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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도교와 문학 그리고 상상력』 (푸른숲 刊) 펴낸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
[저자 인터뷰]『도교와 문학 그리고 상상력』 (푸른숲 刊) 펴낸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0.12.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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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는 동양적인 문학의 가능성이다”

‘동양적인것의 슬픔’을 내세워 말하면 서양컴플렉스로 치부되고, 동서양에 공통되는 주제를 언급하면 서양에 물든 것이며, 특수성을 말하면 보편성을 대라고 추궁한다.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중어중문학과)의 고민도 서둘러 동양‘주의자’로 분류해버리려 하는 사람들의 조급함에서 비롯되었다. ‘문학의 죽음’마저 맥빠진 수사로 들리는 지금, 정 교수는 문학에 대한 정면승부를 뒷받침하는 책을 펴냈다. 도교가 지닌 이야기성과 상상력은 소설의 고전적 정의에 핵이 된다. 정 교수가 발굴해 낸 동양적 전통은 철저히 문학을 긍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어를 불신하는 전통을 지닌 도교가 문학과 어떻게 만나는가.
“‘道可道非常道’라는 노자의 말처럼 도가는 진리를 전달하는 데 언어의 한계를 말한다. 외면적으로 볼 때 노자의 취지를 계승하는 것은 분명하다. 원론적인 면에서 언어의 한계를 인정하기 때문에 문학을 불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도인들의 얘기고 문학하는 사람들에게 ‘언표할 수 없는 것’이란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심미적 경지일 것이다. 비어있는 것, 無, 텅빔 등의 아름다움은 새로운 미적인 영토인 셈이다. 그것을 열어준 것이 도교이다. 또한 노자나 장자는 궁극적인 진리를 인간이 체득하는 과정에서 자유의지를 중시한다. 실제 문학하는 행위 자체를 긍정하고 격려하고 있다.”

△상상력은 ‘쓸모없음의 쓸모있음’ 일텐데, ‘태평경’은 효용론의 입장이다.
“사실 ‘태평경’은 대중을 교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문학의 소임이 현실적으로 태평세계를 이룩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상용주의의 입장은 소박한 민중성의 표현이다. 하지만 ‘태평경’의 효용론적인 인식이, 매너리즘에 빠진 당시 경학의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의 맥락에 있었음을 유의해야 한다. 당시 경학은 현실 문제와 괴리되어 고립된 해석학의 길을 걷고 있는 ‘章句之學‘에 불과했다.”

△효용을 ‘주장’하지만, ‘태평경’의 서술 자체가 문학성을 성취하고 있는가.
“‘태평경’의 문학에 대한 존재론적인 인식은 매우 보수적이며, 한편으로는 부정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도교의 사제인 방사계층의 여러 인물들에 의해서 씌어진 ‘태평경’은 포교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문체, 서술구조 등에서 나름대로 효과적인 문학적 장치를 쓰고 있다. 문체 역시 한대의 고졸한 어록체 산문의 전통을 계승했다. 또한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교는 논리적인 것보다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표현한다. 논증의 형식이 아니라 설화의 방식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느끼고 감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중국에 소설서사가 처음 성립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들이 바로 도교의 ‘방사’다. 자신들의 변방적 지식의 힘을 이용해 질서화된 담론에 저항하기 위해서 그들은 설화주의를 채택했던 것이다. 황당하고 기괴하며 주변적인 지식을 늘어놓으면서 중심부의 체계화된 지식체계와 권위를 조롱하면서 그 근거를 흔들어놓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포박자’를 쓴 갈홍의 ‘문학진화론’은 무엇인가.
“도교에서는 신체성을 중시한다. 촛불이 있는 것은 몸통인 초가 있기 때문이듯, 신체가 없는데 정신이 어디 있으며, 육체가 없다면 영혼도 없다는 논리다. 신체도 정신과 함께 불사하기 위해 불로장생약을 찾기도 했는데, 서양으로 따지자면 연금술적 상상력이다. 이후에는 외부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내면의 힘을 통해, 신체 내부의 기운을 돌려 불로불사의 몸을 만들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내단법이다. 이렇듯 스스로의 몸에서 출발해서 완전한 영육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변화’의 극치이다. 변화의 신념을 가진 이라면 ‘시경’과 같은 문학경전을 하나의 완성된 이상적인 규범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혁명적인 것으로 위진남북조 시대처럼 ‘임계적인 상황’에서나 용인될 수 있었다.”

△‘거울’과 ‘유토피아’가 도교서사의 중요한 모티프라고 했지만, 서구문학에서 역시 중요한 소재인데.
“오래 전 오정희의 소설 ‘銅鏡’을 읽다가 문득, 여기서 거울은 서양문학의 거울 개념보다는 중국고전에서 등장하는 거울의 이미지로 읽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에서 근대 이후에 거울을 말하는 것 이상으로 도교에서도 거울을 대단히 중요하다. 무릉도원 등을 생각한다면 유토피아도 마찬가지다. 나는 동서양에서 공통적인 소재를 포착해 그에서 변별적인 것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이번 책도 ‘공통적인 것의 변별성’을 말하려는 시도인가.
“나를 오해하는 사람들은 대개 동양우월론자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동서양의 공존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문학작품이나 문화현상을 읽을 때, 우리 자신에 내재해있는 문화적 역량을 외현시켜 그 잠재된 힘을 당대의 작품을 읽는 틀로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 속에는 이미 서구라는 ‘당대’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내재된 동양적 역량을 발굴하기 위한 준비작업이다. 이제 도교의 문학이론으로 실제 작품을 읽어내는 일이 남았다. 이것이 동양적 글쓰기의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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