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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고전]<28> 조혜정의 한국의 여성과 남성』(1988)
[우리시대의 고전]<28> 조혜정의 한국의 여성과 남성』(1988)
  • 정유성 / 서강대
  • 승인 2002.05.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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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1 19:24:43
조혜정(趙惠貞)
(1948∼)
1948년 10월 25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1971년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에 미국 미주리대에서 인류학 석사를 거쳐 1979년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문화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현재까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사논문은 제주 잠수사회에 관한 문화기술지적 연구로,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근대성과 가부장제에 관한 연구를 계속해 오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한국의 여성과 남성』(1988),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 1: 바로 여기 교실에서』(1992),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 2: 각자 선 자리에서』(1994),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 3: 하노이에서 신촌까지』(1994),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1996), 『성찰적 근대성과 페미니즘: 한국의 여성과 남성 2』(1998),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2000) 등이 있다.




 
정유성 / 서강대·교육학

조혜정 교수의 ‘한국의 여성과 남성’(문학과지성사 刊)은 출간된 지 어느새 15년이 지난 책이다. 하지만 지금 읽어봐도 새록새록 새로운, 그야말로 현대의 고전이다. 책 뿐 아니라 책을 쓴 조혜정 교수 스스로가 그 동안 한국 사회 성평등 담론의 선구자요, 개척자요, 대표자라 할만한 활발한 이론과 실천의 활동을 이어온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세월의 대부분을 후학으로, 동료로써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워 온 나로서는 이 책을 다시 들쳐보면서 새삼 감탄과 더불어 시샘과 부러움마저 느낀다. 이 책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잠시도 한 군데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롭고 다른 공부와 일을 찾고 꾀해 온 살아 숨쉬는 큰 정신의 존재를 실감하게 되니 말이다.

‘한국의 여성과 남성’은 이른바 ‘생물적인 성’(sex)이 아니라 ‘사회적인 성’(gender)으로서의 여성과 남성 문제를 그 존재, 사회적 역할, 사회 생활의 구조 그리고 구체적인 생활 세계 안에서의 생각과 느낌으로 재구성, 아니 ‘재구성적 해체’를 통해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여기에 무엇이 새로우랴 싶겠지만, 이 책이 나오던 때는 아직 세상을 한꺼번에 뒤집어 사람을 단숨에 구원하겠다는 거대 담론이 서슬 퍼렇던 80년대 끝자락이다. 그러니 이런 의도는 새로울 뿐 아니라 아주 불온하게 여겨지던 때가 아니던가. 바로 그럴 때 새로운 사회 운동으로, 이념으로 그리고 실천과정으로 떨쳐나선 여성 해방운동을 비판적 사회과학의 얼개로 틀을 잡고자 한 것이다.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그 때까지 무르익어 온 다양한 서구적인 이론들을 정치하게 섭렵하고 거침없이 원용하면서도, 한국 사회라는 특수성 안에 자리 매김 하고자 한 것이다.

그 대상 영역만 봐도 한국의 가부장제의 역사, 여성과 직업이라는 현장, 가족관계라는 배경 등 성불평등의 맥락들을 두루 아우르면서 꼼꼼한 분석과 탄탄한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성다움’이라는 남성 문제의 바탕을, 아마 내가 알기에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문제로 제기했다. 또 제주지역 해녀 사회의 성체계와 근대화를 주제로 삼아 인류학적 연구방법을 도입하였다. 나아가서 가부장 체제를 넘어서려는 여성 해방운동의 나갈 길을 생명 존중이라는 뚜렷한 뜻매김으로 밝혀주고 있다. 그러니까 대상 영역만 너르고 큰 것이 아니라, 그 접근하는 방식 또한 새롭고도 뜻깊은 것이다.

남성학 담론의 뿌리로도 읽혀

이 책의 의미는 아무튼 예사롭지 않다. 일찍이 여성주의 담론에서 핵심이 됐던 여성중심적 시각, 여성주의적 관점을 학문이론으로 발전시킨 ‘여성주의 학문이론’(feministische Wissenschafttheorie)과 같은 정제되고 세련된 담론방식을 처음, 체계적으로 펼친 것부터가 그렇다. 아울러 역사학, 인류학과 같은 인접학문, 아니 성평등 담론의 구성 학문들을 동원하여 여성과 남성의 생활 세계를 분석하고 해석한 점 또한 그렇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요즘 와서 부분적으로 조금씩 일고 있는 남성학 담론의 뿌리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조혜정 교수의 이 책에서 비로소 남성을 문제범주로, 그리고 그 문제를 남성다움의 역사성, 형성과정, 그리고 삶의 온 자리에서 남성들에게 강요되는 틀에서 분석해 낸 것이다. 나 스스로 얼마 전부터 남성 문제, 남성 문화에 대한 비판적 담론을 서툴게나마 꾀하고 있거니와 이 책에 빚진 것이 크다.

또한 당시로서는 예감 정도나 했던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에 따른 생명 존중이라는 여성 해방운동의 지향점을 일찌감치 내걸어 지나친 사회과학적 재단이나 심리 해석적 분석에 매몰된 여성주의 담론의 확장과 심화를 꾀한 것도 조혜정 교수의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을 드러내 주는 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여성과 남성’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성학 뿐 아니라 남성학, 성평등학의 기본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담론의 바탕이 되는 이론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연구 대상에 대한 학문적인 다양한 접근방식들을 꼼꼼히 따져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성평등이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학문인 만큼 그 이름에 값하는 미래지향성마저 본보기로 보여주고 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성평등에 관련한 한국사회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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