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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미술사학의 새로운 지평 … 각주 내용·분량으로도 연구사료집
민족미술사학의 새로운 지평 … 각주 내용·분량으로도 연구사료집
  •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 승인 2010.09.2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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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최열 지음, 『한국근현대미술사학』(청년사, 2010.6)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근대 식민의 역사는 한국 지식인에게 카오스적 딜레마다. 해방과 미군정, 남북분단, 단독정부수립, 한국전쟁, 휴전과 그 이후의 근대 또한 다르지 않다. 이승만에서 박정희로 이어진 독재정권의 친미 반공,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역사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모순을 답습했고, 제국주의 식민의 그늘을 그대로 투영했기 때문이다.

그 딜레마는 고명섭이 『지식의 발견』에서 지적했듯이 “제국주의의 압도적 시선 아래서 자기 역사를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그 형편없는 역사를 통째로 긍정할 수도 없는 딜레마”였다. 그럼에도 시인 김수영이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나에게 놋주밭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고 했듯이 우리는 그 역사를 살았다. 부정과 긍정은 선택의 몫이 아니라 딜레마의 실체인 셈이다. 그러나 20세기 백년의 한국사는 ‘몫’으로 보느냐 ‘실체’로 보느냐에 따라 입장과 철학을 달리했다. 미술사학자 최열은 그런 일그러진 근대성의 딜레마에서 민족주의와 서구주의, 민중주의와 국가주의의 큰 줄기를 뽑아 올린 뒤 집요하게 파고들어 종국에는 어느 한쪽에 매몰된 채 기형적 미술사학을 형성했던 사학계를 비판하고, 균형 잡는다.

20세기 미술사학의 불완전성 해부

그는 최근 펴낸 『한국근현대미술사학』의 들머리에서 20세기 미술사학의 불완전성을 가장 먼저 해부하고 있는데, 근대의 출발을 ‘이식과 수용’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학계가 세키노 타다시(關野貞)나 에케르트(Andreas Eckardt)를 선행적으로 연구하지 않고 고유섭만을 출발로 삼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서구 근대미술사학 방법론을 적용한 타다시의 미술사학을 ‘식민미술사학’으로 규정, 비판하면서 일반성을 획득한 강단의 민족미술사학 또는 반식민미술사학이 오히려 식민성의 비판만 강화했을 뿐 서구미술사학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다는 것이다. 

‘이식과 수용론’을 극복하려 했던 ‘충격과 수용론’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일침을 가한다. 그러니까, 해방 뒤 식민주의 사관을 극복하고자 했던 민족주의 사관의 거센 흐름과는 달리 근대미술사학을 ‘미술의 서구화 과정을 연구하는 행위’로 귀결시켜 나갔고, 그 학문행위는 민족미술사학 안에 서구중심주의 사관을 내면화시키는 동인이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그들은 서구미술의 충격을 소화해 자기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안에 갖춰져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는 일제와 서구를 구분해 일제를 배제하고 서구를 수용하는 미술사학 방법론이 근본적으로 한국근대미술사학의 불완전성을 태생시켰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식민사관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반식민사관, 민족주의 미술사관의 문제 또한 내면화된 ‘서구중심’ 혹은 ‘서구중독’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주장하는 근대극복의 미술사학이란 무엇일까.

최열은 다시 민족미술사학에서 해답을 찾는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민족주의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할 터인데, 그는 “민족이 유지하고 생산하는 문화의 자기동일성, 문화의 자립성, 문화의 다양성 창조에 관한 진지한 성찰이 더불어 함께하는 21세기 민족주의이자 인간해방을 내면화한 건강한 민족주의”라고 밝히면서 민족미술사학의 전환을 제시한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가야할 부분이 탈근대, 탈민족 담론일 터. 그는 그 같은 담론에 대해 ‘큰 긍정’을 보내지만, “근대성의 과잉은커녕 국민국가도 분단으로 왜곡돼 있으며, 산업화에서도 세계체제 하위구조로 편성돼 있고, 민주화에서도 의식의 민주성을 보편가치로 획득하지 못한 채 허덕이고 있는 터”에 더더욱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세계체제로 편입된 조건에서는 탈민족이 아니라 ‘민족성의 강화’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30년 간의 미술사 논문 정수 모아

고명섭에 따르면, 한국의 민족주의는 탈식민주의, 탈냉전주의, 평화주의, 진보였다. 반면 국가주의는 일제 부역자들을 옹호하고 반공 이데올로기로 분단을 고착시킨 반민족주의였다. 민족주의에 근대성의 억압적 성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서구에 기반을 둔 근대주의는 우리, 나아가 세계 역사에 비극이었다. 최열이 긍정하는 민족주의와 비판하는 반민족주의도 그와 같다. 핵심은 서구 근대의 모순을 비판함으로써 우리 내부의 문제를 바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담론을 주장하는 이들조차 19세기까지는 중국의 하위, 20세기 전반기는 일본의 하위, 20세기 후반기는 서구의 하위로 명확히 계층구조화 시켜놓은 미술사를 우리 미술사학으로 관철하고 있는 바에 탈민족, 탈식민, 탈근대 담론이 얼마나 허영에 찬 관념이냐고 통박한다. 

최열의 그런 비판적 민족미술사학은 철저한 실증주의 사학의 전통을 따랐다. 사료 수집하고 분류, 연구하는 1차적 수행 없이 그는 결코 감성적인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 역사는 모순덩어리이나 그 자체를 ‘실체’로 인식했기에 그는 모순의 알레고리를 따라 미술사의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

그는 식민지 항일미술, 프롤레타리아 미술, 친일미술의 실상을 연구했고, 해방 뒤 1980년대까지 월북미술가와 북한미술의 실상에 대한 철저한 왜곡을 분석했다. 미술사학의 관점을 따졌고 근대미술의 기점론과 이식사를 비판했으며, 김복진을 새롭게 재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근대미술의 지형도를 재편성시켰다. 또한 미술제도사에 대한 연구를 보강해 미술사 연구영역을 확장시키기도 했다.

그의 이런 연구태도는 아카데미즘 사학이 학문의 수직적 구조를 존속하기 위해 연구주제 및 각주 인용구를 제약하면서 빚어졌던 연구의 편협성과 폐쇄성을 역설적으로 비판하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입장과 관점을 투영한 민족미술사학의 새로운 연구풍토를 조성했고, 그 결과물을 내놓기 시작했다. 예컨대 그는 미술사 연구를 수행하는 동안 근원 김용준, 윤희순, 박문원의 글을 발굴해 엮었고, 방대한 사료를 토대로 『한국근대미술의 역사』와 『한국현대미술의 역사』를 집필했으며, 30년간의 미술사 논문을 모아 『한국근현대미술사학』을 펴냈다. 그가 인용하고 있는 각주의 내용과 분량만으로도 그 시기를 연구하는 연구자에게는 하나의 연구사료집이 될 만하다.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필자는 국민대에서 박사수료했다. 다양한 지역미술 운동에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지은 책으로는 『희망의 예술』, 『한국 현대미술의 단층』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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