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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내려 앉는 곳이라면 전방 철책선 OP도 누볐다
그들이 내려 앉는 곳이라면 전방 철책선 OP도 누볐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0.07.26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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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와 함께 한 10년의 기록_ 『두루미』(이종렬·이기섭 지음, 필드가이드, 2010)

두루미를 좇는 사람들. 생태사진작가 이종렬, 조류학자 이기섭 박사 앞에 붙는 수식어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두루미에 미친 사람들이다. 이 ‘그냥’이 무섭다. 이종렬 작가는 ‘두루미의 아름다운 자태와 위험한 처지를 세상에 알리는 일’을 자신의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기섭 박사는 두루미를 좇기 위해 10년간 다니던 교사직도 그만뒀다. 도대체 두루미가 뭐길래?

두루미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결국 ‘그냥’ 좋아서 한 일이 ‘길’이 되고 말았다. 이종렬 작가는 “두루미들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겨울을 지내고 있는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다양한 작업을 통해 사진으로 기록하겠다”는 의욕을 불태우면서 영하 24도의 강바람 쌩쌩 부는 한탄강에서, 영하 34도를 기록했던 전방 철책선의 한 OP에서 며칠씩 밤을 꼬박 샜다. 그렇게 두루미가 내려 앉는 곳이라면, 산하를 뒤지고 다녔다.『두루미-천년학을 꿈꾸다』는 이런 풍찬노숙의 겨울 여정에서 만난 두루미와의 은근한 교감과 대화의 기록인 셈이다. 이 영롱하고 맑은 사진에 조류학자 이기섭 박사의 글이 덧붙여져 한 권의 야무진 책이 탄생했다.

이기섭 박사가 던지는 짧은 전언이 무섭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게 두루미는 아름다운 고통이다. 두루미를 몰랐을 때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두루미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고 나서부터 난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편안한 삶, 배부른 삶도 아니고 가족을 위하는 일도 아니다.”

눈 내리는 날, 철원에서 담은 ‘순이네’ 가족. 작가는 이들에게 ‘순이네’라는 택명을 부여했다. 피사체에서 그치지 않고, 교감을 나누고 함께 공존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의 새박사 ‘원병오’ 교수 밑에서 공부한 이기섭 박사는 두루미가 서식하는 곳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러나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두루미는 최후의 광경이 되고 말았다. 김포 시암리 습지, 그 철책선 너머 습지에서 쉬고 있는 20여 마리의 재두루미를 만났지만, 그 뒤로는 그곳에서 그들을 다시 볼 수 없었다. 1997년 3월 곡릉천 하구에서 500마리의 재두루미를 만났지만, 그들은 이제 다시는 그곳을 다시 찾지 않는다. 1986년 겨울, 대구 달성습지에서 200마리나 되는 큰 흑두루미를 만났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조우였다. 그 장소는 모두 공업단지로 변했다.

두루미는 동아시아 전역에서 장수와 행운, 조화와 평화의 상징으로 존중되고 있다.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 고고, 우아, 신선의 새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병풍과 그림 등 여러 가지 회화, 족자에서 궁중 의복에까지 디자인 형태의 장식용 상징물로 널리 묘사되고 있다.

두루미들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순간, 작가의 눈이 반짝였다. 철원 한탄강에서 잠을 깬 두루미들이 깃털을 다듬고 있다.

이렇게 전통시대에는 문화적 상징물의 위치로까지 대접받았지만, 지금 두루미는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한자어로는 鶴이라고 부르며, 이 중 두루미는 몸빛이 순백색이고 머리 꼭대기에 붉은 점이 있어 丹頂鶴이라고도 한다. 재두루미는 灰鶴, 흑두루미는 黑鶴이라 불린다. 키는 목을 쭉 뻗으면 무려 180cm에 이른다. 우리나라에 월동하는 두루미도 키가 160cm나 된다. 큰 소리로 운다는 것도 특징적이다. 암수가 목을 올려 뻗고 함께 울어대면 그 소리를 멀리 십리 밖에서도 들을 수 있다. 발성기관인 울음관(명관)이 길게 휘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 독특한 점은 사진작가의 시선이 아니라, 두루미의 시선이 강조됐다는 것이다. ‘두루미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그렇다. 철원, 구미, 연천, 김포, 강화, 순천만, 파주, 한강하구, 서산을 찾아 온 두루미들의 편안한 모습, 그네들의 모듬살이가 겨울 백색의 산하를 배경으로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기섭 박사는 두루미의 생태와 각종 관찰자료를 꼼꼼하게 첨부했다.

현재 두루미의 생존 개체수는 3천마리 미만이다. 그보다 조금 많은 재두루미 역시 7천마리 내외가 생존하고 있다. 유럽에 많이 서식하는 검은목두루미는 개체수가 30만 마리에 가깝고, 중앙아시아에 흔한 쇠재두루미도 25만 마리에 이른다. 반면 동아이사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에만 서식하는 두루미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자료서(Red data book)에 멸종위기종(endangered species)으로 등재돼 있으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희귀한 두루미이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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