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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200여 항목으로 읽는 일본 … 프랑스 역사가들이 던진 개념들
2천200여 항목으로 읽는 일본 … 프랑스 역사가들이 던진 개념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0.09.06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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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일본문화사전』·『기억의 장소』

1백여 명이 넘는 연구자들이 어떤 주제에 매달리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최근 고려대 일본연구센터(소장 최관)에서 간행한 『일본문화사전』(도서출판 문)과 피에로 노라 프랑스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주임교수 등 120여 명의 프랑스 역사가들이 10년에 걸쳐 저술한 『기억의 장소』(김인중·유희수 외 옮김, 나남)가 화제다. 일본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의욕이 앞선 책, 그리고 프랑스 역사학자들의 십년 공력이 발휘된 책.

일본학 연구자 130명의 10년 노력

‘가게로 일기’에서부터 ‘히카규’까지, 일본의 정치, 경제, 역사, 문학, 예술, 스포츠, 인명, 종교, 사상, 윤리, 의학 등 총 2천200여 항목을 총망라한 『일본문화사전』 저술에 동원된 연구자는 최관 교수를 비롯, 모두 130명, 고려대 일본연구센터의 10년 작업의 결실이다. 덧붙여진 ‘부록’도 흥미롭다. 일본의 자연지도, 행정지도, 역사지도, 행정 조직 일람, 역대 천황 계보, 전후의 역대 내각 총리대신, 일본의 경제지표, 일본의 연중행사·기념일·마쓰리, 일본의 상, 스포츠, 바둑, 주요 성씨 등 가히 ‘일본’의 전체상을 들여다볼 수 있게 구성했다.

그동안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전체적으로 조망해볼 수 있는 국내 연구자의 자료는 사실 드물었다. 최관 소장은 “사전 편찬 작업의 씨앗은 1997년에 뿌려져 있었다. 그때부터 일본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전, 일본어판의 번역이 아니라 한국 연구자의 시각에 의한 사전, 이러한 사전 간행을 목표로 노력한 끝에 간행할 수 있었다”고 발간 의미를 설명했다.

한국 일본학계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130명의 일본 연구자들이 “냉철한 지적 접근을 통해 도출해낸 다면적·복합적 일본상을 한국의 시민들에게 제시”하겠다는 문제의식에서 간행한『일본문화사전』이 한·일 두 나라의 문화적, 학문적 교류에 과연 어떤 교두보 역할을 해낼지 주목된다.

『기억의 장소』은 『일본문화사전』과 달리, 프랑스 역사학자들의 10년 결실을 번역한 것이라, ‘우리’의 문제의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애초부터 없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시리즈는 ‘우리’라는 집합명사를 넘어서거나 확대시킨다. ‘프랑스(역사학자들)’이 발명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들의 개념과 방법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기획자 피에르 노라에 따르면 ‘기억의 장소(lieux de m´emoire)’란 “민족적 기억이 구체화된,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이나 수세기에 걸친 작용을 통해 그것들의 아주 특별한 표상과 뚜렷한 상징물로 남게 된 물질적, 비물질적 장소”를 뜻한다. 즉, 물질적 대상과 상징적 대상 둘 다를 포괄하기 위해 고안한 개념인 셈이다.

민족사·심성사와는 또 다른 접근

저자들이 기억의 장소들을 탐구하게 된 것은 1960년대 이후 프랑스 사회에서 더 이상 기억이 존재하지 않게 됐으며, 특히 역사와 기억 사이에 엄청난 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역사와 기억의 간극은 현실 변화와 역사학 나아가 사회과학의 위상과 관련된다. 과거 프랑스는 역사를 통해 민족의 기억을 학습하고 민족공동체를 건설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역사는 민족으로부터 해방돼, 하나의 사회과학이 됐으며, 평화와 경제번영이 이뤄지면서 민족은 쟁취해야 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 되고 말았다. 기억 역시 민족적·공동체적 성격을 잃고 순전히 사적인 현상이 됐다. 민족적 기억의 문제가 화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피에르 노라는 “기억의 장소를 포착하는 것보다는 기억의 장소가 간직하고 있는 기억을 펼쳐내는 것이 역사가가 할 일”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언명은 실증주의적 민족사나 심성사와는 전혀 다른, 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표상의 역사를 제시한다. 피에르 노라는 이를 ‘두 번째 단계의 역사(histoire au seconf degr´e)'라고 불렀다.
이 역사기획서는 1권 『공화국』, 2권 『민족』과 『프랑스들 1~3』 다섯 권으로 번역됐지만, 원서는 총 7권 136편의 논문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번역본은 이 가운데 41편의 논문을 골라 엮은 것이다. 각 권마다 수록된 삽화, 기록사진, 미술작품 등 400여 컷의 도판은 역사를 ‘읽고 보는’ 즐거움을 제공해주기에 충분하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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