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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연구, 어디까지 왔나] “학계, 논의 거의 없어 극단적 대립 벗어나야”
[김성수 연구, 어디까지 왔나] “학계, 논의 거의 없어 극단적 대립 벗어나야”
  • 우주영 기자
  • 승인 2010.07.05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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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이자 교육가, 정치인이었던 仁村 김성수는 개화와 자강만이 민족의 살길이라 믿었던 인물이다. 또한 민족계몽을 실현하고자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 <동아일보>를 창간한 언론이기도 했다. 그러나 평생 그를 쫓아다닌 시비는 그의 친일행적에 관한 논란이었다.

학계에서 김성수에 대한 학문적 논의는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다. 최근 정치학계에서 대한민국 단독정부 수립에 참여했던 그의 정치사상을 조명하는 연구 정도가 눈에 띤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정치학)는 「김성수의 식민지 권력에 대한 저항과 협력: ‘협력적 저항’에서 ‘저항적 협력’으로」(『한국민족운동사연구』, 2009)를 통해 그의 친일 행위를 좀 더 섬세하게 분석할 것을 요청했다. 친일이라는 도덕적 단죄로 매도하기 이전에 ‘저항과 협력의 다층적 위상’ 위에 오갔던 그의 행적을 재평가하자는 주장이다.

역사학계 역시 해방직후부터 제기된 김성수의 친일 행적을 놓고 입장이 부딪친다. 특히 1993년 국가보훈처가 국회보사위에 제출한 문건에서 친일혐의를 가진 국가유공자를 재심사해 서훈을 취소할 계획이라 밝히면서 수면 하에 있던 김성수의 친일 논란이 불거졌다. 한국 전문가인 카터 J. 에커트 하버드대 교수(한국사)는 『제국의 후예』(주익종 역, 푸른역사)를 통해 김성수와 김연수 형제의 친일 협력이 다분히 피동적이었다고 변호했다. 반면 장신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김성수가 전시동원에 협조한 이력을 증명하는 것과 함께 그를 변호하려는 입장 모두를 비판했다.

김성수에 관한 저서는 대부분 김성수의 개인적 업적이나 일화를 서술한 전기류나 김성수 일가를 조명한 저작이 다수다. 특히 동아일보사는 김성수의 업적을 기념하는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학계는 왜 김성수의 재조명 작업에 무관심할까.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경제사학)은 현실의 정치적 갈등이 학계로 하여금 김성수 연구를 제쳐놓게 만들었다고 꼬집는다.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의 대립으로 인해 자칫 김성수 연구를 진행할 경우 특정 언론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연구자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언론과 학계의 유착관계가 깊다보니 김성수가 가진 논쟁점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연구는 학계로서는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완범 교수는 “친일과 반일, 보수와 진보란 양극단의 대립에서 벗어나 학문적 차원에서 김성수를 재조명하는 작업은 지금도 충분히 늦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학계의 침묵은 쉽게 깨지지 않을 듯하다.

우주영 기자 realcosm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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