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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4> 막걸리] 괄시도 받았던 너, 한을 풀었도다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4> 막걸리] 괄시도 받았던 너, 한을 풀었도다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0.06.2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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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요새 막걸리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고 하지. 그럼, 그렇고말고, 우리 것이 좋은 것이지! 내거라고 괄시도 받았던 너, 恨을 풀었도다. 만방에 우뚝 선 우리 막걸리! 허나, 居安思危라, 잘 나갈 때 더 조심하는 법. 교만은 금물!

아마도 ‘술’이란 말은 ‘술술’ 잘 넘어간다고 붙은 이름일 터. 그런데 술은 밥이나 고기 같이 애써 씹을 필요가 없고, 내장에서 따로 힘들여 소화시킬 이유도 없다. 술은 포도당보다 훨씬 작은 분자로 잘려져서 세포에 스르르 스며들어 곧바로 열과 힘을 내니 세상에 이리 좋은 음식이 어디 있담! 누가 뭐래도 술은 마시는 음식이다.

옛날에 내 어릴 적에 우리 집에서도 자주 술을 담았다. 찹쌀이나 멥쌀을 시루에 찐 것이 지에밥이요, 하도 꼬들꼬들해 맨 손으로 주워 먹어도 쌀알이 손에 붙지 않는다. 그놈 얻어먹는 재미라니! 아니다, 엄마 몰래 슬쩍슬쩍 걷어다 먹었다. 고두밥이 식으면 누룩과 버물어 말끔히 소독한 술독에 넣고 아랫목에다 곱게 모시고는 담요나 홑이불로 둘둘 말아둔다. 한 이틀 지나면 독 안에 불이 붙는다. 작은 분화구가 여기저기 부글부글 끓어터지면서 뽀글뽀글 거품(이산화탄소)을 튀긴다. “난 데 없이 물에 불이 붙었다.”하여 술을 ‘수불’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마디로 술이 괴는 것이다. 얼마 지나면 술독이 식고 굄도 잠잠해지면서 술이 잦아드니 이제는 용수를 집어넣어 淸酒를 떠도 된다. 용수란 싸리나 대오리로 만든 둥글고 긴 통으로 술이나 장을 거르는 데 썼고, 엇비슷한 ‘용수갓’을 죄수의 얼굴을 가리느라 머리에 덮어씌웠다.

여기까지를 다시 본다. 고두밥은 다름 아닌 녹말덩어리다. 그리고 누룩에 들어있는 누룩곰팡이(Aspergillus oryzae)가 多糖類인 녹말을 二糖類인 맥아당(엿당)으로, 그것을 다시 분해해 아주 간단하고 바로 흡수되는 單糖類인 포도당으로 바꾼다(그래서 덜 된 술은 단맛을 냄). 술독의 녹말의 분해가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소화(가수분해)과정과 똑 같다. 누룩에는 누룩곰팡이 말고도 흔히 ‘술 약’이라 부르는 효모와 다른 세균들도 그득 들었다. ‘발효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효모는 누룩곰팡이가 분해해둔 포도당(C6H12O6)을 더 작은 물질(분자)인 술(에틸알코올, 에탄올, C2H5OH)로 자른다. 고맙기 그지없는 미생물, 당신들 덕에 술 맛을 보다니! 포도당은 탄소(C)가 6개인데 에탄올은 2개로 아주 간단해졌기에 마시기만 하면 지체 없이 힘이 솟는다. 절대로 술은 ‘도깨비 오줌’이 아니요, 酒神 바커스가 만들어준 甘露水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허기달래기에 좋고 반주로 한 잔하면 입맛을 돋우고 혈액순환을 돕는다. 술은 씹을 필요도 없고, 미생물들이 소화를 다 시켜놓은 지라 꿀꺽꿀꺽 마시기만 하면 술술 창자(일부는 胃)에서 흡수돼 포도당보다 더 빨리 힘을 낸다. 그런데 술도 칼날의 양면성을 지닌지라 마시면 더 마시고 싶고, 노상 그놈에게 멱살 잡혀 사는 주정뱅이가 되기도 한다. 술 그거 적당이 마실 수 없을까. 기분 좋다고 한잔 슬프다고 한잔, 그러다가 곤드레만드레 녹초가 되거나 벋나고 만다.

여기에 끈을 달면, 푹 익은 술에서 淸酒를 걸러내고 남은 건더기에 물을 부어 팍팍 치대고 꽉 짜 국물을 뽑아내니 그것이 ‘아무따나 막 거른’ 막걸리요, 이것을 소주고리에서 증류한 것이 소주다. 아~, 군침이 도누나! 제발 과음은 삼가시라. 그러나 그게 맘대로 안 되니 탈이로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초단지가 있었다. 정종 병에 막걸리를 부어넣고 뜨뜻한 부뚜막에 진득하게 오래 두면 술이 초산균에 의해 ‘초산발효(acetic acid fermentation)’하여 식초가 된다. 
사람이나 술이나 ‘발효’라는 농익음 끝에 맛있는 향기를 낸다! 고산 윤선도선생께서도 “술을 먹으려니와 德없으면 문란하고/춤을 추려니와 禮없으면 난잡하니/아마도 德禮를 지키면 만수무강하리라”고 하셨으니…….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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