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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복수’의 문명청년 창조 … ‘동정’의 윤리로 민족 운명 동일화시켜
‘일인칭 복수’의 문명청년 창조 … ‘동정’의 윤리로 민족 운명 동일화시켜
  • 이경훈 연세대·국문학
  • 승인 2010.06.2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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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백년 논쟁의 사람들] <4> 이광수

‘근대 백년 논쟁의 사람들’ 네 번째 인물은 春園 이광수(1892.3.4~1950.10.25)다.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 『무정』(1917)을 쓴 문인이자 언론인, 사상가였던 그를 두고 박헌호 고려대 교수(국문학)는 “친일 문제만이 아니라 그의 삶의 궤적 자체가 한국 근대의 가장 문제적인 양태를 보여준다”고 제시했다. 이광수는 최남선, 홍명희와 함께 조선 3대 천재로 꼽히기도 했지만 대표적인 친일 인사로 현재까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이경훈 연세대 교수(국문학)와 최정운 서울대 교수(외교학)가 각각 이광수의 문학과 민족사상을 재조명했다. 이경훈 교수는 ‘동정’과 ‘감염’을 키워드로 그의 민족주의가 어떻게 왜곡돼 작품에 드러났는지 추적한다. 최정운 교수는 친일행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민족주의는 근대형성기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오늘날 이광수를 어떻게 독해할 것인가. 그 작업을 시작한다.

 

春園 이광수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했다. 몰락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1902년 고아가 됐다. 일진회의 추천으로 일본에 유학하며 회람지 <소년>을 발행하고 시와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10년 귀국해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917년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했다. 1919년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해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이후 <동아일보> 편집국장, <조선일보> 부사장 등을 거쳤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된 후 친일로 기울어 1939년 ‘조선문인협회’ 회장을 맡았다. 6.25 전쟁 때 납북,1950년 만포에서 병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제공: 노양환 춘원연구회 감사

‘문사’를 ‘의사’에 비유한 것은 이광수의 문학적 입장을 폭 넓게 상징한다. 춘원은 결핵균과 매독균을 ‘민족의 적’(「문사와 수양」)으로 규정하면서 ‘일본의 퇴폐기 문학’에 ‘감염’된 문사들을 비판한 바 있다. 그는 ‘自己’를 강조하는 김동인 류의 문학자들에게 인격 및 학식의 ‘수양’과 더불어 ‘자국의 역사와 제 민족의 국민성’에 대한 공부를 요구한다. 요컨대 민족과 계몽의 결합은 춘원 문학사상의 핵심이다. 민족은 계몽의 주체이자 대상이며 계몽은 민족의 이념이자 실천이다. 이 상호참조적인 폐쇄회로를 벗어나는 일은 질병에 걸림과 다름없다는 점에서 이 둘은 지극히 위생적인 짝이다.

李箱의 말을 빌리면 개인은 ‘세균 같이 사소한 고독’(「권태」)에 불과하다. 이광수는 ‘네요 내요, 金之요 李之요 할 수가 없이 오직 ‘우리’라는 일인칭복수를 써야 할 것’(「소년에게」)이라 가르친다. 그에게 민족은 ‘일인칭복수’로 동일화되는 학교며 병원이다. 따라서 교사와 학생으로 만난 형식과 선형이 결혼을 약속하게 되는 『무정』의 서사는 의미심장하다. 이들이 이룰 신식 가정 역시 ‘우리’를 위생적으로 복창하고 재생산하는 민족과 계몽의 일상적 장이 될 것이다.

同情, 사회개조의 출발


이때 흥미로운 사실은 민족을 ‘일인칭복수’로 규정하는 한, 거기에는 영문법이라는 타자가 매개된다는 점이다. “김치는 음식 중에 내셔널 스피리트(민족정신)”라고 한 『흙』의 서술이 ‘민족정신’의 舶來品的인 기원을 드러내듯이, 민족이라는 ‘우리’는 we의 번역어다. 한편 춘원은 결혼이 ‘남녀의 자의로 할 계약 행위’(「혼인론」)임을 설득하기 위해 ‘娶’와 ‘嫁’가 자식을 목적어 삼는 부모의 타동사가 아니라 자식이 ‘주격’으로 수행하는 자동사라고 주장한다. 영채의 정절에 대한 신우선과 이형식의 서로 다른 평가를 ‘한문식’과 ‘영문식’으로 대비시켰듯이, 이광수에게 영문법은 ‘사대’나 ‘삼종지도’ 등의 굴레에서 벗어난 민족을 상상하게 하는 근거다. 그렇다면 민족은 이미 영어에 ‘감염’돼 있다. ‘우리’는 결코 위생적이지 않다.

그런데 이 ‘감염’의 비위생을 초극해 그것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同情’이다. 춘원은 동정이 ‘人道의 기초’라고 하면서, ‘문명제국 인사는 동정이 풍부’한 반면 ‘야만 미개하거나 정신 정도의 저열한 민족은 이기되고 무정’(「동정」)하다고 논한다. ‘일인칭복수’는 ‘문명제국’의 문법이며, 따라서 이는 유교적 세계관과 규범에 결박된 ‘한문식’이나 도태를 초래하는 ‘야만’과 ‘퇴폐’처럼 배제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민족의 내적 관계를 문명과 진보에 순치시키는 ‘동정’의 윤리로 공감되고 동일화된다. ‘동정’은 ‘인류가 다른 만물을 향해 소리쳐 자랑할 極貴極重한 보물’로서 근대적 보편성을 보유한다는 점에서 자발적으로 감화돼야 할 고상함조차 지닌다. 이렇게 ‘일인칭복수’의 ‘감염’은 위생으로 복귀하며 ‘동정’으로 내면화된다. 이는 ‘사회를 개조하자면 먼저 다정한 사회를 만들어야’(「무정한 사회와 유정한 사회」) 한다고 한 안창호의 주장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근대국가를 이루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신분적 질곡 및 봉건적 관습에서도 완전히 해방되지 못한 식민지인들은 어떤 실천과 이야기를 통해 서로 ‘동정’하는 근대적 ‘일인칭복수’를 획득하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이광수의 문학은 시종일관 이 문제를 다루거니와, 『무정』은 그 소설적 성취의 한 가지 사례를 보여준다. 예컨대 여학생이나 기생이나 사람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이형식은 노파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영채를 ‘월향 씨’로 호칭한다. 또 그는 옛 친구에게 童妓 계향을 자기 ‘누이’로 소개한다. 그리고 이에 힘입어 계향은 형식을 ‘오빠’로 부른다. 신분 질서에 근본적인 충격을 가한다는 점에서 이 에피소드는 중요하다. 형식은 더 이상 계향의 ‘나리’가 아니란 사실에 ‘무한한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형식이가 세 누이를 데리고 가는 것 같다’는 서술의 의의를 암시한다. 가부장적 가문을 넘어서는 오누이들의 사회적 결합과 역사적 실천을 통해 형식, 선형, 영채, 병욱은 기존의 관계와 관습은 물론 개인적인 갈등에서도 탈피해 ‘민족’을 추동하고 선취하는 ‘일인칭복수’의 문명적 청년들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흙』에서도 수행된다. 현 의사는 하인들에게 아씨나 마님이라는 말을 금지하는 대신 ‘선생님’으로 지칭되고자 한다. 몸종 유월은 큰 죄나 범하는 것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상전으로 섬기는 정선을 아주머니로 부른다. ‘선생님’이 신분적 구분을 근대 사회와 계몽의 문맥 속에 재배치함으로써 차별을 극복하려 한다면, ‘아주머니’는 ‘오빠-누이’의 호칭과 함께 민족을 가족적 공동체로 구성하고 설득하기 시작한다. 이제 서로를 오빠, 누이, 형,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등으로 부르는 식민지인들은 지배와 예속의 관계를 말소하며 친근하게 연대할 것이다. 이는 ‘계급 타파, 지방 감정 타파’뿐만 아니라 ‘강건한 혈통’을 얻기 위해 ‘딸들을 모조리 시골 사람’과 결혼시킨 한은 선생의 ‘혼인정책’과 짝을 이룬다. 그리고 이러한 기획은 제국의 변호사 직업과 법률적 지식을 방기한 채 공동체를 위해 죄를 뒤집어쓰는 허숭의 마조히즘적이고도 저항적인 희생을 통해 경험적으로 ‘동정’되고 고양된다. 이 자기 말살적인 죄수의 계몽을 통해 살여울 농민들을 ‘딴 나라 사람’으로 느낄 뿐 아니라 남편인 허숭조차 ‘외국사람’ 같이 생각하던 서울 양반 정선은 윤 참판의 가문을 떠나 시골 ‘상놈’의 아내이자 몸종의 아주머니로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나라’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내선일체론과 동일화의 욕망


물론 문제는 이러한 동정론이 “민족주의는 그 인식과 동정의 범주를 이천 만으로부터 구천만으로 확대”(「내선일체와 국민문학」)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사실 자체보다도 더욱 문제는 ‘일인칭복수’와 ‘동정’을 강조하며 동일화의 욕망에 집착하는 한, 이런 논의가 전혀 성립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대동아공영’을 외치며 ‘꽃 한 송이를 보자면 벌레 백 마리를 죽여야 하오’(「육장기」)라 읊은 미적인 전쟁론이 결핵균과 매독균을 ‘민족의 적’으로 규정한 민족주의적 위생론과 모순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정’과 ‘감염’의 이항대립과 선택적 운용이야말로 죄수의 마조히즘을 병사의 사디즘으로 전환시켰다. 

그렇다면 필자는 춘원의 내선일체론을 거울삼아 현재의 입장에서 그의 민족주의에 대해 일반론적인 의견을 제출할 수도 있을 듯하다. 지적할 것은 춘원이 말하는 일인칭으로 동일화된 복수가 실상은 단수였다는 점이다. 그 ‘일인칭복수’는 ‘적’으로 배제될 삼인칭을 전제할 뿐, 대화의 상대인 여러 이인칭의 가능성을 봉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일인칭복수’는 외부의 삼인칭을 내부의 이인칭으로 전환하고 상호주체적인 차이의 관계를 활성화하고 복잡화할 때 이뤄진다. 이는 삼인칭으로 결박된 일인칭단수를 이인칭으로 풀어내며 ‘일인칭복수’를 지양할 것이다. 비유컨대 ‘우리’는 ‘동정’됨과 동시에 ‘감염’돼야 한다. 민족과 제국을 향해 동정을 ‘확대’하는 대신 이것들에 대해 ‘네요 내요’ 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치는 음식 중에 내셔널 스피리트(민족정신)”라는 이광수 자신의 규정은 여러 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경훈 연세대·국문학

필자는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논문으로는 「긴자의 추억- 식민지 문학과 시장」, 저서로는 『한국근대문학풍속사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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