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도시 전체에, 환경에, 문화활동에 지역성과 정체성을 부여한다. 또한 장소는 관계를 회복하는 순수한 힘이 있다. 부산은 서울과 달라야 하고 뉴욕과 달라야 한다. 어쩌면 설계하지 않고 만드는 장소가 가장 좋은 장소다. 설계중심적이기보다 장소 중심적 접근이 우선이다. 설계 대신에 관계가 살아있는 지역, 관계가 살아있는 공원은 인간의 숨은 미래를 만든다. 너무 늦게 참여하는 지역사회의 관심은 늘 아쉽다. 하지만 언제든 늦은 시간은 없는 법이 아닐까.
초읍에 사는 김기태 씨(66세)는 하얄리아에서 30년을 근무했다. 그는 건물 하나하나, 구멍을 메운 8인치 벽돌로 지어져 바깥의 어떤 건축보다 튼튼하다고 강조한다. “골을 깊이 파고 자갈을 잘 다져 넣고 시멘트를 붓는 등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인도 하나도 완전무결하게 공사하는 것을 지켜보았어요. 공군장교 숙소는 꼬박 2년 이상 걸려 지어 일 년 남짓 살다 떠났으니 다 멀쩡한 집들이예요. 이런 건물들을 그냥 밀어 없앤다는 건 죄악 같아요. 전 30년 근무하면서 그들이 사소한 공사도 아주 튼튼히 하는 걸 배웠어요. 그들의 관계 맺는 방식을 안 거지요.”
최근에 열린 하얄리아 공원의 조성을 위한 심포지엄 자료에는 현 상태를 보전하는 게 필요하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역사성에 기반 한 차별화된 전략으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 인터뷰나 시민의식조사, 기존 건축물을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활용한다고 할 때 건축물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설계가 불가피하다. 매일매일 변화가 살아있는 공원, 관계적 특징들이 복합문화를 구현하는 공원, 부산 전체의 경관을 지키는 허파 같은 공간이어야 하리라.
이 물신화된 문명이 지옥과 같고 우리가 지옥을 만들어가는 중이라면 이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칼비노는 말한다. 하나는 쉬운 방법으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것의 일부분이 된다. 다른 하나는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간다. 즉 지옥 속에 살지 않는 것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고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 거기에 공간을 부여하고 그 성질을 지속시키는 것. 이 노력은 물신화와 불신의 문명에 많은 것을 상기시킨다. 16만여 평이라는 거대한 틈을 놓고 고민하는 우리가 어떤 하얄리아를 선택하고 고집해야하는지를 잘 보여주지 않는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는 얼마나 위대한 시간을 지녔는가. 시민들의 꿈을 촉발하는 도시가 진정 살아있는 도시이며, 감응하는 도시이다.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부산적인가의 문제이리라. 도시의 분위기는 결국 그 시민의 정체성과 삶에 중요한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재생은 생명 본래의 모습을 불러내는 작업이니만큼 感天이 필요하며, 무한한 신화를 캐어내는 힘이어야 하리라. 개발이 아니라 재생을 통해서, 생명가치를 회복하는 하얄리아를 기다린다. 틈과 일탈이 살아있는 도시, 묵시와 관계가 넘치는 도시, 무수한 틈이 생성되는 도시가 바로 부산만의 특성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지역이라는 희망의 근거는 아닐까.
□ 이글은 <오늘의 문예비평> 78호(2010 가을호)에 실린 「지역을 주목하라-캠프 하얄리아, 다시 꿈꾸다」를 발췌·요약한 것이다.
김수우 작가
1995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저서로 시집 『길의 길』 『붉은 사하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