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而思] 문화민주화를 이야기하는 이유
[學而思] 문화민주화를 이야기하는 이유
  • 여건종<숙명여대·영문학>
  • 승인 2002.05.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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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1 14:32:49
어떤 의미에서든지 반문화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매우 진전된 형태의 공리주의 문명이 우리 삶의 전반적인 모습을 변화시켜 가고 있는 반면, 문화라는 단어만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른바 국민의 정부는 창조적 문화 국가 건설을 핵심정책 과제의 제일 앞부분에 내세우고 있고, 영향력이 막대한 한 신문은 “미래는 문화다”라는 특집에 많은 지면을 연일 할애하고 있으며, 문화도 돈이 된다는 새로운 발견에 엄청난 자본이 문화산업 쪽으로 몰려가고 있다고도 한다. 문화를 전공하는 입장에서 문화가 중요하다는 말은 반가운 소리이지 불만을 가질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에 대한 최근의 무성한 논의들은 오히려 우리 시대가 문화에 대해 적대적인 시대라는 사실을 반증해 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안으로도 감지될 것 같은 급격한 변화의 흐름은 우리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장사회에 진입했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그것은 또한 새로운 공리주의 문명이 도래하고 있다는 것, 즉 우리의 일상적 삶이 기능적이고, 기계적이고 도구적인 합리성에 더 많이 지배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이 가치를 지배하는 실증의 시대, 효용성과 생산성`─`이른바 부가가치`─`에 대한 강조가 인간의 보다 풍부한 세계 관계를 차단하고 있는 기계의 시대로 서서히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공리주의적 인간 이해와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나 그 운명을 공유한다.
공리적 이성에 지배되는 기술산업 자본주의 문명이 가지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그것이 스스로를 사유할 수 있는 지적 감성적 원천을 지속적으로 폐기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장의 이성이 인간을 도구적 존재, 목적에 봉사하는 존재, 계량되고 측정될 수 있는 존재로서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사회가 인간의 문화적 능력에 적대적인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문화적 능력은 자기형성 능력이다. 그것은 보다 풍요롭게 외부 세계를 경험하고 그것을 자기 안으로 가져와 주체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 삶의 모든 중요한 자원들`─`경제적 자원 뿐만 아니라 정치적·지적·감성적 자원까지`─`이 시장기제에 의해 동원되고 관리되고 통제되는 시장사회에서 이 자기형성의 능력, 주체적으로 느끼고 사고하고, 반응하고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은 서서히 소진되고 고갈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가 정치적 민주화나 경제적 민주화와 같은 의미에서 같은 정도의 절박함으로 문화적 민주화에 대해서 얘기해야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규범적 이상이라면, 자기형성의 문화적 능력은 민주주의 실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 자유와 풍요의 시대에 오늘의 대중은 여전히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전제적 유권자로, 자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행복한 소비자로, 문화상품의 변덕스럽고 오만한 구매자로 군림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한편으로 여전히 대중의 정체성, 대중의 이해관계, 대중의 고통은 충분히 재현되고 있지 않으며, 대중은 시장의 주인이라기보다는 시장에 예속된 상태이며, 대중의 욕망과 쾌락은 끊임없이 다른 힘들에 의해 침해되고 조작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반 사람들이 ‘형성될 수 있는 권리’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문화적 능력을 공유시키고 확장시키는 문화적 자원과 제도적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은 보다 주체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문화적 민주화를 실현하는 과정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시장의 이성과의 힘겨운 싸움을 수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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