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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절판의 사회학 - 사라진 책을 구하는 방법
[기획특집] 절판의 사회학 - 사라진 책을 구하는 방법
  • 교수신문
  • 승인 2002.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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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뒤지기에서 웹서핑까지 … 책의 부활 꿈꾸는 순례
최성일 / 출판평론가

헤지고 찢어져 못 쓰게 된 화폐는 구멍을 뚫은 다음 폐기한다. 책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폐지 처리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이 때의 책은 이미 그 가치를 상실한 종이 뭉텅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출판사가 나서서 그런 식으로 책을 처분하진 않는다. 책의 마구리(책등의 반대편 및 위, 아래)에 붉은 페인트칠을 해서 종이 값에 처분하는 것이 출판사의 가장 무지비한 재고처리 방식이다. 아무튼 절판된 책이라도 이 세상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게 마련이다. 여기서는 절판된 책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아울러 절판도서에 대한 정보원도 살펴보기로 하자.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도 곁들여 보겠다.

책등의 반대편 및 위, 아래에
붉은 페인트칠을 해서 종이 값에 처분하는 것이
출판사의 가장 무자비한 재고처리 방식이다. 아무튼
절판된 책이라도 이 세상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게 마련이다.

헌책방은 절판된 책을 가장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필자는 인천 부평구에 거주한다. 1990년대 초반 부평시장 목 좋은 위치에 있는 부평종합서점을 자주 이용했다. 온갖 잡다한 책들을 그러모았는데 거기에 ‘한길사상신서’ 이십여 권이 포함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뿌듯한 일이다. 결혼과 함께 분가해 5년 남짓 인천 남동구에 살다가 부평구로 다시 이사를 왔다. 그 사이 내가 애용하던 서점도 많이 변했다.

낡은 서고에서 만나는 발견의 기쁨

낡은 건물을 고쳐 내부가 반듯해지고 곱절 넘게 넓어졌다. 책방의 성격도 크게 바뀌었다. 헌책과 새책 할인판매를 겸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건만 단행본 헌책이 많았던 예전에는 그래도 헌책방의 분위기가 짙었다. 요즘은 새책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그 중에서도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습 참고서의 비중이 높다. 새책 단행본의 할인폭이 90년대 초반 10퍼센트에서 지금은 15퍼센트로 커진 것도 다른 점이다. 하여간 나는 절판된 ‘한길사상신서’를 이삭줍기하던 시절이 그립다.

요즘은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 두 곳을 자주 찾는다. 신촌 근처에 가면 일부러 라도 홍대앞의 온고당 서점과 노고산동에 자리한 숨어있는책에 들른다. 두 서점은 책값이 저렴하면서도 내 취향에 맞는 책들이 많다. 나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나온 책들을 선호한다. 분야는 인문·사회과학과 교양 과학류, 그리고 책에 관한 책을 들 수 있다.

헌책방을 드나들며 깨달은 점이 하나 있는데, 내가 원하는 책을 헌책방에서 반드시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 5일 식목일에는 E.H. 카의 ‘도스토예프스키’(홍성사 刊)를 온고당 서점에서 구했다. 내가 산 책은 ‘홍성신서’ 중에서 베스트북을 세트로 만든 양장본이다. 또 온고당에서는 초창기 ‘녹색평론’을 십여 권 구입하는 횡재를 하기도 했다.

숨어있는 책 중에서 찾은 인상적인 책들로는 ‘민중미술’(공동체 刊), 루카치의 ‘변혁기 러시아의 리얼리즘 문학’(동녘 刊), ‘엔테베 특공구출작전’(열화당 刊) 등이 있다. 앞의 두 권은 10년 가까이 애타게 찾던 책들이다. 표현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다른 동호인에 비하면 책에 대한 애착이 약한 편이다. 개인 서재 혹은 도서관 이외의 장소에서는 영영 못 만날 줄 생각했던 터라, 무척 반가웠을 따름이다. ‘엔테베 특공구출작전’은 중학교 때 빌려서 흠뻑 빠져 읽은 책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보는 시각이 그 때와는 정반대로 바뀌었지만 추억이 담긴 책 ─ 물론 내가 읽은 그 책은 아니지만 ─ 이라 반가움이 앞서 덥석 집어들었다.

인터넷 웹사이트는 절판된 책의 정보를 제공하면서 구매를 돕기도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인터넷 서점인 북새통(www.booksetong. com)에는 ‘희귀·절판·전문도서’ 사이트가 있다. 홈페이지 오른쪽 아래 클릭 버튼이 달려 있는 이 사이트는 게시판 형식이다. 이용자가 구하고자 하는 책의 서지사항을 입력하면 관리자가 가맹서점의 재고조회를 거쳐 그 결과를 알려 준다.
예스24(www.yes24.com)의 웹진 북키앙(bookian)에 있는 고정꼭지 ‘올디스 벗 구디스’에서도 절판된 책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최근 이 꼭지를 통해 소개된 책 중에는 밀란 쿤데라의 ‘이별’(하문사 刊), 슈테판 츠바이크의 ‘폭력에 대항한 양심’(자작나무 刊), 데스먼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정신세계사 刊) 등이 그렇다. ‘털없는 원숭이’는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새 판이 있다.

인문사회과학전문서점 논장 사이트(www.nonjang.co.kr)의 ‘검색되지 않는 도서주문’ 게시판은 절판된 사회과학 도서를 구해 달라는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책을 찾기 위해 맨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이 여기인 듯하다”고 말하는 논장지기 이재필 씨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이나 ‘레닌저작집’을 수소문해 구입가능한지 여부를 일러준다.

빨간구두(www.redshoes21.com)는 외국의 중고서적을 전문으로 하는 온라인 서점이다. 웹사이트의 회사소개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빨간구두는 2001년 6월 設立한 온라인 書店으로 미국, 영국, 스웨덴, 독일, 프랑스등 전세계 8천 4백개에 이르는 古書店에서 在庫로 보유하고 있는 2천 8백만권을 데이터베이스化했고 이 데이터베이스는 專門書籍에서 學術書, 아트, 心理, 社會分野등 각 분야의 圖書가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으며 이제까지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웠던 稀貴本과 絶版本등의 在庫데이타가 풍부한 것이 특징입니다.” 책값이 비싼 것이 약간 걸리지만 전문 연구자에게는 많은 보탬이 될 듯 싶다. 책 주문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으로도 가능하다(02-2278-0062).

그밖에 인터파크(www.interpark.com)의 ‘추억의 명저’나 리브로(www.libro.co.kr)의 ‘숨어 있는 책’ 역시 절판 또는 품절 상태에 있는 책을 염두에 두고 있으나, 앞서 소개한 것들에 비해서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추억의 명저’는 기본 콘텐츠로 흡수된 듯하고, ‘숨어 있는 책’은 절판도서를 소개한다기보다는 각광을 못 받은 책에 대한 되새김의 측면이 짙다. 그나마도 목록이 풍족하지 않다.

도서관은 절판된 책을 모조리 갖추고 있어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납본도서로 서가를 채우는 국립도서관에는 1980년대 출간된 사회과학도서 가운데 없는 것이 적지 않다. 한때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납본 거부 운동을 한 영향이다. 그래도 절판된 책을 항구적으로 접할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다. 인천 중앙도서관에서 레오 휴버먼의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동녘 刊)를 대면하고 갖게 된 생각이다.

제 구실 못하는 도서관

출판매체들도 절판된 책에 관심이 많다. ‘출판저널’의 ‘다시 읽고 싶은 책’ 꼭지와 ‘문화일보’의 ‘숨어 있는 책’에는 표제가 시사하듯이, 절판된 책이 다수 포함된다. ‘출판저널’ 전·현직 기자가 번갈아 쓰는 ‘다시 읽고 싶은 책’에 소개된 절판도서 가운데 ‘코스모스’는 올해 안에 사이언스북스를 통해 다시 나올 예정이다.

‘문화일보’ 북리뷰는 ‘숨어 있는 책’ 연재를 시작하면서 의욕을 과시(?)했지만 솔직히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섰다. 숨은 책을 찾아내는 일이 생각 외로 쉽지 않아서다. 숨은 책에 관한 소개가 열 번이나 이어졌을까. 어느날 연재가 슬그머니 끝났다. 아무튼 연재 첫 회는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사민서각 刊)을 다룬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책은 좀 엉뚱한 장소에서 구입했다.

전철역 상설할인판매장이 바로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을 산 곳이다. 서울 신길역 환승로에 있는 상설판매장에서다. 이곳 말고도 2호선을 타는 경우, 1호선 신도림역 플랫폼에 있는 상설판매장을 경유한다. 전철역 상설판매장에서도 ‘물건’이 더러 발견되기는 하지만 살까 말까 망설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사기로 마음먹고 다음에 가서 보면 그 책은 이미 누군가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두 번이나 그랬다. 플랫폼과 환승장의 할인판매장의 경기가 꽤 쏠쏠한 듯하다. 얼마 전까지 2천원이던 책값이 평균 3천원으로 올랐다.

영인본, 책의 ‘검은’ 회귀

대형서점에도 절판된 책이 이따금 출몰하곤 한다. 1997년 봄, 영풍문고에서 입수한 그람시의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될까’(공동체 刊)는 책꽂이 틈새에서 찾아냈고, 지난 4월 2일 교보문고에서 러셀의 ‘수리철학의 기초’(연세대출판부 刊)를 구입했다. 러셀의 책은 최근 다시 번역되기도 했다. ‘수리철학의 기초’(경문사 刊).
지방, 서울 변두리 중·대형서점의 서가에는 온라인 서점의 콘텐츠에 ‘품절’·‘절판’ 표시가 돼 있는 책들이 버젓이 꽂혀 있다. 위탁판매제에 따른 현상인데 미처 출판사로 복귀하지 못한 책들이 서점의 책꽂이를 거처로 삼고 있는 것이다. 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황금가지 刊)와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두레 刊)가 그런 책들이다. 이 책들은 좀 연륜이 있는 중·대형서점에서 상면할 가능성이 높다. 불미스런 일로 절판된 책도 만날 수 있다. 인천 주안에 있는 서점 두 곳에서 올 초에 ‘책세상문고’들 사이에 있는 ‘나, 아바타 그리고 가상세계’를 목격했다. 한 권은 팔렸지만 다른 한 권은 여전히 남아 있을 지도 모른다.

영인본은 절판된 책의 부활이다. 그래설까, 영인본의 표지가 일반적으로 검은 것이. 영인본의 표지가 검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단지 내 뇌리에 각인된 인상이 그럴 뿐. 영인본 ‘창작과비평’은 잡지가 폐간된 동안에도 그 존재를 과시했고, 마침내 잡지는 복간됐다. ‘창작과비평’ 디지털 영인본도 출현했지만 나는 평범한 종이를 본문용지로 사용한 까만색 표지의 영인본이 더 좋다.

요즘 책도 곧잘 절판되곤 한다. 갈수록 책의 사이클이 짧아지는 탓이다. 강준만 교수의 ‘이문열과 김용옥’에 언급된 ‘이긴 자가 전부 가지는 사회’(CM비즈니스 刊)는 1997년 1월에 나왔지만 오래지 않아 절판된 걸로 보인다. 나는 용케 소장하고 있는데 좋은 내용의 책이다. 번역을 가다듬어 새로 펴냈으면 한다.

주요 인터넷 사이트 목록
논장 - http://www.nonjang.co.kr
리브로(숨어있는 책) - http://www.libro.co.kr
북새통(희귀·절판·전문도서)- http://www.booksetong.com/service/index.asp
빨간구두 - http://www.redshoes21.com
예스24(웹진 북키앙)- http://www.yes24.com/bookian
인터파크(북매거진)- http://www.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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