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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앞장서 ‘평온한 대학’을 ‘분규 대학’으로 만드는가
정부가 앞장서 ‘평온한 대학’을 ‘분규 대학’으로 만드는가
  • 홍승용 대구대·독어독문학과
  • 승인 2010.09.06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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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분쟁 ‘조장’하는 정부

소수 사례가 전체는 아니지만, 전체의 상징일 수는 있다. 지난 십 수 년간 상지대는 사학비리 척결과 대학민주화의 상징이었다. 이제는 현 정부 교육 마인드의 야만성을 상징하게 됐다. 정부가 정말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는 대학을 정상화하겠다면서 교육 비리의 상징적 인물에게 경영권을 넘겨주어 수많은 교직원과 학생들을 불행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교육과학기술부는 대구대, 조선대, 상지대, 세종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임시이사 파견 대학들을 임시이사 파견 사유가 해소된 대학으로 분류했다. 십 수 년 전의 비리 관련 문제들이 해결돼 학교가 정상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그 근거다.

우선 여기부터 착오가 있다. 재단비리가 임시이사 파견 사유였으므로 그 사유가 해소됐다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사유인 재단비리의 당사자들이 다시는 비리를 저지르지 않으리라고 확인 내지 검증돼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리 책임자들은 억울하게 학교를 빼앗겼을 뿐, 어떻게 해서든 되찾아 자신의 재산권을 행사하겠다는 태도만을 보여 왔다. 그들은 자신의 반교육적 행적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증명한 바 없다. 교과부나 사분위 혹은 어디서도 반성과 태도변화 여부를 검증했다는 이야기 역시 없다. 반성이 없다는 것은 비리의 반복을 예고하는 것이다. 즉 임시이사 파견 사유는 근본적으로 해소된 것이 아니었다. 

재단 비리 책임자들이 경영권을 되찾을 경우 독단과 비리는 필연적이며, 그로 인한 분규 역시 충분히 예상된다. 실제로 이미 상지대는 지난 1990년대와 다름없는 분쟁 상태다. 정이사가 파견되면 구성원들의 저항도 조만간 수그러들 것이라고 판단하면 심각한 착각이다. 상지대 구성원들의 결의는 끝장을 볼 것 같다. 이렇게 분쟁을 초래하는 것이 정상화라면, 정상화는 결코 해선 안 될 짓 아닌가. 오죽하면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사학분쟁 ‘조장’위원회라고 욕을 먹겠는가.

이주호 교과부장관은 상지대와 관련해 심각한 문제의식 없이 비리 재단의 복귀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 나라 교육행정의 총책임자라는 그 지위에 비춰 본다면 비리 재단 복귀를 주도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적어도 교과부 수장으로서 사분위의 부당 결정에 대한 재심 청구 의무를 소홀히 하는 한 그렇다.

비리 재단 복귀를 변호하는 사람들에게도 논거는 있다. 사학의 자율성을 존중하자는 것이 그것이다. 예전의 장관들은 직설적으로 오너에게 돌려주자는 이야기도 했다. 대학은 사유재산이 아니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너무 커지자 표현이 조금 다듬어진 셈이다. 허나 사학의 자율성을 소수 재단 관계자의 자율성으로 축소함으로써 독단과 비리의 싹을 키우고 있지 않은지, 또 그로써 교육의 공공성이 얼마나 훼손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주호 장관은 철저한 관리감독으로 재단비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듯하다. 그러나 재단에 학사운영의 절대권력을 부여하는 현행 ‘교육법’ 하에서 비리와 독단은 결코 기이한 예외가 아니며, 무엇보다 교과부 인력으로는 관리감독에 원천적 한계가 있다.

사분위는 외압에 좌우되지 않고 공정하게 사학분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상당한 권한을 갖추고 있다. 허나 많은 사람들은 교과부 이상으로 사분위가 정권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사분위의 결정은 궁극적으로 정권의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현 정권 하에서는 사분위의 활약으로 비리재단들이 대학구성원들의 격렬한 저항을 무릅쓰고 착착 복귀했다. 현 정부는 사학분쟁을 조장하는 정부인 것이다.

아직 대구대를 비롯해 여러 대학이 정권의 성격을 가늠하며 사분위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한다.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사분위가, 또 교육을 총체적으로 책임지는 교과부가 사학분쟁을 조장하는 정부 만들기에 앞장서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

대학구성원들의 평범한 소망은 연구 잘 해서 잘 가르치고, 공부 잘 해서 제때 취업도 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보람 있게 하는 것 아닐까. 허나 재단 비리로 몸살을 앓는 대학의 교직원과 학생은 비범한 소망을 추가로 품을 수밖에 없다. 다른 대학인들처럼 평범한 소망만 품어도 됐으면 하는 소망이 그것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평온한 대학에 분규를 조장하는 일이 결코 없기를, 기존의 야만적 결정은 정권의 명예를 걸고 이제라도 바로잡기를 기원한다.

홍승용 대구대·독어독문학과

문예미학회 편집위원 등을 지냈고 현재 대구대 인문대학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역서로 『현대의 미적 커뮤니케이션 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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