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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우리 시대의 모든 생각을 시작했던 루소
[역사 속의 인물] 우리 시대의 모든 생각을 시작했던 루소
  • 박홍규 영남대·교양학부
  • 승인 2010.06.28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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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는 근현대 사상에서 그 사회적 영향력이 가장 지대한 사람 중 하나다. 그가 다루지 않은 분야, 그가 영향을 끼치지 않은 분야는 거의 없다. 그는 우리 시대의 모든 생각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극단적 찬양도 있고 비판도 있다. 공동체주의의 선구자로 칭송되는가 하면, 테러리즘과 파시즘의 선구자로 비판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제한 없는 자유의 조건 속에서 다양한 자아실현을 제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보는 견해도 나왔다. 非산문적인 말과 非장식적인 음악, 사회성이 제거된 인간의 본성, 교사 없는 교육, 통치자 없는 국가, 교회 없는 신의 현존과 같은 다양한 퇴행을 통해 그러했다는 것이다.

루소가 음악가라는 점은 우리에게 낯설지만 그는 15세에 고향인 제네바를 떠나 여러 곳을 방랑하며 주로 귀족 집안의 음악 가정교사로 지내며 살았다. 그가 『백과사전』에 쓴 글도 음악에 대한 것이었고, 나중에는 오페라도 작곡했으며 『음악사전』도 썼다. 지금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그를 철학자, 교육학자 겸 음악가, 음악평론가라고 적고 있다. 물론 지금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루소가 38세에 쓴 최초의 저서인 『학문예술론』은 학문과 예술이 개인의 미덕과 정직, 인간관계의 신뢰와 진실, 정치적 자유를 가져오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불평등하고 절대주의적인 통치 속에서 복원된 학문과 예술은 인간을 억압하는 사슬에 화환을 던지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기에 교수들에게 반감을 살지 모른다. 이는 18세기 계몽사상의 낙천적 진보사관에도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것이자, 16세기 르네상스 이래의 전통을 부정한 것이어서 당시에도 반발이 컸다. 그러나 이 책으로 루소는 역사상 최초로 근대사회를 비판한 사람으로 불린다. 두 번째 책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루소는 인간의 정치사회적 불평등은 사적 소유를 축으로 하는 권위의 관계에 기인한다고 해, 죽고 난 뒤에 사회주의자들을 그 제자로 삼게 된다. 그러나 루소는 개인주의나 무정부주의 또는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재산의 공유제를 핵심으로 하는 사회주의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프로동은 루소를 자산가의 사상가, 프롤레타리아의 적이라고 비난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모든 곳에서 사슬에 매여 있다”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사회계약론』에서 루소는 국가통제주의와 집단주의를 주장했다. 그 책은 사실 그 사슬을 타파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도리어 그 사슬을 정당화하는 사회계약을 설명했다. 따라서 적어도 루소가 통치자 없는 국가를 주장했다는 것은 오류다. 루소는 개인이 자신의 권리는 물론 존재 자체를 국가에 양도함으로써 국가 내부의 평등을 확보하며 특권자는 소멸한다고 말한다. 그 유일한 지배자인 국가의 의지를 루소는 일반의지라고 하고 일반의지로서의 국가는 언제나 옳고 언제나 공적 이익을 추구하므로 잘못될 수가 없다고 한다. 루소는 일반의사가 정의의 기준이자 절대적 진리라고 하면서도, 왜 그런지, 누가 그렇게 판단하는지를 밝히지는 않는다. 결국 이는 국가가 그런 판단을 하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가졌다고 보는 전제에 선다. 따라서 국가의 강화와 비합리성을 강조하는 것에 불과하며, 이는 결과적으로 민족국가적 애국주의를 이상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루소가 그런 민족국가로부터 제국주의를 이상화했다고는 볼 수 없으나, 그가 동시대의 몽테스키외나 디드로처럼 식민지의 참상을 비판하고 인권을 주장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루소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그러나 그가 제기한 문제들은 여전히 우리 시대의 과제들이다. 가령 그는 교사 없는 교육을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지도와 자유 등의 교육의 근본문제를 제기한 것은 사실이다. 언어와 예술에 대해서도 전통적 시학과 수사학을 민중과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새롭게 고찰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루소는 고대로부터 18세기까지 사용된 전통적 개념으로 새로운 사상의 틀을 만들어 현대와 연결시켰다고 볼 수 있는 만큼, 그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역사적 과제다. 특히 ‘지금 여기 우리’의 입장에서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박홍규 영남대·교양학부

필자는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박사를 했다. 전공은 노동법이지만 여러 예술가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평전과 역서를 출간하고 있다. 저서로는 『메트로폴리탄 게릴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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