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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류는 새 희망 가질 때”…비자본제적 시장경제 모색
“지금 인류는 새 희망 가질 때”…비자본제적 시장경제 모색
  • 권희철·최익현 기자
  • 승인 2002.05.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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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7 13:47:50
“서양 형이상학의 메커니즘에 대한 비서양인으로서의 자생적인 비평력을 탁월하게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사진) 긴키대 교수가 최근 교수신문이 기획한 특집 인터뷰 ‘세계 지성과 만나다’에서 ‘새로운 윤리적·경제적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의 필요성을 제기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관련기사 6∼7면>고진 교수는 박유하 세종대 교수(일문학)와 진행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특히 9·11사태 이후 강화되고 있는 미국 패권주의를 의식,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 형태로 존재하는 자본과 이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의미심장한 진단을 던졌다.

“내셔널리즘이 강해질 때 지식인들이 이 상황에 대해 계몽적인 발언을 할 필요는 있지만, 자신은 더 이상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면서 가라타니 고진 교수는 지식인의 오랜 계몽적 기획이 패배했다고 주장했다. 9·11과 같은 사건 하나만으로도 긴 세월에 걸친 계몽이 무화됐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네이션’을 초월했다고 말하기보다 지식인들은 네이션을 대체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목표를 가져야 하며, 이것이 고진 교수의 경우 ‘어소시에이션’, ‘시민통화’로 나타났다.

시민통화에 기초한 어소시에이션은 네이션이 상상적으로 충족시키고 현실에서는 국가에 의해 실행되는 일을 그 자신이 실현한다. 이러한 경제적 관계를 일국의 경계를 넘어 확장시켜내는 일이 바로 ‘국가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실제로 이러한 윤리적·경제적인 운동 형태로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을 제창, 일본내에서 주목받고 있다.

경제활동 축을 중심으로 한 일상적인 운동형태인 ‘NAM’은 단순히 소비·생산협동조합 같은 것을 추진하는 일뿐 아니라 지역교환거래체제라는 지역통화를 핵심으로 한 경제권을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고진 교수는 ‘시민통화’가 실현된다면, 칸트가 꿈꿨던 영구평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다.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에 바탕한 국제교역은 전쟁의 출구를 늘 열어 놓고 있지만, 이를 비자본주의적인 교역으로 바꾼다면 전쟁은 억제될 수 있다는 논리다. “직접적인 반전운동·평화운동만이 아니라,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어느샌가 비전쟁 효과가 나오는 식의, 일종의 ‘동양의학적’인 평화운동이 가능하다”는 것.

가라타니 고진의 이 야심찬 기획은 신인류의 출현을 비는 그의 소망과도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국가와 자본이 제 멋대로 행동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자본제적 시장경제’를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보았다. “국가도 자본도 필사적으로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지금, 그들을 분석하고 비판하면서 동시에 현재나 수년, 수십년 후의 전망이 아니라 수세기 앞을 향한 전망, ‘이념’을 갖는 일은 그래서 더욱 시급하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신문은 가라나티 고진 인터뷰에 이어 프레드릭 제임슨, 다너 해러웨이, 하버마스, 데리다 등 세계 지성과의 만남을 계속할 예정이다. 권희철·최익현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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