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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부산지역 과학대중화 세미나
[학술대회] 부산지역 과학대중화 세미나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5.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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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7 14:40:54
인구 4백만에 대학 24개를 가지고 있는 서울 다음가는 대도시이자, 한국 최대의 무역항. 현재 부산의 위상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외형적인 모습이다. 그런 부산은 과학기술면에서도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다. 조선 세종대의 장영실과 일제 강점기 우장춘 등 우리 과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과학자들을 배출했으며 서양식 기계시계와 종두법이 도입되고, 농업과학연구소를 통해 근대 육종학이 시작한 곳이 바로 부산이다.
그렇지만 과학기술면에서 볼 때 오늘날의 현실은 그다지 밝지 못하다. 1백여개나 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 중 단 하나도 이 지역에 소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상대적으로 낙후한 부산 지역의 과학기술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산은 연구개발인력이 전국 시도 자치단체 중 13위에 불과할 정도로 외부 유출이 심하고, 산업구조가 철강, 조선, 신발산업에 편중, 産·學·官간 연계체계가 활성화되지 못했다.

지역사회와 과학기술의 만남

그런 ‘과학불모지’ 부산에서 최근 과학대중화 행사가 잇따라 열려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달 18일에 열렸던 한국물리학회(이하 물리학회)가 연 ‘과학영재와 물리학자의 만남’과 27일에 열렸던 부산시, 부산시 교육청, 국제신문이 주최한 ‘2002 부산과학축제’가 그것. 여기서 눈여겨볼 만한 사실은 두 행사 모두 부산이라는 규모있는 지방도시에서 열린 과학대중화행사였지만 전자가 기초과학 학술단체인 학회가, 후자는 지자체와 지역언론 등 ‘지역사회’가 주도했다는 것. 따라서 지향점은 조금씩 달랐다.
물리학회는 지난달 18일 한국 최초의 영재학교로 설립된 부산과학고에서 ‘과학영재와 물리학자의 만남’이라는 행사를 열었다. 이 행사는 물리학회가 올해 창립 50주년을 기념해서 봄·가을 두 차례에 걸친 ‘물리학회 주간’ 행사로 기획됐다. 1952년 12월 한국전쟁 기간에 서울대 부산캠퍼스였던 지금의 동주여상 자리 광복동에서 창립됐던 물리학회는 현재 연 2회의 학술대회에서 2천여편의 논문이 발표되는 회원수 7천여명 규모의 초대형 학회로 성장했다.
학회장을 맡고 있는 송희성 서울대 교수는 인사말에서 “외형적인 연구여건은 예전에 비해 좋아졌지만 최근 ‘선택과 집중’ 경향이 심화되고 연구자의 사기저하와 직장불안, 대학 입시에서 물리학 교육 기피 및 왜곡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사회적인 과학기술 인력 및 선호도의 감퇴 경향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임경순 포항공대 교수, 신성철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유재준 서울대 교수, 이경진 고려대 교수, 이수종 서울대 교수 등 현역에서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견물리학자들이 대거 참석한 이 행사는 부산과학고 재학생 등 부산지역 과학영재들과 이들이 만나 자신이 걸어온 과학자의 길, 한국과학기술의 전망 등에 대해서 발표와 토론을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 행사를 준비, 참관했던 김승환 포항공대 교수는 “과학, 인생과 진로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눠 학생들 뿐만 아니라 참가를 머뭇거리던 과학자들에도 나중에는 몹시 고마워했다”며 후일담을 전했다. 이어 19, 20일에는 부산 벡스코에서 한국물리학회 임시총회와 봄논문발표회가 열렸다.
한편 지난 달 27일 벡스코에서 열린 ‘2002 부산과학축제’는 토론회와 세미나, 청소년 과학탐구마당, 천체관측행사 등을 아우르는 일종의 과학 ‘버라이어티쇼’를 방불케 하는 대규모 과학 행사였다. ‘2002 부산과학축제’는 부산시, 부산시 교육청, 부산 국제신문이 주관, 그야말로 지역의 관심사에 따라 열린 과학행사. 이날 열린 행사에서 부산과학기술진흥 대토론회와 ‘부산의 과학자 장영실’ 세미나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과학기술진흥 토론회는 부산 지역의 산업진흥에 관심이 집중된 자리였다. 최용락 동아대 교수(생물공학) 등은 정부출연연구기관 유치, 과학단지 조성 지연 등 부산시의 정책 집행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부산지역은 재정이나 인력 등의 자원보다도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의지가 더욱 급선무인 셈. 김일수 동의대 공대 교수(재료공학)가 과학대중화를 위해 과학문화연구센터를 별도로 건립할 것을 주문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편 ‘부산의 과학자 장영실’ 세미나에는 전상운 前 성신여대 교수를 비롯, 박성래 한국외대 교수, 남문현 건국대 교수, 이훈상 동아대 교수 등 과학사학자들이 모여 지역 과학기술의 의미를 짚어보았다. 이중 이훈상 교수는 과학발전에서 조선중기 이후 경기 지역 중심의 과학인재 등용이 가졌던 문제점을 발표해 흥미를 끌었다.

과학문화에 대한 고민 우선돼야

이처럼 비슷한 시기에 부산 지역에서 열린 과학대중화 행사였지만 분명히 일정한 차이가 있었다. ‘과학영재와 물리학자의 만남’은 선도적인 과학자들이 이공계 기피현상 등 기초과학의 위기를 실감하고 직접 예비과학자들을 찾아 나섰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소위 ‘잘 나가는’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열린 홍보 행사라 과학계의 실상과 진지한 정책 대안을 대중과 나누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당장의 ‘인력 수급’ 대상인, 우수성적의 고교생을 대상으로 열렸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과학대중화 효과는 미흡했던 것이 사실. ‘2002 부산과학축제’는 주최측의 자평대로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관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지자체와 지역언론이 주도, 위로부터의 일회성 행사에 그쳐 아쉬움이 남았다. 또한 지역과 과학기술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과학문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펼치기보다는 지역경제 회생방안으로서의 과학기술의 기능적인 측면만을 부각했다는 점, 잠재적 가능성에서 ‘비교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대도시 부산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때문인지 김승환 교수도 “두 행사 모두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연구 등 현실적 부담도 많아 행사에 일일이 다 참여할 수는 없는 만큼 다른 형식도 고민해봐야 한다”며 과학대중화 작업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뜻을 밝혔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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