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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들의 ‘쿨한’ 대결
맞수들의 ‘쿨한’ 대결
  • 심정민 무용평론가
  • 승인 2010.07.0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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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모던 발레_ 국립발레단의 ‘롤랑 프티의 밤’ vs 유니버설발레단의 ‘This is Modern’

유니버설발레단이 선보일 ‘디스 이즈 모던’ 기획작의 하나인  「인 더 미들」장면.
발레에서 걸출한 라이벌 간의 대결처럼 관객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우리나라 발레계에서 최대의 라이벌이라 한다면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을 들 수 있다. 두 발레단의 경쟁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을 정도인데, 우선 우리나라 발레계를 떠받치는 양대산맥으로, 유수한 발레 스타들을 배출했으며 당대를 풍미했던 발레리나 최태지와 문훈숙이 각각 두 발레단의 단장으로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서로 다른 「호두까기 인형」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한다는 것쯤은 소소한 부닥침이다. 걸출한 두 세력이 발레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왔다는 점에 대해 이의를 달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리고 2010년 7월, 두 발레단은 모던발레로 또 한 번 선의의 대결을 펼친다. 

세 가지 팜므 파탈을 여는 남자

국립발레단은 ‘롤랑 프티의 밤’을 연다. 올해로 86세인 롤랑 프티는 20세기 모던발레의 살아있는 전설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1940년대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주옥같은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국내에서는 그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의 대표작 「젊은이와 죽음」, 「카르멘」, 「아를르의 여인」을 한 자리에서 음미할 수 있는 이번 기회는 소중할 수밖에 없다.

롤랑 프티는 ‘팜므 파탈’이라는 소재를 지극히 애호하고 있는 것 같다. 세 작품 전부 팜므 파탈이 등장하니 말이다. 「젊은이와 죽음」에서는 젊은 영혼을 죽음으로 이끄는 사신이고 「카르멘」에서는 남자를 파멸의 구덩이에 빠뜨리는 집시 요부이며 「아를르의 여인」에서는 새신랑을 투신하게 만드는 떨칠 수 없는 격정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들이 여성 중심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모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여인으로 인해 파멸해가는 남자의 관점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이와 죽음」은 전방위 예술가 장 콕토의 대본에 맞춰 안무한 작품으로 1946년 당시, 戰後의 무거운 사회 분위기와 삶과 죽음에 대한 허무적인 고뇌를 담아내고 있다. 너무 잘 만들어진 작품이기에 목을 매는 장면에서는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된 자살을 미화시키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가 나올지도 모른다.

 

국립발레단의 ‘롤랑 프티의 밤’ 무대에 올려질 「젊은이와 죽음」 장면.

의외로 「젊은이와 죽음」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영화 「백야」(1985)의 오프닝을 장식한 춤이라고 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많을 것이다. 주역을 맡은 미하일 바리쉬니코프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발레리노답게 테크닉과 연기 그리고 무대장악력에서 잊혀지지 않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국내에서 이 춤을 오마주한 스포츠웨어 선전까지 대대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을 정도다. 워낙 바리쉬니코프의 역량이 탁월해서 그 아성에 도전하는 발레리노의 부담감이 만만치 않을 터다. 하지만 작년에 국립발레단을 떠난 이원철은 이 역을 위해 자신만만하게 돌아왔다. 이원철 스스로가 바리쉬니코프를 보고 무용을 시작했으며 그를 롤모델로 삼고 프로활동을 했다고 말하는 만큼 어떤 역량을 보여줄지 주목할 만하다. 

조르주 비제의 음악 「카르멘」이나 「아를르의 여인」을 춤으로 만든 동명의 작품 또한 롤랑 프티의 명작 대열에 올라 있다. 국립발레단은 롤랑 프티의 수석 트레이너들까지 불러들여 작품의 제 맛을 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모던발레

이에 맞서는 유니버셜발레단은 ‘This is Modern’이란 기획으로 윌리엄 포사이드의 「인 더 미들」, 오하드 나하린의 「마이너스 7」, 하인츠 슈푀얼리의 「올 쉘 비」를 선보인다. 이미 유니버설발레단이 국내 무대에 올린바 있는 작품들로 관객의 호응이 열렬했던 것만 추려놓은 것이니 박수 칠 준비는 미리 하자. 

유니버설발레단이 선택한 세 명의 안무가는 롤랑 프티에 비해 한 세대 젊기 때문에 훨씬 더 최근 취향으로 무장해 있다. 그중, 월리엄 포사이드는 ‘발레를 절단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급진적인 성향의 안무가다. 발레의 전통적인 테크닉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되 그 형태를 진보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점이 포사이드의 춤을 특별하게 만든다. 그의 어떤 작품들은 현대무용처럼 보일 정도로 혁신적이지만 「인 더 미들」은 비교적 얌전한(?) 측에 속한다.

‘가운데 약간 위(In the Middles, Somewhat Elevated)’란 원제는 원래 무대 중앙 위에 걸려있는 두 개의 체리를 의미한다. 메탈그린색 레오타드를 입은 무용수들은 어두운 조명 아래서 전위음악가 톰 빌렘의 폭발적인 불협화음과 날카로운 기계음에 맞춰 신체의 한계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남녀무용수들은 예리하고 정교하게, 강도 높은 동작을 빠른 속도로 수행한다. 절제돼 있으면서도 곡예적인 움직임은 관객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조화를 이루면서도 경쟁적으로 대립하는 듯한 듀엣이 인상적이다. 유연성, 균형감, 민첩성, 조정력의 한계를 실험하는 무용수들은 발레가 운동적이면서도 동시에 신비롭고 심미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정한 줄거리 없이 춤에 집중하는 「인 더 미들」은 1987년 파리 초연 당시, 작품 자체의 놀라운 예술성뿐 아니라 실비 길렘, 이자벨 게링, 로랑 일레어, 마뉴엘 레그리 등 쟁쟁한 무용수들이 대거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이번 공연에서도 유니버설발레단의 스타 무용수들이 다수 출연한다. 몬테카를로발레단과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을 거친 한상이의 유니버설발레단 입단 신고식이 되는 무대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무용수와 관객의 교감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마이너스 7」이나 ‘G선상의 아리아’에 맞춰 말끔한 안무를 선보일 「올 쉘 비」도 함께한다. 현재진행 중인 감각적이고 세련된 모던발레를 고대하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공교롭게도 공연 일시가 겹쳐지는 만큼 스케줄을 잘 짜야 할 것 같다. 국립발레단의 ‘롤랑 프티의 밤’은 7월 15~1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의 ‘This is Modern’은 7월 16~18일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펼쳐진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미세한 미감의 차이를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그 이상으로 모던발레의 대가들의 작품에 흠뻑 젖어들 수 있는 흔치 않는 場이다. 한 여름 밤을 쿨(Cool)하게 식혀줄 모던발레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심정민 무용평론가

이화여대에서 무용전공으로 박사학위를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한양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무용비평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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