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양성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프랑스의 철학서점을 찾아봤다. 소르본대 광장 한편에 위치한 철학전문서점 ‘브랭’(J. Vrin)은 자체적으로 철학서들을 출판하기도 하는데, 프랑스 내에서 브랭출판사의 책들은 높은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현대 프랑스철학의 출판 경향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브랭직원에게 간단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철학전문서점인 탓에 이곳의 직원들도 대부분 철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최근 들어 손님들이 많이 찾는 책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
“교수자격시험대비 교재들이다. 해당 시험과목들, 예컨대 플라톤, 라이프니츠, 러셀의 텍스트들 등은 따로 서가를 마련할 정도이다. 하지만 시험주제야 매년 변하는 것이니까, 내년에는 다른 주제의 철학서들이 진열될 것이다.”
△교수자격시험은 나 같은 외국인의 눈에는 매우 독특한 현상이다. 수험서 말고 요사이 특별히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거나 손님들이 찾는 책들은 없는가.
“솔직히 말하기 힘들다. 독자들의 관심이 워낙 다양해서 딱히 유행을 탄다고 말할 수 있는 책들은 없다.”
△한국에서는 푸코나 들뢰즈와 같은 현대철학자들을 통해서 프랑스철학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됐는데, 이들의 영향력이나 독자들의 관심은 어떤지 알고 싶다.
“동양인들이 서점에서 방금 언급한 사람들의 책을 조사하거나 구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일반 독자들에게 나타나는 광범위한 모습이라고 보긴 어렵다. 푸코나 들뢰즈의 책들은 늘 꾸준히 나간다. ‘마가진 리테레르’ 2월호에는 ‘들뢰즈 효과’(L’effet Deleuze)라는 특집이 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의 책을 사가는 사람들이 다 프랑스철학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아마추어철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위해 읽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수용된다고 볼 수도 있다.”
△ 철학에 특별한 유행이 없다고 한다면, 다양한 분야에 걸쳐 골고루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말일텐데, 결국 몇몇 철학자들이 프랑스철학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는 셈이겠군.
“글쎄,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 외국인들이 보기에 푸코나 들뢰즈 등은 프랑스를 대표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독자들은 철학사를 비롯한 다른 나라 철학서들도 마찬가지로 꾸준하게 찾는다. 굳이 우열을 가린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무의미하다. 예컨대, 요 몇 년 사이에 중세철학사가인 알랭 데 리베라의 책들이 대중들에게 많이 읽히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 그는 중세철학전문가일테지만, 또 다른 이들이 보기에 그는 프랑스철학자이기도한 셈이다.”
이른바 ‘프랑스철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범위가 훨씬 넓고 그것을 수용하는 층도 몹시 두텁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아마도 인문학적 소양을 중시 여기는 분위기가 사회 저변에 견고하게 퍼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와 더불어 고등학교부터 철학교육을 실시하는 등 인문학을 보호하고 육성하려는 교육정책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고 볼 수도 있다.
김유석 / 프랑스통신원·파리 1대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