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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각론 정리할 ‘총론’격 새 논의 필요하다”
“다양한 각론 정리할 ‘총론’격 새 논의 필요하다”
  • 우주영 기자
  • 승인 2010.07.26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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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동아시아 담론, 어디까지 와 있나

17년째 한중일 연극제를 운영하고 있는 오수경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소장(중어중문학)은 동아시아 각국이 이제 학계나 정치의 영역뿐 아니라 문화적인 층위에서도 소통의 기회를 넓혀가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동아시아 담론의 테마가 다양해진 것은 물론이고 동아시아를 다룬 간행물의 발간도 속속 이어지고 있다. 1990년대 초 백영서 연세대 교수(역사학), 최원식 인하대 교수(국문학)가 ‘동아시아’란 화두를 처음 던졌을 때와 견줘본다면 동아시아 담론은 확실한 학계의 주류 담론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동아시아 담론은 동아시아를 통해 서구, 특히 미국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리즘의 대안을 모색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끌었다. 최원식 인하대 교수(국문학) 역시 자신의 동아시아 연구를 ‘서구적 근대의 진정한 대안을 모색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한다.


인문사회과학 분야뿐 아니라 정부와 시민사회까지 아우르고 있는 동아시아 담론은 그 논의의 영역에 따라 크게 네 가지 분류가 가능하다. 동아시아 담론 초기에 주로 언급됐던 유교자본주의론과 탈근대적 입장의 대안문명론, <창작과 비평>이 주도한 비판적 지역주의론 등이다. 그리고 정부 측 차원에서 제기된 정치경제적 지역통합론도 담론의 한 축을 이룬다. 각 영역에서 동아시아론은 어떻게 논의되고 있으며 그 담론을 이끄는 연구자 그룹은 어떤 경계 짖기가 가능할까.

1970년대 이후 아시아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이 이른바 현대 신유학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아시아적 가치’로 요약될 수 있는 가족주의와 근면, 협동과 같은 노동관이 아시아 경제성장에 동력이 됐다. 류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확), 조혜인 서강대 교수(사회학) 등이 이끈 유교적자본주의론은 그러나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전면적인 비판을 받게 된다. 아시아적 가치로 여겨졌던 지연과 혈연의 긴밀한 관계가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는 “아시아적 가치론의 허구성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적 특성을 유교와 연결해 규명하려는 시도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로운 문명적 대안은 가능한가

동아시아론은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대안문명론은 특히 근대적 주체성의 양면성과 인문학적 위기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려는 인문학의 영역에서 폭넓게 진행됐다. 서구 중심의 이성주의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적인 원형 속에서 문명론적 대안을 찾고자 하는 탈근대적 작업은 문화적 상대주의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는 한계를 지닌다. 서구적 근대와 동아시아 전통이란 이분법의 함정은 대안문명론의 과제다.

탈냉전 이후 이데올로기의 공백 속에서 동아시아 담론은 한반도의 변혁이론으로 제시됐다. 비판적 지역주의로서 <창작과 비평> 그룹에 의해 주도됐지만 민족국가의 경계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흐름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 최원식 교수는 민족주의든 사회주의든 종래의 일국주의를 넘어 한반도가 자리한 지역, 동아시아를 새로운 세계형성의 원리로 사유하자고 제안한다. 최 교수의 주장은 이후 동일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동아시아 지역 내 비판적 지식인들과의 지속적 교류 속에 비판적 지역주의로 심화된다.

동아시아 국가 간의 정치경제적 지역 통합론은 정부 차원에서 주도했다. 일정한 지역적 범위 내 국가 간의 지역공동체 형성은 지난 참여정부의 동북아균형자론 등으로 구체화됐다. 그러나 이 같은 지역 통합은 결국 신자유주의의 답습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백원담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소장(중어중문학)은 “동북아시대 구상은 신자유주의의 교묘한 변증이란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도 “지역통합론을 학계의 담론 안에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동아시아론의 궁극적인 관심은 동아시아의 공동체적인 속성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다. 동아시아 국가 간의 실제적인 교류 확대는 오히려 민족 간의 확연한 이질성을 확인하게 했다. “평화적인 공존을 위한 동아시아적 정체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차이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임우경 성공회대 교수(중어중문학)의 지적처럼 동아시아 공동체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각 국가 간의 이질성을 어떻게 극복할 지가 과제로 남는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그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동아시아란 하나의 틀 안에 수렴될 지는 다시 ‘동아시아 국가란 무엇인가’란 근본적인 질문으로 귀결된다. 여전히 국내 학계에서 동아시아는 동북아시아란 좁은 단위로 구획된다. 때문에 최근의 다양한 연구 동향이 동아시아 담론의 심화인지 아니면 단순한 소재 확장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최원식 교수는 이제 동아시아 담론은 단순히 학계의 논의로만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뿐 아니라 민간의 교류도 크게 확산됐다. 초기 제기된 동아시아론의 추상성은 중용국가론 등으로 극복된다.”

반면 임우경 교수는 “동아시아 담론의 각론이 다양화된 건 사실이지만 그 각론을 정리할 총론으로서 새로운 논의는 나오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다시 냉전 상태로 회귀하고 있는 정치, 사회적 현실은 동북아시아 담론을 제자리걸음에 머물게 하는 이유다. 동아시아 담론 자체가 냉전 이데올로기의 공백상태에서 새로운 평화체제의 대안으로 출발했다. 중국, 북한과의 경색 국면은 진정한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에 걸림돌이다.

동아시아 담론의 협소한 틀

신윤환 서강대 동아연구소 소장(정치외교학)은 “동아시아는 동북, 동남아시아 등 모두를 포함하는 것인데도 국내 학계에서 동남아, 서남아시아 등은 동아시아 차원에서 논의되지 않는다”며 동아시아 담론의 협소한 틀을 지적했다. 동아시아 담론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현실 역학 속에서 아시아를 폭넓게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에 동아시아 관련 연구소가 140여 개에 이른다. 이들 연구소가 학계 안팎을 넘어 동아시아의 새로운 가치지향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미지수다.

우주영 기자 realcosm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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