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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성에 대한 복합적 성찰 없이는 근대성 극복 어렵다”
“식민성에 대한 복합적 성찰 없이는 근대성 극복 어렵다”
  • 우석균 서울대·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
  • 승인 2010.06.0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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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미뇰로 듀크대 교수, 탈식민적 세계시민주의를 말하다

사진제공 =서울대 라틴아메리카 연구소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기호학, 문화연구, 인류학, 사상 등 여러 분야를 가로지르는 행보를 걸어왔으며, 근대성, 식민성의 극복을 목표로 하는 탈식민주의 그룹의 좌장 역할을 하고 있는 월터 미뇰로 듀크대 교수(사진)가 방한해 지난달 27일과 31일 서울과 부산에서 두 차례 강연을 했다. 각각 ‘인식적 불복종과 탈식민적 선택―선언문’, ‘세계시민주의적 로컬리즘: 칸트주의자 유산의 탈식민적 전환’이라는 제목의 강연이었다. 미뇰로가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의 석학 강좌 시리즈인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라틴아메리카 석학에게 듣는다’의 초청 대상자로 선정될 만큼 저명한 학자라고는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연구자가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의 눈에 띄어 공동초청이 성사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과거에 비해 지역 간 교류가 놀랄 만큼 증진됐는데도 불구하고 지식의 지정학적 속성은 오히려 더욱 강화돼 ‘중심’이 아닌 ‘주변’의 연구가 국내 학계에 통용되거나 개입할 여지는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근대성과 식민성은 동전의 양면


‘탈식민’은 수많은 ‘포스트-’ 이론을 비판하는 용어이자 개념이다. 미뇰로가 ‘포스트-’ 이론에 비판적인 이유는 문제설정 자체가 여전히 서구 중심적이라는 치명적 오류를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포스트-’ 이론이 근대의 극복을 주장하고 있지만, 탈식민주의 기획 그룹이 보기에 이들의 이론은 식민주의나 제국주의 혹은 식민성의 문제를 근대성의 성숙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야기된 폐해 정도로 여긴다. 즉 근대의 극복이 이뤄지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쯤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탈식민주의 기획의 문제설정은 다르다. 페루 사회학자 아니발 키하노를 기원으로 하는 이 기획은 근대성과 식민성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문제설정을 하고 있다. 16세기 아메리카의 ‘발견’과 정복으로 근대와 식민 세계체제가 탄생했고, 기독교 복음화, 문명화, 근대화, 세계화의 수사학을 통해 이 체제가 지속되고 있으니 식민성 극복의 성찰 없이, 또한 근대성과 식민성에 대한 복합적 성찰 없이 근대성의 극복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본다.


‘인식적 불복종과 탈식민적 선택―선언문’ 강연에서 미뇰로가 탈식민적 사유·이탈ㆍ선택ㆍ전환 등의 개념을 동원해 식민성 극복을 위한 성찰의 계보학을 제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 계보는 펠리페 와망 포마 데 아얄라, 오토바 쿠고아노, 프란츠 파농 등으로 이어진다. 와망 포마는 17세기 초 원주민 연대기 작가고, 쿠고아노는 18세기 말 해방된 흑인노예로 각각 안데스와 영국에서 식민지배와 노예제도를 비판하는 저술을 남겼다.

 

그것은 서구 근대의 잔혹한 행보에서 발생한 식민적 상처 없이는 불가능했을 사유이고, 따라서 근대성과 식민성이라는 동전의 양면을 다 포괄하는 사유이다. 그래서 미뇰로는 이를 진정한 탈식민적 사유라고 보고 있으며, 근대의 극복이라는 동전의 한 면만 성찰한 푸코, 사이드, 들뢰즈 등의 계보보다 더욱 값진 사유일 뿐만 아니라, 근대와 식민 세계체제의 극복을 가능하게 해줄 유일한 인식론적 계보라고 규정한다.


미뇰로를 비롯한 탈식민주의 연구 그룹은 16세기에 근대와 식민 세계체제가 오늘날의 세계화 국면에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세계화’는 너무 익숙한 말이지만, 사실 이에 대한 정의는 아직도 논란거리이다. 세계화의 실체를 밝히려는 시도가 저지르는 잘못 중 하나는 세계화를 한 가지 형태로만 인식함으로써 헤게모니적 세계화와 대항-헤게모니적 세계화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다. 하나의 세계화만을 인정하게 되면 세계화에 대한 저항은 폐쇄적이고 고립된 지방화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화는 단일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체제의 구조적 다양성과 연관돼 있다. 따라서 세계화는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로 존재하고, 세계화들은 사회적·지역적 관계들로 이뤄지며, 이러한 관계들은 승리자와 패배자의 갈등을 내포한다. 따라서 오늘날 인구에 회자되는 세계화는 하나의 지역이 전 지구적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다른 지역들을 지방화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서구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조건 속에서 순수하고 객관적인 세계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세계화라고 부르는 것은 헤게모니를 잡은 ‘승리한 지방주의’와 ‘패배한 지방주의’의 역학 관계를 포괄한다. 승리한 지방주의가 세계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패배한 지방주의들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세계화인 셈이다. 세계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대안을 제시하기 옹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경우 대안은 승리한 지방주의가 되거나 적어도 승리한 지방주의에 편승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일 뿐이기 때문이다. 세계화에 대한 대안은 승리한 지방주의냐 패배한 지방주의냐가 아니라 또 다른 세계화다. 또 다른 세계화란 대항-헤게모니적 세계화로서의 세계시민주의다. 21세기 벽두에 등장한 세계사회포럼(WSF)이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슬로건을 내거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대화와 실천, 그리고 서구이론 넘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뇰로에게 궁금한 것은 과연 그의 이론이, 혹은 그의 이론의 현실적 토대가 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들이 우리나라에 무슨 시사점을 주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미뇰로는 대답했다. 자신은 자신의 사유를 전파하러 온 것이 아니라 대화와 소통을 위해서 한국에 왔고, 세계 모든 지역의 역사들이 상혼 존중하고 교류, 연대하는 실천이 필요하지,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이번 방한을 계기로 미뇰로의 『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그린비, 김은중 옮김)이 출간됐고, 내년에는 『지역의 역사/전 지구적 구상: 식민성, 서벌턴적 지식 그리고 경계적 사유』가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배움이 아니라 대화, 그리고 나아가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미뇰로의 인식이, 서구 이론 혹은 서구에서 발화된 이론이 아니면 통용되기 힘든 우리 학계의 현실을 넘어서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사실상 김은중(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류지석(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과 공동집필한 글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우석균 서울대·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

필자는 스페인 마드리드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논문으로는 「라틴아메리카의 하위주체와 문화적 권리」, 저서로는 『잉카 in 안데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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