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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은 카프의 실질적 지도자 … 문학계 재평가 필요하다”
“김복진은 카프의 실질적 지도자 … 문학계 재평가 필요하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0.07.12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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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범모 경원대 교수, 한국근대미술사의 거목 김복진 재조명

井觀 金復鎭(1901.4.3~1940.8.18). 그가 마침내 돌아왔다. 미술평론가인 윤범모 경원대 교수(미술사학·사진)가 30여년의 시간을 투척해 그를 불러냈다.

20세기 한국미술계의 걸출한 조각가이자 미술평론가이며, 불교 세계로부터 사회주의 사상에 이르는 보폭 넓은 사상적 행적을 남긴, 그러나 1940년 요절 이후 한국 미술사로부터 방치됐던 인물. 특히 그는 조소예술계에 ‘井觀派’라고 일컬을 만한 다수의 제자들을 양성하면서 주류로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의 안타까운 요절과 직계가족의 단절, 일제 말 공출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작품 소실로 현존 작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그의 사회주의 활동 경력과 제자들의 월북 등으로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매우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김복진 연구-일제 강점하 조소예술과 문예운동』(동국대출판부, 2010.6)에서 드러난 그의 얼굴은 이렇다. ‘근대기 조소예술계의 선구자, 전통적 불상예술을 이해함으로써 근대기 불상조각의 범본을 이룩한 佛母,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카프)의 실질적 지도자, 1920년대 사회주의 운동사의 최전선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수행한 예술가.’

책 제목이 시사하듯, 이 책에서 저자는 두 가지를 겨냥하고 있다. 조각가로서의 김복진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것, 그리고 3차 조선공산당의 비밀당원인 김복진과 카프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것이다. 물론 윤 교수는 김복진의 사상적 스펙트럼 전체를 조명하는 걸 빠뜨리지 않았다. 조소예술, 조소론, 기념조형물을 책의 전체적 구성상 앞 쪽에 배치함으로써 조각가로서의 김복진을 복권해내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대목은 김복진의 불상 작품과 불상예술의 특성을 고찰한 부분, 그리고 카프와 관련된 김복진의 역할 위상을 분석한 부분이다. 저자는 이 두 가지 사항을 이렇게 연결한다. “김복진은 어떻게 불교 사상과 더불어 사회주의 사상까지 섭렵하면서 나름대로 일가를 이루었을까.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도 탐닉하기 쉽지 않은 예술계의 일반적 경향과 비교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가지 사상에 대해, 단순한 흥미의 수준을 넘어 두드러진 성과물과 연결됐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무엇이 이런 해석을 뒷받침할까. “전통 미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도로서의 불상 작업이나 일제로부터 독립을 염두에 둔 진보적 사상투쟁과 같은 결과”를 제시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그는 정부 비밀문서 창고에서 김복진이 관련된 조선공산당 사건 신문조서 및 재판기록(‘치안유지법 위반에 의한 공판조서’)를 발굴, 확인하는 쾌거를 올렸다. 1천매가 넘는 방대한 기록을 통해 윤 교수는 “김복진이 카프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다”는 결론을 내린다.

저자에 따르면, 김복진은 일반 조소작가와 달리 전통적 불상예술에도 일가를 이뤄 근대기 불상조각의 모범을 선보인 佛母이기도 했다. ‘佛母’로서의 위상을 조명하기 위해 윤 교수는 금산사의 「미륵전 본존상」과 예산 정혜사 「관음전 관음보살 좌상」이 김복진의 작품임을 밝혀낸 경위와 자료, 증언 등을 제시했다. 또한 윤 교수는 법주사 미륵대불이 ‘김복진의 원형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기존 주장을 수정 ‘김복진 원안에 가깝게 조성된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공들인 또 다른 대목은 김복진과 카프의 연관성이다. 윤 교수는 ‘치안유지법 위반 신문조서’ 등의 면밀한 분석을 통해 “김복진은 동생인 김기진, 그리고 박영희 등과 함께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을 주도적으로 결성했고, 실질적인 지도자 역할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 기존의 카프 연구가 문인 중심의 문학연구로 제한된 측면을 고려한다면, 윤 교수의 접근에 주목할 필요가 분명 있다. 책의 결론 부분에서 윤 교수는 “기왕의 카프연구사의 수정을 요구한다. 카프의 역사는 김복진을 중심으로 다시 정리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의 이 주장이 미술사학-국문학의 경계 선에서 새로운 논쟁으로 이어질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국문학계와는 시각 차이가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윤범모 교수가 세브란스 병원 지하창고에서 찾아낸 김복진의 「러들로상」(1938, 흉판부조, 64X73cm), 세브란스병원 소장. 유작 부재의 한계를 극복한 쾌거였다.
김복진은 과연 카프의 ‘실질적인 지도자’였을까. 김재용 원광대 교수(국문학)는 “김복진은 제3차 조선공산당과 외곽단체를 잇는 ‘연결선’ 역할을 1~2년 정도 했다. 실질적인 지도자 역할이라기보다는 당과 외곽단체를 이어주는 ‘연결’ 역할자로 봐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한다. 이런 시각은 카프 전공자인 문학평론가 신두원 박사(국문학)도 공유하고 있다. 그는 “김복진은 유일한 3차 조선공산당 당원이다. 그러나 카프는 조선공산당의 직접적인 하부 조직이 아니었다. 다만 ‘당’과 관계설정 할 필요가 있어 노력한 측면은 있다. 문예운동에서 한정해 본다면, 김복진의 참여와 지도 흔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반면,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국문학)는 “회월 박영희와 팔봉 김기진의 논쟁에 개입 조정한 이가 김기진의 형 김복진인데,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하다. 김복진이 상황을 컨트롤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한다”라고 강조한다. 김윤식 교수는 “문학 연구는 주관적 부분이 중요한 것처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자료가 또한 필요하다. 김복진의 검거 공판기록이 그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윤 교수가 발굴한 자료의 사료적 의미를 중시한다. 그러나 김윤식 교수는 “김복진이 카프의 보이지 않는 막후의 지도자, 핵심 인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사실 확인이 카프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카프 연구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김 교수가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이렇다. 카프와 일본의 나프(NAPF) 구성원이 체제에 어떻게 맞섰냐 하는 것을 준거로 삼을 때, 좋은 사례가 카프의 경우, 전주사건이다. 전주사건 공판기록을 검토했던 김 교수는, 카프 맹원들 모두가 ‘전향’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것은 미전향자가 다수 존재한 일본 나프와 비교해봤을 때, 카프의 구성력이랄까, 조직이란 것이 매우 허술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김윤식 교수는 카프를 가리켜 “조직으로서는 매우 허술한 집단"이라고 지적했다.

『김복진 연구』는 560쪽 분량으로 동국대출판부에서 출간됐다. 윤 교수는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미술전문 출판사에서 출판 거부된 책이다. 20세기 한국미술계의 대가가 여전히 방치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한국 미술계 풍토를 못내 안타까워한다. 한국미술의 담론 제공 미술가로서 독보적 위치에 있었던 김복진. 예술과 삶이 일치했던 문제적 작가. 그 김복진이 윤범모라는 ‘井觀의 嫡子’를 만나, 이제 다시 역사의 저편에서 건너오고 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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