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21:00 (금)
[해외학술] 중국의 국학과정 개설바람
[해외학술] 중국의 국학과정 개설바람
  • 교수신문
  • 승인 2002.06.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06-13 00:00:00
이연도 / 중국통신원·북경대 박사과정

중국에서 5월은 여러가지 의미를 지닌다.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사회주의 국가답게 노동절은 축제분위기로, 올해도 1일부터 7일까지 공식적인 노동절 휴가였다. 4일은 ‘5·4’로 통칭되는 신문화운동 기념일이다. 5·4를 바라보는 중국 지식인의 눈엔 기쁨과 착잡함이 교차한다. 5·4 운동이 중국의 개혁을 앞당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데엔 이견이 없지만, 그로 인한 전통과 현대의 단절이라는 상흔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중국 지식인들이 21세기를 이끄는 강대국으로 중국이 성장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데엔 정치, 경제적 요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국 문화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5.4와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전통이 단절된지 근일백년에 이른 오늘, 그 긴 상흔을 메꾸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1980년대 중국대륙을 풍미한 ‘文化熱’논쟁도 그렇지만, 최근 몇 년사이에 대두된 ‘國學’열풍은 이러한 지식사회의 관심을 잘 반영한다.

1백년 단절 메우는 국학 열풍

‘국학’은 한마디로 정의내리긴 어려운 개념이지만, 전통적인 중국학술 전반을 말한다. 호북성 무한대학에서는 이번 학기, ‘국학’과 관련된 의미있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문학, 철학, 사학을 아우르는 전통적인 의미의 ‘국학반’을 신설하고, 다음 학기부터 정식으로 수업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4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신설되는 국학반은 대학 1학년생을 대상으로 필기와 면접을 통해 10여명의 학생을 선발한다. ‘국학반’ 학생모집 공고문에는 국학반의 설립목적을 다음과 같이 표방하고 있다. “전통문학, 사학, 경학, 소학의 기본지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한다. 중국 고전원서를 암송하고, 충분히 숙지토록 한다. 최소한 2개국어이상을 활용하고, 세계 인문과학의 흐름을 파악할수 있는 인재를 배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학반의 책임을 맡고 있는 곽제용 문학대학 학장의 말대로 표현하면 “몇명의 학문을 할만한 재목[讀書種子]을 배양”하는 것이다. 국학반은 학과간의 세분화된 구분을 없애고, 학습은 원전 위주로 진행된다. ‘사서’나 ‘노자’, ‘장자’는 전공필수이고, 풍우란의 ‘중국철학사’등은 중문판 뿐만 아니라 영문판도 강의한다. 중국학과 관련된 일문 자료 또한 중요한 교과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세계 교육계의 전반적인 조류가 공리주의로 흐르고, 인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에서 이처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까. ‘국학반’과 비슷한 실험이 이번에 처음으로 시도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994년 북경대학에는 ‘문사철 종합반’이 신설되었다. 작년까지 운영되어온 이 종합반은 수년이 지난 오늘, 그 결과를 보면 결코 성공적인 것이 아니다. 현재 종합반은 불과 서너명의 졸업생만이 북경대에 남아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뿐, 대부분은 유학길에 오른 상태이다. 북경대학의 湯一介 교수는 종합반의 실패원인을 중국고전, 서양원전을 중시하지 않은 교과내용에서 찾고 있다. 국학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문학, 사학, 철학 3개전공의 어설픈 통합과정이 실패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무한대학은 북경대의 ‘문사철종합반’이 7년의 운영 끝에 결국 실패한 결과를 지켜보면서 개설된 것이다. 어쩌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무한대의 가장 큰 걱정은 역시 학생들의 기초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필기시험을 거쳐 선발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면접고사에서 “‘시경’과 ‘초사’가 중국문학사에서 갖는 의의”, “‘소학’을 ‘소학’이라 부르는 이유”, “자신이 이해하는 유학의 철학적 인식”, “국학과 해외 漢學의 차이”등의 질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간단한 대답밖에 하지 못했다. 20세가 넘은 나이에 처음으로 국학을 접하게 되는 학생들을 상대로 애초의 국학대가를 키우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지식사회의 국학에 대한 관심에는 중화민족 특유의 집요함이 엿보인다.

전통에 대한 자부심의 소산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중국 정부나 지식인들이 의식적으로 ‘국학’에 관심을 갖고, 그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북경대에 이은 무한대학의 ‘국학반’ 개설 움직임도 그렇지만, ‘국학’과 관련된 일은 ‘인민일보’의 사설에 등장할 정도로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출판물에 있어서도, 최근 몇년동안 웅심력, 풍우란, 장대년, 계선림 같은 국학대가의 전집, 문집이 계속 출간되어 나오고 있다. 북경대학 중국전통문화연구소에서 매년 국학 연구성과를 담아 발간하는 “국학연구”지는 올해로 이미 8호째이다. 흥미로운 것은 “국학연구”지의 활자체가 ‘繁字’라는 것이다. 중국의 공식적인 문자가 ‘簡字’로 바뀐 지는 이미 수십년이 지났다.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중국어 표준활자가 ‘간자’로 등록된 오늘날에도, ‘국학연구’등의 학술지들은 여전히 ‘번자체’ 인쇄를 고집하고 있다. 중국 지식인이 갖는 전통문화에의 자존심과 함께 그 미래가 결코 탄탄하지만은 않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래도 변변한 ‘한국학’ 학술지 하나 없는 우리 현실에서 보면 부러운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