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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과 쟁점] 과학기술의 미래를 바라보는 서구지식인들 1)
[동향과 쟁점] 과학기술의 미래를 바라보는 서구지식인들 1)
  • 교수신문
  • 승인 2002.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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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2 10:16:34
‘인간복제’의 가능성을 두고 우려와 기대가 엇갈린다. 과학이 지닌 비윤리성을 지적하는 목소리와 인간의 자유를 확장시킬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그것. 이필렬 교수는 서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이모저모를 스케치한다. 한편 후쿠야마 교수는 최근 간행된 저작을 통해 생명공학에 대한 독특한 주장을 펴고 있다. 그 내용과 함께 후쿠야마 주장에 대한 몇 가지 반론들을 소개한다.

시간에 맡긴 신인류의 탄생

이필렬 / 한국방송통신대·과학사

복제양 돌리가 태어난 지 5년이 넘게 흘렀다. 돌리의 뒤를 이어 각종 체세포 복제동물이 차례차례 등장했다. 먼저 복제소가 탄생했고, 복제염소, 복제생쥐, 복제돼지가 그 뒤를 따랐다. 최근에는 복제고양이가 귀여운 모습을 드러냈고, 얼마 있으면 복제암탉이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복제에 실패한 동물도 꽤 많았다. 원숭이 체세포복제도 아직 성공하지 못했고, 복제인간도 태어났다는 소식이 없다. 이탈리아의 불임치료 전문의 세베리노 안티노리가 복제아기를 임신시켜 놓고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중이라는 소문이 들릴 뿐이다.

돌리가 태어났을 때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두려움에 떨게 만든 것은 복제인간의 등장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사실이었다. 아직까지는 복제인간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는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 그리고 철학자들의 논쟁 속에서 조금씩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인간의 수정란과 배아를 갖고 실험하는 동안 인간복제기술이 익어가고, 철학자들이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것이 옳은가 허용하는 것이 옳은가를 놓고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는 가운데 복제인간에 대한 소름끼치는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낮은 복제성공률의 비윤리성 지적

돌리의 탄생에 고무된, 튀기 좋아하는 과학자와 의사들 중에서 복제인간을 만들어내겠다고 공언하고 나서는 사람도 여럿 등장했다. 미국의 리처드 시드는 돌리 탄생이 발표된 바로 그해 말에 자기가 최초가 되겠다고 떠들었고, 안티노리는 2002년까지 복제인간을 선보이겠다고 장담했다. 얼마 전 8주짜리 복제아기가 자궁 속에서 자라고 있다고 발표했다고 하니,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약속을 지키게 되는 셈이다. 외계인이 인류를 창조했다고 믿는 라엘리언들도 복제가 상당히 진전되고 있다는 말을 계속해서 흘리고 있다.

복제인간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안티노리나 라엘리언들의 주장을 남의 이목을 끌기 좋아하는 괴상한 사람들의 수다 정도로 생각하고 흘려들을 수도 있다. 그냥 무시해버리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이들의 인간복제계획을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자들의 흰소리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것이 불임전문의나 복제연구자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기에는 복제기술이 이미 보편화됐고, 따라서 과대망상과 실제 사이의 경계도 분명하게 가를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인간복제의 위험을 가장 소리 높여 경고하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복제의 문을 처음으로 열어 젖힌 이언 윌머트이다. 그는 복제가 아직 성공률이 매우 낮은 기술이기 때문에, 이것을 인간에게 적용할 경우 인간 생명과 관련해서 많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인간복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 자신이 복제양 돌리를 만들어낼 때 거의 3백번의 실패를 거친 후에야 성공했고, 이렇게 낮은 성공률이 5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높아지지 않았으니, 햇빛도 못보고 죽어갈 배아나 태아에 대해서 염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많은 동물이 복제된 지금도 복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확률은 5% 정도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보고된 복제동물의 기형이나 질병은 수없이 많다. 태어난 지 6년도 안된 돌리는 벌써 관절염을 앓고 있다. 복제가 이렇게 위험한 기술이기 때문에, 복제기술자들은 안티노리에 대해서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이며 자기들 전체를 도매금에 비난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사람이라고 비판한다.

안티노리 등은 터놓고 인간복제를 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을 가능한 한 크게 자극하지 않고 조금 점잖게 접근하는 부류도 있다. 이들은 명성이나 자기 과시를 최고로 생각하는 복제추구자들과 달리 상업적인 이득을 목표로 한다. 대표적인 사람들은 미국의 ACT에서 일하는 복제시술사들이다. ACT에서는 지금까지 수십 마리의 복제소를 만들어냈고, 그후 최초로 인간배아를 복제했다고 공개해서 언론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회사이다. 이들은 인간복제는 위험하기 때문에 반대하며, 자신들이 수행한 배아복제는 줄기세포를 얻기 위한 것임을 강조한다. ACT의 연구자들은 여성들의 난세포에서 핵을 제거한 후 체세포를 주입해서 4세포나 6세포 단계의 배아를 만들었다. 지난 3월에는 한국의 마리아 불임클리닉 박세필 박사가 인간의 체세포를 소의 탈핵 난세포에 이식해서 세포수 2백개 가량의 배반포기 배아를 만들었고, 그보다 조금 전에 중국에서도 체세포를 인간의 탈핵 난세포에 직접 이식해서 배반포기 배아로 자라나게 한 일이 있었다. 이와 같이 세계 곳곳에서 이미 인간 난세포를 갖고 복제연습을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고, 이를 통해 인간복제기술도 서서히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복제가 현실성을 얻게 된 후 많은 사람들이 인간복제의 허용 여부를 놓고 좁은 철학적 논쟁을 벌였지만, 그러는 사이에 좀더 넓은 문명적 담론의 차원에서 인간복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실 인간복제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철학자나 윤리학자들은 대부분 미국의 윤리학자 필립 키처와 비슷한 입장을 취한다. 이들은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논거를 하나하나 분석해 논박함으로써 복제를 금지할 이유가 없다는 소극적인 접근을 한다. 그러나 문명담론의 차원에서 인간복제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들은 인간복제나 유전공학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접근을 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익은 인간을 플라톤의 이상적 인간이나 계몽주의자들의 휴머니스트 이상에 맞는 인간으로 개조하는 일이 실패로 돌아간 마당에 이러한 인간의 탄생을 위해서 유전공학과 생식공학의 힘을 빌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캘리포니아의 젊은 철학자 맥스 모어는 인간은 최대한의 자유를 추구해 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말하면서, 바로 이를 위해 현대 생명공학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자유는 질병과 죽음을 극복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유전공학과 생명공학이 이러한 자유의 쟁취를 위해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를 확대한다는 주장도 있어

복제기술이 점점 익어가고 복제담론조차 점차 확산돼가는 마당에 2002년 2월 복제고양이 씨씨(CC, copycat, carbon copy)가 등장했다. 복제고양이는 복제된 동물이라는 면에서는 돌리나 복제소, 복제돼지와 다른 특별한 점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들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돌리나 복제소는 모두 의약품생산이나 식량생산을 위한 것이었지만 씨씨는 상실의 아픔을 치유할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왜 애완동물을 복제하려 하겠는가. 사랑하던 애완동물을 다시 불러내어 슬픔을 치유하기 위해서이다. 씨씨와 앞으로 탄생할 많은 복제애완동물은 인간복제에 대한 께름칙함을 조금씩 벗겨낼 것이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어찌 애완동물이 죽었을 때의 슬픔에 비할 수 있으랴. 이들이 우리 아이가 다시 살아난다면, 새로 주어진다면 하는 생각을 하루라도 하지 않는 날이 있을까.

애완동물의 복제가 일상적인 일이 되면 복제인간이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자기 아이를 복제해서 돌아오게 하겠다는 사람들과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는 생식공학자들을 막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기술과 그것의 강력한 수요가 존재하는 한 그 기술의 적용을 금지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법으로 금지한다 해도 이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을 성사시키려 할 것이다. 인간복제가 법으로 금지되지 않은 저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로 갈 수도 있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어떤 나라의 법도 적용되지 않는 공해상에 배를 띄워서 복제아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복제양 돌리 탄생이 발표됐을 때 어떤 과학자는 7년 후에 복제인간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직 7년은 지나지 않았다. 복제인간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머잖아 복제아기가 나타날 것이다. 아마 전세계가 들끓을 것이고, 사람들은 또 한번 돌리가 태어났을 때 보였던 것과 같은 히스테리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래도 어찌하랴, 복제아기도 하나의 살아있는 인간인 것을. 사람으로 인정할 수밖에. 그러니 복제인간이 일단 등장하고 나면, 인간복제도 동물복제처럼 흔한 일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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