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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슬픈 대학, 인문학의 눈물
[딸깍발이] 슬픈 대학, 인문학의 눈물
  • 서장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독문학
  • 승인 2010.07.1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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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독문학
서양식 개념으로 볼 때 대학이란 ‘가르치는 자들과 배우는 자들의 공동체 universitas magistrorum et scholarium’이다. 유럽 중세시대 라틴어로 정의된 이 표현에서 사람들은 ‘공동체’에 해당하는
‘우니베르지타스(universitas)’만을 뽑아 통상적으로 ‘대학’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그들은 대학의 본질 설명을 위해 한두 개의 전제조건을 더 부연하고 있다.

    첫째로 대학은 여타의 다른 공동체와 다르게 ‘자율성’을 유지하고 있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이때 ‘자율성’이란 학업뿐만 아니라, 학위 수여 권한까지를 말한다. 둘째로 대학으로써의 요건을 갖추려면 4개의 학부가 필수적으로 설치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4개의 학부란 철학부, 법학부, 신학부, 의학부를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대학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는 대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대학이 던지는 문제는 자못 심각하다. 대학이란 그 속성상 항상 질문을 유발하기 마련이지만 한국 대학이 던지는 문제는 심각함을 넘어 위험수위에 있음을 자주 느낀다.

    2010년 전반기 <교수신문>이 주로 역점을 두고 기사화한 내용을 주제별로 더듬어 보면, 이러한 사실은 더욱 극명해 진다. 이 신문은 기사의 중요 내용을 교수임용에 대한 공정성 문제, 신규교수 임용 시 금품요구 의혹, 어느 시간강사의 자살, 논문 대필 주장 및 그 의혹, 시간 강사 실태 및 처우문제, 대학원 교육과 불투명한 인문학 학문후속세대, 모 대학의 인문학 관련학과 구조조정 문제 등에 할애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들은 ‘공동체’의 ‘가르치는 자’ 구성에 관한 것과 대학의 상징이자 종합대학의 필수 구성요소인 ‘철학부’ 기구개편에 관한 것으로 어찌 보면 대학 본질의 핵심에 속하는 사항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수면위로 부상한 것은 이번 학기만이 아니다. 비정규직 교수인 시간 강사가 자살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번 이러한 문제와 불행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앞에 두고 이제 단순한 분노나 막연한 비판은 어디엔가 한계가 있다는 점을 웬만한 사람들은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 된다.

    이때 첫 번째로 떠오르는 질문이 대학의 본질을 우리나라 일반인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진정한 비판자들이 혹시 서구의 개념만으로 한국의 대학을 바라보고 있지 않나하는 의구심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동기는 프랑스의 문화인류학자 C.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이론과 2009년 MBC가 방영한 ‘아마존의 눈물’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을 응용해 본다면 우리의 현실은 ‘슬픈 대학, 인문학의 눈물’ 상황이다.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저서 『슬픈 열대』에서 구조주의적 관점을 바탕으로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를 비판하며 “서구의 눈으로 비 서구를 보지마라”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유한 ‘구조’가 우리의 ‘공동체’ 내에 흐르고 있다면 우리는 긍정적인 측면이든 부정적인 측면이든 이 부분에 관해 구조적인 연구를 해 볼 필요가 있다. 

    문화인류학과 관련된 ‘아마존의 눈물’은 인문학 논의를 위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MBC는 “아마존강 유역의 밀림은 지구 전체 산소공급량의 20%를 제공하는 지구의 허파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에 의해 지난 30년간 1/5이 파괴됐으며 이제는 내뿜는 산소보다 배출되는 탄소가 더 많은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는 그곳을 더 늦기 전에 기록하기로 했다”라고 방송의 이유를 밝혔다.

    이러한 암시에 의하면 인문학은 인간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는 학문의 심장과도 같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에 의해 인문학은 점차 파괴돼가고 있으며, 이제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삶의 유용성 개발에 더 치우치고 있다. 지금 이대로 간다면 인문학은 아마도 인간성 파괴에 앞장설지도 모른다.

서장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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