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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세계를 읽는 브로델의 방법
[역사 속의 인물] 세계를 읽는 브로델의 방법
  • 주경철 서울대·서양사
  • 승인 2010.08.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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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은 역사학계의 마지막 슈퍼스타였다. 물론 각 분야마다 대단한 학문적 성취를 이룬 존경스러운 석학들이 많지만 브로델처럼 ‘역사학계의 교황’이란 별칭으로 불리며 그야말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봉으로 추앙받은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프랑스의 정체성』 같은 그의 대작들을 보노라면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계사를 재단해 보고자 하는 담대한 구상과 그에 걸맞은 초인적인 박학다식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게다가 학문적 지도력과 탁월한 행정 능력을 발휘해 그의 선배 세대인 마르크 블로크와 뤼시앙 페브르가 만든 소위 ‘아날 학파’를 계승·발전시키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아우르는 다학제적(pluridisciplinary) 연구 수행 기관으로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을 창설함으로써, 학문적 헤게모니를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영향 아래 프랑스의 역사학은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대해 ‘제국주의적’ 지배력을 행사했고, 또 그러한 프랑스의 역사학은 ‘세계화’돼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가 다른 역사가들과 구분되는 창의적 학문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그의 특이한 인생 이력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사실 그는 다른 프랑스의 일급 역사학자들과는 달리 그랑제꼴이라 불리는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교사자격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서 식민지 알제리의 고등학교 교사로 발령받았고, 그 후 소르본대의 시간강사 자리를 겨우 얻었다. 프랑스 정부에 신생 상파울루대의 교수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 그가 지원했던 이유도 그 자신이 별 전망 없는 젊은 시간강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특이한 경험들이 그가 진정 대가로 자라나는 밑거름이 됐다. 유럽 내의 중심부에 얌전하게 자리 잡고 기존 학문의 전통을 답습하는 대신 그는 바깥에서 혹은 주변부에서 세계를 읽어내는 시각을 획득했다. 중심부에서는 모든 일들이 빠른 리듬으로 급박하게 돌아가지만 사하라 사막이나 아마존 밀림에서는 신화와도 같은 장구한 시간의 호흡이 지배적이다. 브로델 역사학의 특징은 이처럼 세계가 여러 층위에서 그리고 다양한 시간성 속에서 파악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브로델은 무엇인가. 단순히 그를 모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20년을 바쳐 그와 같은 대작을 집필하는 일은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 그의 책에 담긴 정보는 대체로 낡은 것이 됐다.

그의 저작들은 어찌 보면 이미 ‘한물간’ 과거의 대작이라 할 수 있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늘 새로운 영감을 주는 살아있는 책일 수 있다. 지난 영웅시대의 거인을 통해 무엇을 얻어내느냐는 우리의 몫이다.
그렇지만 단언컨대 그가 만들어놓은 특이하고도 거대한 근대세계사의 산속에 들어가면 대개 누구나 헤매게 돼 있지만 높은 산봉우리까지 올랐다가 하산할 즈음이면 분명 세계를 읽어내는 비법의 한 도막이라도 얻어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주경철 서울대·서양사

필자는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네델란드의 조선업」, 저서로는 『대항해시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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