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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해외지역연구와 인문학의 共生
[學而思] 해외지역연구와 인문학의 共生
  • 신윤환 서강대 동아연구소 소장
  • 승인 2010.09.06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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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힘이 세계를 정복하고 시장의 논리가 모든 사고를 지배하며 신자유주의가 시대정신이 돼버린 이 21세기에도 국가가 결코 손을 놓을 수 없는 분야가 있다. 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교육을 시장에 방치하고 자본의 힘에 맡겨 두면, 교육이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인 균등한 기회의 제공과 건전한 시민 양성 그 어느 것도 달성할 수 없다. 과외강사, 사설학원, 특수목적고에 휘둘리는 우리의 교육은 국가 개입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본과 시장에 밀려버린 결과다.

대학도 그 존재이유와 이상을 잃어가고 있다. 대학은 이제 학문과 지성의 전당이 아니라 취업과 고시를 준비하는 학원으로 전락해 버렸다. 공동체와 인류에 봉사하는 시민보다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개인들과 기능인을 길러내는 트레이닝캠프나 강습소같이 변해 버린 것이다. 대학생들 사이에는 법학, 의학, 경영 전문대학원 입학을 겨냥한 전공과 과목들만 인기가 있고, 도서관에 들어가 보면 역사, 철학, 문학 서적에 빠져 있는 학생들보다 토익과 토플, 시사상식, 고시과목 서적들을 뒤적이는 학생들이 훨씬 더 많다. 모든 대학들이 전문대학원 설립과 인가에 목을 매달고, 취업률이 높은 인기 학과와 전공은 한없이 키우지만 순수학문과 인문학은 구조조정과 학과 통폐합의 구호 속에 힘을 잃고 사라져가고 있다. 바로 대학 스스로가 경쟁에 이길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시장이 돼 버린 것이다.

필자의 전공이자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는 해외지역연구도 인문학과 처지가 비슷하다. 삼사년만 집중해 공부하면 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사’자가 들어간 자격을 얻고 고시에 합격하고 대기업에 취업을 할 수 있는데 굳이 십 수 년을 들여 영어도 아닌 다른 외국어를 배우고, 안전하지도 쾌적하지도 않은 나라에서 일이년 동안 현지조사를 하고, 전공서적 외에도 그 나라와 관련된 역사,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의 책을 섭렵해야 하는 해외지역연구를 학생들이 선호할 턱이 없다. 필자는 미국 예일대 박사과정에서 무려 9년을 공부한 끝에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이 모두 동남아시아라는 지역을 전공한 ‘탓’이었다. 그 기간 중에는 2년 동안 다른 분야 책을 읽고, 6개월간 미국과 현지에서 집중언어 훈련을 받고, 1년간 인도네시아에서 현지조사를 한 기간이 포함돼 있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어리석고 미련한 짓이라고 빈정댔다.

온 나라와 세상이 세계화와 외국 유학 열풍 속에 있는데, 왜 해외지역연구에 관심이 없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계화는 세계를 단일 시장으로 만들 것이라는 조급하고 일방적인 예측 때문인지 갈수록 영어만을 중시하고, 유학 역시 영어권이나 중국에만 집중되는 경향을 만들어 냈다. 여기에는 우리가 물든 서구 중심주의나 강대국 중시 풍조도 한 몫을 했다. 그래서 유학도 서구와 주변강국, 구체적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으로 집중되고 있는데 이런 나라들로 유학 간 학생들조차도 그나마 그 나라를 전공한 지역전문가가 돼 오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다. 역시 모두 인기분야를 전공한다.

이런 나라 지역연구의 처지가 이럴진대, 하물며 아프리카, 중동,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 이른바 제3세계 지역은 어떠하겠는가. 이 중에서 상황이 제일 나은 동남아시아의 경우에도 일본에는 전문가가 2천명이 된다고도 하고 3천명이 된다고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백 명에도 이르지 못했다.

과거 세계와 외국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무지와 무관심이 임진왜란, 식민통치, 남북분단 같은 역사적 비극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굳이 상기하고 싶지는 않다. 무역, 투자, 관광, 이민, 유학, 선교 등 실로 다양한 목적으로 국민 넷 중의 하나가 매년 출국을 하는 우리에게 해외란 이제 단순한 수출시장의 단계를 넘어 민족의 활로이자 미래인 것이다. 각종 병폐를 낳고 있는 폐쇄적인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개방적인 다문화 사회를 건설하는데도 지역연구의 기여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인문학과 기초학문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 없이는 해외지역연구가 살 길은 없다.

신윤환 서강대 동아연구소 소장

필자는 예일대에서 박사를 했다. 「중국의 부상과 ‘동아시아 공동체’의 미래」, 『동남아문화 산책』 등의 논저가 있으며,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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