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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전국교수노조와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 간담회
[현장스케치] 전국교수노조와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 간담회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2.05.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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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7 13:45:41
시간강사와 교수가 만났다. 그러나 다음 학기 강좌를 얻기 위해, 혹은 다른 부탁을 위해 교수눈치를 보는 시간강사가 아니었다. 제자나 혹은 아래세대를 대하듯 하대를 하는 교수도 아니었다.

시장 논리가 대학까지 지배하면서 교수의 지위가 흔들리고, 신입생 부족으로 대학의 눈치보랴, 학부제 도입으로 재학생들 눈치보랴, 여기에 계약·연봉제까지 도입되면서 업적 쌓기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교수들이 교육개혁을 앞세우며 결성한 ‘전국교수노동조합’. 그러나 이러한 교수노조도 대학교육의 절반을 담당하면서도 신분은 일용잡급직인, 같은 강의를 하면서도 입에 풀칠하기조차 버거운 시간강사들에게는 미안할 뿐이었다.

전국교수노조(위원장 황상익, 서울대 의학과, 이하 교수노조)와 전국대학강사노조(위원장 임성윤, 성균관대 강사, 이하 강사노조)가 지난달 27일 서울대 의과대 의사학 교실 회의실에서 간담회를 열고 머리를 맞댄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이날의 만남은 합법조직인 강사노조가 교수노조를 초청하는 형식으로 마련됐으나, 위법 조직인 교수노조를 대학에 들일 수 없다는 성균관대 측의 반대에 밀려 교수노조 위원장이 재직하고 있는 서울대에서 열렸다.

마침 강사노조는 이날 대의원 대회를 열어 가칭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로의 전환을 결정한 날이었다. 합법노조와 비합법노조의 연대를 위한 ‘동지’들의 만남이었지만 ‘비정규직 노조’와 ‘정규직 노조’라는 점에서 미묘한 분위기가 엿보였다.

단체협약 과정에서 교수들을 상대로 협상해왔던 한 강사노조 임원은 “올해 교직원의 임금 인상률은 5.3%인데 강사료는 3%만 올리려고 한다”며, 교육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는데도 ‘외부자’로 치부하는 대학의 몰염치를 교수들에게 물었다.

“대학정책을 교수가 결정하지만 이는 운영에 차출된 몇몇 교수들에 국한된 것으로, 보직교수들이 학문집단과 교수사회를 대표할 수 없다”며 일단 화살을 피한 교수노조는 “예산책정과정에서 한 대학 교수협의회회장은 교수 월급을 동결해도 좋으니 강사처우를 개선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며 대학에서 강사문제에 대해 가장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집단임을 내비쳤다.

그러나 그 동안 이러한 만남조차 어려웠던 시간강사들에게는 그만큼 억눌러왔던 것이 많았기 때문일까. 한 시간강사는 “강의와 연구노동을 비교할 때 교수와 강사의 임금이 10배 이상 차이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며 교수들을 궁지로 몰아붙였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논리를 내세우는 시간강사들에게 가장 진보적인 목소리를 높여왔던 교수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시간강사 문제는 사회적 불평등의 논리다”고 시인한 뒤 “다같이 노력하자”고 제안했다.

시작에서 어느 정도 한 풀이를 해서였을까. 서로 입장이 상반될 것으로 예상했던 계약·연봉제에 대해서는 쉽게 의견일치를 보았다.

교수노조는 전반적인 교원지위향상을 위해 강사들의 교원 지위 확보를 우선 과제로 삼고, 강사노조는 교수들에 대한 계약·연봉제를 반대하는 것으로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 방법으로 교수노조는 강사처우개선을 위한 대 언론홍보의 몫을 떠 안았고, 강사노조는 대규모 학술대회를 개최해 연대의 틀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강사노조는 그 동안 방중연구비 지급을 요구하며 계약제를 요구해 왔고, 교수노조는 전국순회토론회를 열며 계약·연봉제 반대를 주장해 왔던 것을 고려하면 합의된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계약제가 필요하다면 싫다는 교수 말고, ‘해달라’는 시간강사부터 적용하라.”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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