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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시대의 급물살을 탄 역대 서울대 총장들
[해설] 시대의 급물살을 탄 역대 서울대 총장들
  • 교수신문
  • 승인 2002.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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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7 13:46:59
서울대가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첫단추를 잘못 끼웠던 탓일까. 1946년 미군정에 의해 설립되고, 초대 총장으로서 미군대위가 선임될 때부터 이미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던 것은 아닐까. 서울대만큼 총장 교체가 잦은 대학도 드물 것이다. 91년 총장 직선제가 시행되기 전 역대 총장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정부의 강력한 영향 아래 대학의 자율성이 훼손된 서울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권력 자체의 생리에 따른 정부의 간섭에 소신 있게 대처한 총장들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권력화하고자 하는 총장도 있었다. 해방 이후의 정치적 상황이 격변했던 만큼 총장들도 자주 바뀌었다. 헤리 B. 엔스테드 미군대위가 서울대 초대 총장을 맡은 이후, 이기준 제 22대 총장에 이르기까지 임기를 채운 총장은 겨우 6명에 지나지 않는다. 평균 임기는 2년 6개월.

대학의 자율성 부재를 방증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1∼2년 단위로 총장이 바뀌었지만, 이승만 정권 당시의 서울대 총장들은 대부분은 임기를 채우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5·16이후 소신있는 총장들이 권력의 간섭에 따라 대거 조기 사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진압한 6·3사태로 권중희 총장(7대)은 문책 해임됐고 신태환 총장(8대)은 65년 학생들의 한일회담 반대시위로 문책을 당했다. 유기천 총장(9대)은 계엄당시 정보원과 경찰의 학교진입을 반대하고 학생징계요구를 따르지 않는 등 정부와의 대립으로 해임됐으며, 한심석 총장(11대, 12대)은 75년 학생들의 긴급조치 9호 반대시위로 문책을 받아 전격 해임을 당했다. 이현재 총장(16대)은 85년 정권 당시 미문화원 사건 주동자처벌문제로 인해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정권이 바뀌고 시국이 변함에 따라 임기를 마치기도 전에 해임된 총장도 있다. 고병익 총장(14대)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총장직을 그만두었으며, 전두환 정권이 들어설 때 군부의 어용기구 국가보위입법회 입법위원으로 활동한 박봉식 총장(17대)은 87년 6월 항쟁 이후에 경질됐다.

권이혁 총장(15대)과 이수성 총장(20대)은 각각 문교부장관과 국무총리로 입각하면서 총장직을 내 놓는가 하면, 김종운 총장(19대)처럼 정년퇴임으로 인해 물러난 진귀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91년도 총장 직선제가 이뤄지기 전까지의 서울대가 비민주적인 정치적 질곡에 따라 난맥상을 드러냈다면, 91년 이후에 나타난 상황은 또 다른 양상을 띤다. 90년대 후반에는 오히려 대학의 상대적 자율성이 보장됨에 따라, 해임이 정치적인 이유에 있기보다는 서울대 총장으로서의 자질 여부와 도덕성의 문제에 있다. 선우중호 총장(21대 총장)은 딸의 고액과외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킴에 따라 자진 사퇴했으며, 지난 2일 이기준 총장(22대 총장)은 사외이사 겸직, 연구비 미신고, 판공비 과다 지출 등이 학·내외적으로 알려짐에 따라 학내 구성원들의 퇴진 요구에 부딪쳐 조기 사퇴했다.

민교협의 관계자는 “이기준 총장의 경우를 보면, 이번 사태가 이 총장 개인의 도덕성 문제에서 촉발되기도 했지만, 그 저변에는 대학행정을 운영할 때 나타났던 이 총장의 독단성과 이총장 취임 이후 추진된 각종 개혁 정책에 대한 교수들의 불만과 불신이 깔려 있다”고 하면서 “서울대의 방향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위상은 어떠해야 하며, 지향성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었다. 또한 그는 “독재 시대가 지나간 지금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대학의 학내 민주화는 여전히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번 사태를 통해 절감했다”며 “후임 총장은 도덕적인 면에서 검증되면서도 학교 문제에 전념하고, 대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투명성과 도덕성 갖춘 리더십 필요

또한 김수행 서울대 교수(경제학부)는 “총장의 잦은 교체가 학교 행정 질서를 파행적으로 이끌어 온 것이 사실”이라면서 “총장이 국무총리나 장관 등으로 입각하는 데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밖으로 나갈 마음을 먹게 되면 교육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그러면 자연히 학교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총장이 고위 행정 관료 자리에 진출하기 위한 하나의 중간 거점으로 생각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장회익 서울대 교수(물리학과)는 “몇 년간의 임기를 채우고 안 채우고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이기준 총장의 행동은 대학의 정도에서 볼 때, 총장으로서 상당히 벗어난 행동이었다”며 “대학이 어떠해야 한다, 대학이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교수사회에 던져준 것은 사실이다”고 밝혔다.

총장의 잦은 교체로 부침을 거듭해온 서울대가 앞으로 새 총장과 함께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이 총장 사태로 인한 내홍의 후유증을 어떻게 치유하면서 제자리를 잡아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시대가 투명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리더십을 대학 수장의 조건으로 요구한다는 점이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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