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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학자의 길, 연구의 道
[원로칼럼] 학자의 길, 연구의 道
  • 교수신문
  • 승인 2002.05.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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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2 09:34:39
전일동 / 연세대 명예교수·물리학

40여년 동안 일본, 유럽, 미국과 한국에서 학문연구 생활을 한 경험을 토대로 최근의 국내학문 추세에 대해 몇 가지 느낀 것을 적어 본다.
하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에 나오는 많은 학자들은 다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오로지 학문에만 몰두하고 진리탐구와 우주만물의 근본원리 규명에 자기 일생을 바쳤다. 그러한 생활을 통해 불후의 업적을 남긴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많은 학자들은 보직이나 감투를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들은 처음에는 훌륭한 학자가 될 생각으로 학문의 길을 택했을 것인데 어느새 보직과 감투를 쓰는 것을 좋아하는 자로 타락하고 말았다. 이것은 고독하고 험한 학문의 길에 지쳐서 곁길로 빠진 경우도 있지만 우리사회의 病理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에서는 학문적 업적보다 행정직을 더 높이 평가하고, 그것에 대한 보상도 있다. 행정직의 경력이 연금에도 반영돼 있다. 행정직은 학문연구의 환경을 조성해주고 연구조건의 개선을 위해 일을 해줄 임무를 갖고 있으나 많은 경우 마치 자기가 지배자 혹은 절대 권력자 같은 착각에 빠져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 때의 과거제도를 통해 형성된 관료주의적 발상에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학자로 출발했다면 끝까지 학자로서의 긍지를 유지해야 한다. 행정직을 좋아한다면 그는 이미 학자가 아니요 행정가이다.
둘. 최근에 자연과학분야에서 우리나라 소장파들이 활발한 연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세계적 학술지에 많은 연구논문이 발표되고 있는 사실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서양학자들의 착안을 토대로 논문을 쓰는 것은 그렇게 높이 평가할 수 없다. 그러한 업적은 수명이 짧고 몇 년 지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한국에서는 학자는 독창적 업적을 창출했을 때 비로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창의적 연구를 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면서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후속 연구로 이어지지 않고 매장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며 초인간적 역학이 작용할 때 비로서 가능해지는 것 같다. 성공하지 못해도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으면 훌륭하다.
셋. 우리나라의 평가방법에 문제가 많은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나 시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학자들의 성격과 학연·지연에 얽힌 사회구조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주장이 강하고 자신을 앞세우기 때문에 남의 업적을 공평하게 평가 못하고 편견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가방법은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 있으나 모든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왜 이러한 무리한 평가를 하려할까. 연구에 시장원리를 적용하기 때문일까. 학문연구에 지나친 경쟁을 도입한다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한다.
원래 학문연구는 즐거운 것이다. 지금같이 연구가 고통스럽다면 청빈한 학자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미국에 기울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일까. 어떤 면에서 미국이상으로 상업주의에 빠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깊이 생각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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