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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원]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제시하는 9·11 테러 이후 미국 대외정책론
[해외통신원]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제시하는 9·11 테러 이후 미국 대외정책론
  • 최미화 / 미국 통신원
  • 승인 2002.05.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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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7 13:44:25

최미화 / 미국 통신원·시카고대 박사과정

9·11 테러 이후 미국인들 사이에 대외정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활발한 강연과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에 대중들에게도 상당한 공감을 얻은 견해로 조셉 나이(Joseph S. Nye) 하버드대 교수의 다각적 대외정책론이 있다. 그의 입론은 9·11 이후 미국 사회의 변화된 분위기를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나이 교수는 ‘왜 세계 유일의 초강국은 독주할 수 없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더 패러독스 오브 아메리칸 파워’를 금년 1월에 펴낸 후, 라디오 방송 강연과 각종 토론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입장을 널리 알리고 있다. 그는 테러 사건이 그간 미국정부가 보여온 오만한 태도와 일방주의적 군사정책에 대한 경종이라고 지적하면서, 다각적 대외정책이야말로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미국의 지도력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나이 교수는 하버드 케네디 행정대학원의 학장으로서 미국의 대외정책에 상당한 학문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국무성과 국방성에서 고위직을 지내며 현장 경력을 쌓은 후 학계에 되돌아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탄탄한 정책 이론을 내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주장은 대략 중도적 입장으로 분류될 만한 것으로, 현재와 같은 일방주의 군사정책에 대한 대안으로서 미국의 군사적 대외개입의 축소, 독불장군식 태도의 지양, 유엔과 나토의 지원 획득, 세계 각국과의 협력체제 구축 등을 촉구한다. 물론 나이 교수는 여전히 미국의 대외 간섭이 필요하다고 보며, 다만 그 방법적인 면에서 군사력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가치와 정보 등의 사회 문화적 요소를 이용하고 타국과의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나이 교수의 견해는, 미국의 대외간섭을 전면적으로 줄여나갈 것을 주장하는 소수의 급진적 입장과 구별된다.

나이 교수의 이 같은 생각에는 21세기에도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위치는 지속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깔려 있다. 그에 따르면, 장차 미국에 도전 가능한 국가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중국도 현재의 경제성장 속도로 보아서는 약 75년 후에야 비로소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1인당 GNP에 이를 전망이며, 군사력의 발전 또한 그다지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어느 한 주권국가의 단위에서는 미국을 위협할 만한 상대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테러 사건이 보여주었듯이 미국을 위협하는 세력은 국경을 초월한 주권국가 바깥의 조직 에 있으며, 이는 21세기의 정보화와 세계화 추세로 생겨난 새로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주권국들의 대응 역시 군사력 이외에 정보와 경찰망 등에서 다각적 협력체제를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이 교수는 국가의 힘은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의 종합이라고 설명한다. 전자에는 전통적으로 국력을 규정하던 요소인 군사력과 경제력이 포함되고, 반면 후자에는 가치, 문화, 정보 등이 포함된다. 물론 두 가지 힘 모두에서 현재 미국의 세계 내 지배적 위치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소프트 파워에서의 미국의 지배적 위치는 하드 파워만큼 견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프트 파워의 성격 자체가 국가기관의 영향력 밖에 존재하는 측면이 두드러진다. 현재와 같은 정보혁명의 시대에는 온갖 가치와 정보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유통됨으로써 각국의 사회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어떻게 넘쳐나는 정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각국이 지닌 소프트 파워가 결정된다. 이 소프트 파워는 국제정치에서도 이미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으며 그 위력이 점차 증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인터넷의 활성화로 각국의 정치권외 압력단체나 인권단체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국제적인 공조 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많은 테러집단들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교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된 세계상에 관한 인식을 기반으로, 나이 교수는 미국의 전통적인 방식의 대외정책, 즉 주권국가로서의 위치를 강조하면서 하드 파워에만 의존하는 일방적 군사외교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나이 교수의 주장을 현재 미국이 취하고 있는 군사력 중심의 대외정책 폐기론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핵심은 오히려 미국의 주도하에 타국의 협조를 모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미국이 지고 있는 비용 부담을 줄이는 실리를 추구하고, 동시에 소프트 파워라는 부문을 강화함으로써 미국의 헤게모니를 더욱 공고히 하자는 데 있다. 이것이 그의 입론이 미국 사회를 주도해 온 이들에게 환영받은 근본적인 이유이며, 우리 처지에서는 비판적인 검토가 요청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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