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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세기 ‘걸작’의 비밀에 접근 …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읽는 또 다른 방식
12~16세기 ‘걸작’의 비밀에 접근 …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읽는 또 다른 방식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0.07.05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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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은 이화여대 대학원 교수, ‘최후의 심판’ 도상 분석했다

‘최후의 심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일 것이다. 이런 연상 작용은 근대지식 체계 안에서 교양으로서 예술 교육을 흡수한 세대의 공통 반응이리라. 헤브라이즘을 근간으로 성장한 서양문명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최후의 심판’은 16세기에 와서 미켈란젤로가 문득 발견(!)한 사건으로 볼 수 없다. 박성은 이화여대 대학원 교수(미술사학과)가 최근 상재한 『최후의 심판 도상 연구』(다빈치, 2010.6)는 ‘최후의 심판’이 어떤 형태로 도상화됐으며, 어떻게 변천해왔는가를 한눈에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일뿐더러, 르네상스의 천재 화가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좀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게 만드는 지적 추진체이기도 하다.


이 책은 또한 학문에 입문해서 자신의 길을 열어온 한 학자의 내면 고백의 풍경이기도 하다는 점을 놓칠 수 없다. 박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1979년 가을, 화가를 꿈꾸며 프랑스로 떠났다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정문의 탐파눔 조각 「최후의 심판」을 바라보면서 그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크게 절망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大作 앞에서 체감한 이러한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 박 교수는 이후 「최후의 심판」 도상을 가장 주요한 주제로 설정했다. 양식의 탄생을 에워싼 시대 상황, 양식과 양식 간의 영향관계와 변천을 특히 주목하는 방식으로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었다.


「최후의 심판」 도상은 필사본 삽화, 비잔틴의 성화 등에 간간이 나타나다가 12세기 로마네스코 양식 교회 서측 정문 팀파눔에 조각되면서 본격적으로 서양미술사에 등장한다. 13세기 프랑스 북부 일 드 프랑스의 고딕 양식 성당들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운 「최후의 심판」은 르네상스 시기에 알프스 이북의 플랑드르는 물론 이남의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모자이크, 프레스코, 패널 제단화 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됐다. 「최후의 심판」은 기독교의 내세관을 잘 보여주는 도상으로 교회가 신자들을 교화하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목적으로 내세운 이미지이다. 또한 이는 기독교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이던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교회가 신자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통제하는 장치로도 이용됐다.


교회보다 「최후의 심판」 도상을 더 잘 활용한 이들은 세속의 군주들이었다. 이들 세속 군주들은 왕권 강화를 위해 심판자 그리스도의 모습에 왕의 이미지를 투영했고, 고위 성직나나 귀족 신분이 아닌 일반 시민계급 중에서 새롭게 부를 획득해 예술의 후원자로 등장한 계층은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자신과 가족의 영혼의 구원을 기원하면서 「최후의 심판」 도상을 주문했다.


박 교수가 조명한 「최후의 심판」 도상은 시기별로 12세기 오툉 대성당의 「최후의 심판」, 13세기 프랑스 카페왕조기의 「최후의 심판」, 14세기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최후의 심판」, 15세기 로히르 판 데르 베이던의 「최후의 심판」과 플라드르 제단화와 사이코스타시아, 15세기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다. 저자는 이들 각각을 주제화해 접근했다. 예컨대 12세기 오툉 대성당의 「최후의 심판」은 ‘새로운 대중매체로서의 팀파눔 조각’을 강조하면서, 14세기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작품에서는 ‘지옥 모티프’를 읽어냈으며, 15세기 로히르 판 데르 베이던의 예에서는 ‘죽음과 구원의 서사시’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계승자로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조명해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마주 대하면 우선 이교도적인 도상 모티프들 앞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된다. 전통적으로 「최후의 심판」도상을 구성하는 모티프로서 가장 중요한 심판자 그리스도나 지옥 장면을 보면 마치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의 세계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결국, 이 ‘신화의 세계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미술사적으로 해명하는 한편, 박 교수 스스로 경험했던 최초의 절망감에 대한 해설이기도 하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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