연구해야 문제의 근원 및 해결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 또한 한국 과학자들이 내면화하고 있는 성장주의, 이로 인한 기초과학의 상대적 소외, 과학부문에 대한 여성의 참여 부족 등도 역시 한국 과학자사회의 역사적 형성과정과 성별 구조화 등을 연구해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과학자사회의 독특한 점은 무엇인가. 근대사회와 긴밀한 연관을 맺으며 근대과학이 발생하고 다른 사회조직과는 구별되는 자율성을 지닌 집단으로 과학자사회가 형성된 서구와 한국을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서구 과학자사회는 근대 시기 실험적·수학적 방법론에 근거한 새로운 지식생산 집단으로서 종교집단 혹은 정치집단과 차별성을 갖게 된다. 과학자집단은 종교적 교리나 정치적 당파를 좇지 않고 새로운 방법론에 근거해 파악한 ‘자연의 책’에 기초해 세계를 판단하는 집단으로 인식됐다. 이것이 근대 과학의 객관성이다. 그리고 이 객관적 과학은 18~19세기 그 실천적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제도적 권위를 획득하는 데도 성공한다.

한국 과학자들의 내면화된 욕망

이에 반해 한국 과학자사회는 초기 과학사회 형성과정에서부터 식민지배의 극복이라는 사회·정치적 과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다. 객관적 지식생산의 담당자로서 사회적 의제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서구 과학자의 이미지가 식민지 과학자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과학에 대한 사회적 담론에서도 도구적 과학론이 지배적이게 되면서 사회적 의제에 봉사하는 과학자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이미지가 됐다. 해방 이후의 정치적 상황 역시 식민지 시기와 유사하게 과학자들에게 자율적 공간을 허용하지 못했고, ‘근대화’, ‘산업화’라는 국가적 과업을 수행해야만 했다. 민족, 국가 등의 사회적 의제에 우선적으로 봉사하는 과학자 역할이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 하에서 과학자사회에 내면화됐다. 정치사회적 쟁점들에 독립적으로 발언하는 대표적인 과학자집단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이런 역사성이 만들어낸 한국 과학사회의 특성이다.

□ 이 글은 『한국의 과학자 사회』에 수록된 김환석 국민대 교수의 글 「‘과학자사회’의 개념과 연구의 의의」와 박진희 동국대 교수의 글 「한국 과학자사회의 기원」에서 발췌,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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