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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환영의 깊이 … 낡아 보이는 것과의 소통을 말하다
시각적 환영의 깊이 … 낡아 보이는 것과의 소통을 말하다
  •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 승인 2010.06.28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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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조 20주기 추모전 ‘기하학적 환영’의 풍경

우리 문화예술계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대세가 중시된다는 점이다. 쏠림과 편중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는 말이다. 예컨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화예술 담론의 대세는 들뢰즈였고 그 다음엔 지젝이었다. 들뢰즈와 지젝 열풍이 지나고 나서 그 다음은?

이승조, ‘Nucleus’, 캔버스에 유채, 318X200cm,1987.

문제는 열풍이 시작되고 곧 끝난다는 점이다. 제기된 문제는 산적해 있는데 그 문제들에 진지하게 매달리는 사람보다는 새로운 문제, 새로운 담론, 새로운 논자를 찾아나서는 사람이 항상 더 많다. 이 문제는 특히 현장 비평의 경우에 좀 더 심각하다. 항상 새로운 담론, 새로운 문제,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는 비평가들은 과거에 제기된, 그러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천착하는 작가들을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으로 매도하기 십상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젊은 작가들은 살아남기 위해, 또는 비평가들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가볍고 피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언제든 떠날 수 있게끔 몸과 마음을 준비해둔다. 그럼에도 비평가들의 일갈은 매섭기 그지없다. “아직도 그대로군. 변화가 필요해. 언제쯤 새로운 작업을 보여줄 텐가?” 이러한 요구에 응하지 않는 작가는 머지않아 담론에서 사라지고 그 대부분은 잊혀질  것이다.

1960년대 풍미한 앵포르멜의 실험

그런데 예외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열풍이 불고 한참 지나 그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시점에 그 열풍이 불던 시점에 제기됐던 문제들에 대한 오랜 성찰과 실험의 결과를 우리 앞에 불쑥 들이민다. 그 무게감과 깊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섣불리 낡은 것으로 폄훼할 수 없다. 거기에 뭔가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비평가들에게 부담스런 텍스트다. 비평가들 역시 새로 나온 읽을거리와 볼거리들을 가득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살아남기 위해 그것을 읽고 보아야만 한다. 해서 그들은 눈앞에 던져진 무겁고 진지한 낡은, 아니 새로운 텍스트 앞에서 당혹감을 느낀다. 

이승조의 20주기 추모전 ‘기하학적 환영 : 환영에서 몰입까지’(일주&선화 갤러리, 샘터화랑, 6월 11일~7월 9일)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미술비평가와 작가들에게 적지 않은 당혹감을 느끼게 하는 전시다. 이승조는 어떤 화가인가. 그는 1960년대 중반 우리 미술계를 강타한 이른바 ‘기하학적 추상’의 대표자다. 그러면 ‘기하학적 추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국전쟁 직후 우리 화단에서 본격화된 추상 회화 실험의 초창기를 대표하는 화풍 가운데 하나다.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전반기까지는 앵포르멜이라 불리는 뜨거운 추상화풍이 우리 화단을 풍미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앵포르멜은 초기의 신선함을 잃고 점차 형식화됐다. 그렇게 앵포르멜의 열풍이 지나간 자리를 차갑게 냉각시키면서 대두된 화풍이 바로 기하학적 추상이다. 앵포르멜이-이미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전후 서구 화단의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세례를 받았다면 기하학적 추상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나 하드-에지(Hard-edge), 그리고 옵티컬 아트의 세례를 받았다. 이 시기 이승조를 위시해 기하학적 추상을 추구했던 미술가들은 다른 방향으로 실험으로 전개한 일군의 화가들과 더불어 앵포르멜 이후 새로운 회화의 가치를 모색하는 데 몰두했다.

하지만 오늘의 관점에서 볼 때 1960년대 중후반의 일련의 회화적 실험은 단명했다. 이것은 기하학적 추상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일관된 정체성과 내적 논리를 가진 운동으로는 지속되지 못했다. 이 시기 대부분의 작가들은 단색 평면 회화, 백색 모노크롬 회화, 미니멀 회화 등으로 지칭되는 거대한 흐름에 편입됐다. 이른바 ‘사유와 감성의 시대’(이것은 1970년대를 회고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제목이기도 하다)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큰 흐름이다.

텅빈 캔버스, 환영과 대결하는 작가들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이승조가 그렇다. 그는 1990년 지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20여년을 일관되게 기하학적 추상이라는 분야에만 매달렸다. 한때 한지 작업의 열풍에 가담하여 종이로 작업한 적도 있었지만, 그가 일생 제작한 작품의 절대다수는 차가운 경계선과 매끄럽고 기계적인 화면, 명확한 구조의 논리를 보여주는 추상작업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한 곳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기하학적 추상이라는 틀 속에서 자신의 문제에 천착해가면서 계속적으로 변모를 거듭해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논자들이 대체로 세  시기로 구분하는 이승조의 작품 변화 양태는 탄탄한 내적논리와 필연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예컨대 그의 작업은 “초기의 이른바 ‘파이프통’의 착시적 입체 구성에서 일체의 대상성이 배제된 순수 조형의 세계에로 귀착하며” 그럼으로써 평론가 오광수의 말대로 “조형의 기본 원리인 규칙적인 반복의 질서를 통해 자기 환원적 추상, 다시 말해서 탈회화적 추상의 세계”를 우리 미술계에서 최초로 자기화할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 ‘기하학적 환영 : 환영에서 몰입까지’展에서 이승조와 더불어 회화에서 ‘환영’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물을 수 있다. 평면에서 가상의 환영을 창출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평면과 평면의 중첩에서 느껴지는 깊이감은 착시현상으로 생긴 깊이감과 어떻게 다른가. 이 양자를 조율하는 것이 가능한가. 2차원 평면과 3차원의 입체라는 도식적 공간과 다른 종류의 공간, 제3의 공간의 창출은 가능한가.

이런 질문은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 보기에 지나치게 난해하고 현학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날마다 텅 빈 캔버스, 모니터 앞에서 환영과 대결하며 새로운 공간의 창출을 모색하는 작가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유의미한 질문이다. 이것이 바로 전시 기획자의 문제의식이다. 그는 젊은 미디어 작가들을 이승조와 대질시켜 공간, 환영, 몰입이라는 문제의 상호소통을 도모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논리를 적용시켜 이승조의 작업을 다시 읽어보자. 그러면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일련의 기하학적 도형들이 평면을 넘어 제 3의 공간으로 확장되는 흥미로운 시각적 환영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작고 20주기를 맞이한 이승조의 작업을 미술사적 유산으로서만 회자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의미로서 현재와 소통시켜야 하는 이유이자 근거가 될 것이다.” (유원준) 나는 이러한 기획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어쩌면 새로운 가능성은 무겁고, 진지하며 일견 낡아 보이는 것과의 소통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kunst67@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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