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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원리포트] 독일 : 1미터도 전진하지 못한 히틀러의 유령 ‘신나치’
[해외통신원리포트] 독일 : 1미터도 전진하지 못한 히틀러의 유령 ‘신나치’
  • 강진숙 / 독일통신원
  • 승인 2002.05.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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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1 20:08:50
강진숙 / 독일통신원·라이프치히대 박사과정

독일의 라이프치히에 다시 히틀러의 유령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1939년 2차세계대전 발발의 주범인 히틀러가 무고한 유대인들을 인종청소라는 명분으로 집단 독살하고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면, 4월 6일 현재 라이프치히의 중앙역으로 삼삼오오 기차타고 모여든 전국의 히틀러 유령들은 채 1미터도 시위 행진을 하지 못한 채 귀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패자의 귀향’을 선사했던 ‘보이지 않는 손’은 무엇이었을까.

시민의 힘으로 행진 저지

유난히 쌀쌀한 토요일 오전, 중앙역 앞을 시작으로 시 중심가 전역에는 4천명의 초록색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삼엄한 감시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얼마 후 전차조차 다니지 않고, 중앙역을 오가며 기차를 타거나 쇼핑하던 일반 시민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정적 그 자체였다. 이윽고 중앙역 동쪽 출구로부터 전국에서 온 긴 대열의 유령들, 전형적인 민머리에 봄버점퍼 차림까지 한 극성 멤버들도 합류해서 서서히 몰려 나왔다. 하지만 1천명의 네오나치들은 경찰당국의 강력한 조사에 몸과 가방, 지갑까지 다 열어보일 수밖에 없었다. 45세의 우익 유령 대표인 보르시는 장시간 이루어진 몸수색과정이 “의도적인 악의적 지연”이라고 반발했지만, 12시부터 저녁 7시까지 예정된 기념탑까지의 행진을 포기할 수는 없었던 듯 경찰 지휘자인 토마스 산더스의 명령에 따랐다.
급기야 그들은 대열을 4백명으로 축소시키고 행진을 감행하려 했지만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경찰력의 삼엄한 배치와 감시도 한몫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줌의 귀신을 쫓기 위해 1만여명의 라이프치히 시민들이 동지팥죽 같은 색색의 종이조각을 흩뿌리며 강력히 대치, 항의집회와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독일의 자존심을 세운 그들의 슬로건은 니콜라이교회 입구에 붙인 플래카드에서 적절히 표현됐다. “오늘 라이프치히가 웃는다: 독일에서 내일 그 웃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실제로 오전 11시 교회 안에서는 목사의 주도 아래 2천여명이 평화기도회를 개최하며 네오나치의 행진을 비웃으며 ‘동시다발적인 폭소’를 유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유령들은 왜 전국적으로 비싼 기찻값을 내면서까지 이곳 라이프치히로 모여들었을까. 그들의 대답은 간단하다. 실패의 만회.

그들은 이미 2001년 9월 1일에 기념탑까지의 행진을 꾀했었다. 하지만, 구호금지명령으로 집회는 해산돼 실패로 끝났고, 다시 같은 해 11월 3일 반나치 시위자들에 의해 원천봉쇄 당해 두 번째 시도 역시 성공할 수 없었다. 세 번째 행진의 시도는 바로 ‘기념탑까지의 행진은 성공할 것’이라고 했던 스스로의 예언을 입증하기 위한 데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대장 보르시는 “이 행진을 기필코 성사시킬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때문에 그는 이미 6월과 10월중에 다섯 차례의 시위를 신고해 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를 아주 소박한 ‘목표의식’의 관철로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이 행진이 네오나치의 ‘민족사회주의’의 승리와 외국인 혐오증을 정당화하는 상징성을 저변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외국인들에 대한 혐오증은 이념을 넘어서서 이미 범죄화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가령 이라크 혈족이라는 이유만으로 17세 소년을 익사시키거나 길을 지나는 외국인에 대해 집단적으로 폭력을 휘둘러 댐으로써 히틀러의 망령을 부활시키는, 독일인의 사회적 수치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의 배경으로 제기될 수 있는 다양성이 떨어지는 청소년 문화와 교육제도의 허점, 우익급진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위험성, 그리고 실업률의 증가는 독일의 사회적 부채이기도 하다.

이념을 넘어선 범죄화 우려

결국 오후 7시 이후, 시민들의 강력한 대치와 ‘라이프치히의 웃음’을 돌출시켰던 항의시위로 인해 그 우익들은 라이프치히를 떠났다. 1미터도 전진하지 못하고 실패한 세 번째 행진이 다시 제 4, 제 5의 유령들을 이곳으로 호명하겠지만, 밤 10시까지 지속된 다문화의 열망들은 음악과 노래 속에서 2002년의 따뜻한 봄을 예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네오나치들이 행진을 준비하는 한 독일의 봄하늘은 그리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히틀러의 망령이 계속해서 독일 청년들의 젊음과 영혼을 잠식해 들어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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