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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학술지 평가, 학술지 평준화 작업에 불과 ...‘영광의 탈출’ 뒤에도 씁쓸함 남아
등재학술지 평가, 학술지 평준화 작업에 불과 ...‘영광의 탈출’ 뒤에도 씁쓸함 남아
  • 지나온 16년 학회 생활을 돌아보며
  • 승인 2010.06.1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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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16년 학회 생활을 돌아보며

무일푼으로 학회를 시작해서 직원과 대학원생도 없이 우표에 풀을 바르던 일도 어느덧 16년. 너무 욕심이 과도한 탓인지도 모르겠군요. 그 동안 저의 연구실이 곧 학회 사무실이었고 아침 9시부터 자정까지 저널지 발간과 학회업무일이 16년간 계속된 것이 저의 인생의 일부가 됐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서울 가기가 어려운 형편이었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어떤 분들에게 “인생이 그렇게 긴 것도 아닌데” 라고 충고를 들은 적도 많았습니다. 앞으로 계속하기가 불가능 할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학회일에 경제적 부담이 크고 어떠한 탈출구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강의실, 연구실에서 또는 아산의 탕정면 도로상에서 동료교수, 학생 및 택시기사의 도움을 받아 순천향대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몇 차례. 이제는 이런 어려웠던 순간들도 잊지 못 할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초창기 전화기에 매달려 논문투고를 호소하면서 좌절감을 느꼈던 것도 지금은 세월 속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한 진통으로 생각합니다.

2001년 학술진흥재단의 저널지 평가 작업은 구멍가게 학회로서는 가장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JAMI>(Journal of Applied Mathematics and Informatics)는 국내저널지 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학진 등재지가 됐지만 지금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등재학술지 평가는 학술지 평준화 작업으로 생각되기 때문이죠. 또한 몇 개의 학술지를 제외하고는 등재학술지의 위상을 대체 어느 해외기관에서 인정해주는지 알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해외에서 인정받는 국내저널지가 연구재단에 등재되지 않으면 교수업적평가에서도 제외되거나 최하위 등급으로 분류되는 실정입니다. 어떤 분들은 ‘동네 정보지’도 등재학술지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더군요.

2005년 5번째로 학진 국제학술지에 국제판 <JAMC> 보조금을 신청했습니다. 제가 정년퇴임하는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발표심사에서 호소했습니다. 2006년 2월에 정년퇴임을 하는데 이번이 마지막 신청이라고 말입니다. 결과는 역시 탈락. 또 다시 마음속 깊은 좌절감을 억제하며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생각했습니다.

2006년은 저널지 발간 및 학회운영에 있어 운명의 해였습니다. 2002년 SCOPUS에 등재된 입장에서 2007년 ‘영광의 탈출’을 위한 도전이 시작됐습니다. 막다른 골목에서는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의 풍토를 떠나고자 결심했습니다. 세계 랭킹 1, 2위를 다투는 Springer(독일)와 Elsevier(네델란드)에 접촉했습니다. Springer로부터 8개월간의 국제판 <JAMC>를 심사한 결과를 2007년 10월에 통보 받았습니다. Springer에서 모든 비용을 부담해 <JAMC> 발간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말 영광의 탈출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한국 수학계의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국내보다 해외 즉 미국에 있는 지인들로부터 많은 축하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굳이 국제판 <JAMC>에 대한 학진평가와 Springer의 평가를 비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주류 언론사가 비용 전액을 부담하면서 ‘동네정보지’ 발간을 지원하는 경우가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국제학술지 보조금에서 탈락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습니다. 학진으로부터 국제학술지 보조금을 받았다면 세계무대로 날지도 못한 채 초라한 동네저널지로 머물고 말았을 것입니다. 저널지를 발간하는 학술단체의 입장에서 보면 학진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을 준수했다가는 저널지의 특성은 사라지고 맙니다. 좋은 논문 하나를 유치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것이 구멍가게 형식으로 운영되는 학술단체의 치명적이고 처절한 현실입니다.

구멍가게 학회가 푸른창공을 날 수 있는 자유의 보장이 필요합니다. 연구재단의 저널지 보조금이 중소학회에서는 생명줄이지만, 대형 학회에서는 임원들의 하루저녁 식사 값으로 지불되는 것을 보고서 말문이 막히고 눈앞이 캄캄하더군요. 그래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학술지를 발간하고 있다면 충분히 이해 할 수 있겠습니다만 대기업 학회라고 왜 많은 보조금을 지급받는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국제판 <JAMC>가 Springer에서 발간되면서 가장 기쁜 것은 발간비용뿐 아니라 아무런 규제 없이 자유롭게 세계무대로 날수 있다는 것과 오래도록 살아서 숨 쉴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 10대 경제대국 한국에서 보조대상에서 탈락돼 ‘영광의 탈출’을 감행하는 경우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이 글은 <JAMC>에 실린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재수록한 글입니다.

박진홍 <JAMC> 편집장

필자는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논문으로는 「A note on free automata」, 저서로는 『그래프이론과 알고리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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