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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조적 東獨 텍스트가 ‘비판학문’ 상상력 해쳤다
교조적 東獨 텍스트가 ‘비판학문’ 상상력 해쳤다
  • 우주영 기자
  • 승인 2010.07.05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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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GA 국제학술대회, 국내 마르크스 독해 재검토 시사

□ 일러스트 : 이재열

자본주의가 다시 마르크스를 부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론』의 판매가 급증했을 뿐 아니라 마르크스의 고향 독일에서는 마르크스 강좌를 들으려는 학생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국내 역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2008),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 경제를 말하다』(2009), 『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2009) 등 『자본론』의 해설서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2010) 등 마르크스를 수용하는 대중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30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전집(Marx-Engels Gesamtausgabe: MEGA)의 편집을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중앙대에서 열렸다. 마르크스 연구가 경제학뿐 아니라 사회과학 전반에 학문적 영감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판학문으로서 국내 학계에 충분히 소화되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환기하는 자리였다.                                          

마르크스 연구에 대한 출판계와 학계의 온도는 다르다. 국내 학계에서 마르크스 연구는 영미식 주류 경제학에 비해 턱없이 왜소하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32명 중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고사 직전에 처한 국내 마르크스 연구 현실의 한 단면이다. 학계에 마르크스 연구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우선 수용사의 문제를 들 수 있다. 1980년 당시 국내 마르크스 연구의 시작은 학문적 동기보다 정치적 동기가 우선이었다. 그런데 교조적 성격이 강한 동독의 교과서들이 주요 수용 통로가 되다보니 마르크스 연구는 변혁이론으로서 운동권의 논리적 기반으로 수렴됐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제대로 된 텍스트 기반도 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동구권이 몰락했다. 마르크스 연구는 더 이상 쓸모없는 학문이란 인식이 학문의 동력을 꺾었다”고 지적했다. 이데올로기가 대치하고 있는 정치적 상황도 마르크스 연구가 학계에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다. 보수적인 학계의 풍토 속에서 마르크스 연구는 여전히 ‘금기학문’이란 족쇄에서 자유롭지 않다. 때문에 마르크스 전공자가 국내 학계에서 직업을 얻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마르크스 연구가 학계에 정착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공황에 대한 이론이 부재한다. 때문에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공황상태에서 대처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김세균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우리나라 사회과학 전반이 미국식 사회과학에 압도당하다 보니 자본주의 시공간을 절대적으로 보는 미국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강신준 동아대 교수(경제학)는 국가 차원에서 마르크스 연구의 정착을 지원하는 것만이 학계에서 마르크스 연구가 계속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제시했다. “정치적으로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지성사적인 위상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채언 전남대 교수(경제학)는 국내 마르크스 연구자들 역시 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처음부터 통일된 이론으로 마르크스를 수용하지 못하다 보니 같은 마르크스 연구자들 간에도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며 “메가와 같이 세계 학계의 마르크스 이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국내 학자들의 소통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출판된 전체 메가의 800질을 구입 했을 정도로 이미 20세기 초부터 마르크스 연구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왔다. 마르크스 연구를 철지난 학문으로 여긴 채 고사 직전까지 내몬 학계의 시각이야 말로 낡은 것은 아닌지 학계의 균형 잡힌 문제의식이 절실하다.

우주영 기자 realcosm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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